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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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胎靈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박상일 |
성격 | 성곽|산성|석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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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삼국시대 |
둘레 | 약 210m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문봉리 산 20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와 문봉리 태령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건립경위]
태령산(胎靈山)의 정상부를 감싸고 돌로 축조한 산성인데, 이 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일제강점기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군중면 문봉리와 상계리 사이의 태장산에 있는 성지로, 국유림이며 봉평리 부락의 서쪽 작은 구릉에 있다. 석축으로서 둘레 150간, 높이 4척으로 완전하다. 김유신의 태봉이라는 전설이 있다.”고 하였다.
『전국유적목록』에는 이 내용을 요약 번역하여 실었고, 『문화유적총람』에는 “태봉에 있는 석성지로 둘레 215m의 산성이다. 자연석으로 축성하였는데 지형의 고저에 따라 경사가 심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곳은 경사가 약한 곳으로, 신라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측되며 태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성내에 태실지라는 유지가 있으며,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은 태봉이라는 설이 전해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와 문봉리 사이 해발 450m의 태령산 정상부에 축조되었다.
[형태]
태령산성은 테뫼식의 석축 산성으로 둘레는 약 210m이다. 성에서 사방을 조망하면 특히 남쪽의 시야가 트여 청주 방면이 잘 통망된다. 동쪽과 서쪽으로는 같은 능선에 있는 문안산성(文案山城)과 만뢰산성(萬賴山城)이 좌우 횡렬 상태로 진천을 방호하고 있는 것이 보이며, 동쪽 문안산성 너머로는 소을산 봉수대가 보인다. 북쪽으로는 전망 상태가 그리 좋지 않지만 북동쪽으로 도당산성(都堂山城)과 진천 읍내가 내려다보인다.
태령산성은 동-서 방향으로 긴 능선에 구축하였는데, 서쪽 끝에는 성벽을 산봉우리에 거의 인접하여 쌓고, 동쪽으로 가면서 낮아지는 산등성이를 감싸고 능선부에서 약간 아래의 사면을 삭토한 후 석축을 돌렸다. 계곡은 어느 방향으로도 끼고 있지 않아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이라 할 수 있다. 지형은 사면이 모두 험하나, 남·북면이 특히 험하고 동·서면의 능선부는 약간 완만하다.
[현황]
성곽의 시설은 현재 모두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나 북서쪽과 남서쪽 모서리에 약간 성벽을 내어 쌓은 형태의 치성(雉城) 흔적이 보인다. 남쪽 성벽의 동·서단부에 각각 1개소씩 문지(門址) 흔적이 보여 상계리 쪽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었던 듯하다. 이밖에 수구와 다른 시설들은 현재 확인할 수 없고, 산 정상에 김유신 태실지라 하여 정비한 곳이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중요한 위치로서 망루와 같은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