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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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沙松洞-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 226-1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충배 |
성격 | 고인돌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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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청동기시대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 226-1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추정 고인돌군.
[개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고인돌이 많은 국가에 속하는데 한반도에는 3만여 기가 분포한다. 고인돌은 다듬어진 판돌로 ㄷ자 또는 ㅁ자로 무덤방을 만들고 거대한 판석상의 덮개돌을 얹은 탁자식(북방식), 무덤방을 지하에 만들고 받침돌을 놓은 후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기반식(남방식),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덮개돌을 놓은 뚜껑식[개석식] 고인돌로 나뉜다.
사송동 고인돌군1은 분당 신도시를 개발하기 전에 이루어진 1989년 성남분당지구 문화유적 지표조사와 1990년 분당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23기의 고인돌군이다.
[위치]
탄천의 서쪽에 자리한 속칭 동관마을이라 불리는 마을의 논 경작지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적의 앞쪽으로는 탄천을 따라 길게 형성된 충적 평야지가 전개되어 있어 대부분 논과 비닐하우스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하류 방향으로는 골재 채취장과 콘크리트 구조물 공장이 들어서 있는 상태였다. 배후 먼 지점에는 해발 108m의 산지가 위치하고 있고, 이 산에서 흘러내린 두 개의 구릉이 그 사이에 계곡을 형성하게 하면서 계단식 논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두 구릉의 말단부에는 속칭 봉황산[해발 55.5m]과 건너산[해발 53.9m]이 솟아 있는데, 유적은 이 두 산지의 중간 지점에 형성된 계단식 논 경작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89년 4월에 수도권 지역의 주택난 해소와 인구 분산을 위한 택지 개발 사업의 하나로 성남시 분당 신도시 개발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개발 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수 있는 유적을 보전하기 위한 방안으로 1989년의 성남분당지구 문화유적 지표조사, 1990년의 분당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굴 조사는 9개 기관 10개소에 대해 수행되었으며, 사송동 고인돌군은 명지대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된 것이다.
[형태]
조사 당시 7기를 조사하기로 하였으나 발굴조사 과정에서 고인돌의 뚜껑돌로 추정되는 괴석들이 노출되어 실제 발굴은 23기에 대해 이루어졌는데, 모두 고인돌의 하부 구조나 출토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이 지역이 계곡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홍수 때 파괴되거나 교란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며, 뚜껑돌 하부에 퇴적층이 나타난 점으로 보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