항목 ID | GC02700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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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頭陀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박상일 |
성격 | 성곽|산성|석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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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삼국시대 |
관련인물 | 실죽(實竹) |
높이 | 약 1.2m |
둘레 | 약 1,200m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신통리 산 76-4|신통리 산 76-3|용정리 산 30-26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신통리·용정리 두타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건립경위]
삼국시대의 ‘도서성’으로 비정하는 설이 있다. 도서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만노군(萬弩郡), 즉 지금의 진천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 후기에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두타산에 있다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장군 실죽(實竹)이 도서성을 쌓고 백제군을 막았다고 한다. 실죽은 신라 21대 소지왕 때인 486년(소지왕 8)에 이찬으로 장군이 되어, 보은의 삼년산성(三年山城)과 청산[지금의 옥천]의 굴산성(屈山城)을 고쳐 쌓았으며, 494년(소지왕 16)에는 청천전투에서 고구려군과 맞서 싸운 인물이다. 그는 이 무렵에 두타산성(頭陀山城)을 축성하는 데에도 관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와 신통리, 용정리, 괴산군 도안면 연촌리 경계를 이룬 두타산의 해발 598.3m 정상부와, 그 동남쪽 596.4m의 두 봉우리와 북쪽 계곡 상단을 두르고 있다.
[형태]
두타산성은 높이 약 1.2m, 남북 약 300m, 동서 약 200m, 둘레 약 1,200m의 규모이며, 2개의 봉우리를 에워싸고 넓은 평지가 있다. 우물터가 있으며, 석축이 천연의 암반 위에 축조되어 남은 곳이 있다. 예로부터 형승(形勝)이 있는 곳으로 전해져 왔으며, 『대동지지』에는 “산 위가 평탄하고 오목한 곳이 있어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고, 우물과 샘이 있다.”고 하였고, 도서성으로 비정하였다. 서쪽 성벽은 이중으로 된 부분이 있어서 서쪽의 최고봉을 내성으로 한 이중 구조처럼 되어 있고, 가장 멀리까지 조망되는 요새지를 이룬다.
[현황]
남문과 동문 자리가 확인되었는데 남문지의 바깥쪽에 두 군데의 토루가 있어 주목된다. 이밖에 우물자리 두 곳이 발견되었으나, 치성(雉城) 등의 다른 시설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곳곳에 건물지로 보이는 평지가 있다. 성 안에서 삼국시대의 경질토기와 통일신라 및 고려시대의 토기편이 수습된다.
[의의와 평가]
두타산성은 옛 도서성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이는 고대부터 내려온 진천의 지리적 중요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진천의 역사에도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학술조사 및 연구를 통해 이를 입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