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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990
한자 全州李氏
영어공식명칭 Jeonju Y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문수진윤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전주이씨 본관 - 전라북도 전주시
입향지 전주이씨 입향지 - 경기도 성남시
성씨 시조 이한(李翰)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성남 지역의 세거성씨.

[개설]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조선시대 왕족으로서, 한양[서울]에서 가까운 성남의 29개 지역에 여러 분파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전주이씨 시조는 신라 문성왕(文聖王)[?~857] 때 사공 벼슬을 한 이한(李翰)이다. 이후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이후 한양에서 가까운 경기도 일대에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근대까지 경기도 광주에 속해 있던 성남 지역에도 전주이씨의 묘역과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입향 경위]

조선이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이후인 건국 초기부터 성남 일대는 강무(講武)와 왕릉 참배를 위한 국왕의 행차가 많았다. 또한 전주이씨의 사패지(賜牌地)[나라에서 하사한 토지]가 많아서, 전주이씨는 성남시 일대에 거주하던 50여 성씨 중에서도 현저하게 많은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현황]

완성부원군 이백유(李伯由)[1352~1399]의 부인 파평윤씨가 친정집[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서 별세하자 여수동에 장사 지내고, 그 자손이 세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에 이균(李稛)의 자손이 세거하며 집성촌을 이루었다. 이균의 현손 무주부사 이예(李藝)가 아들 여섯을 두었는데, 여수동에는 큰아들 이순신(李純臣)과 셋째 아들 이청신(李淸臣)의 자손들이 살았다. 안말, 소만말, 속말, 회천말, 샛터말에 전주이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이백유의 아들 이속(李粟)은 통훈대부 도승지, 이자(李粢)는 한성판윤, 이균은 이조참의를 지냈다.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에는 중종의 다섯째 아들인 덕양군 이기(李岐)[1524~1581]의 후손이 집성촌을 이루었다. 이기가 죽자 장지를 용인으로 정하여 상여를 메고 가는데 마을 앞을 지날 때 상여꾼의 발이 안 떨어지고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앙장(仰帳)[상여 위에 받치는 휘장]이 바람에 날려 궁내동 지금의 묫자리에 떨어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지관이 자리를 보니 천하 명당이라, 용인의 묫자리를 취소하고 이곳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니 상여꾼의 발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곳은 덕양군이 평소 풍류와 사냥을 즐기던 곳으로, 갓끈이 덤불에 걸려 끈에 달린 호박을 잃어버렸던 곳이다. 그런데 장사 지낼 때 광중(壙中)에서 생전에 잃어버렸던 호박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곳에 덕양군의 묘를 쓰고 관리하기 위하여 궁을 지었고, 그 후 덕양군의 10세손 이주신(李周新)[1745~1798]이 궁내동으로 이주하였고,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해 온 것으로 전한다.

이주신은 아들로 풍산군 이종린(李宗麟)[1538~1611], 풍성군, 풍천도정, 풍해수를 두었는데, 이종린은 아들 귀성군[이첨(李瞻)], 귀천군[이수(李晬)], 귀원군, 귀봉군, 귀산군, 귀흥군을 두었다. 귀천군봉래군 이형윤(李炯胤), 봉원수 이형준(李炯儁), 봉산군 이형신(李炯信), 봉주정 이형길(李炯佶), 봉창수 이형엄(李炯儼), 하계군 이형륜(李炯倫), 봉성령 이형중(李炯仲), 봉풍령 이형임(李炯任), 봉흥도정 이형좌(李炯佐), 봉천령 이형우(李炯佑), 봉계도정 이형건(李炯健), 봉강도정 이형급(李炯伋)의 열두 아들을 두어 명문지족으로 후손이 번성하고 현달하였다. 후손 중에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이순제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때 경복궁 중건의 감독을 맡았던 이주철(李周喆)이 있다.

성남시 분당구석운동운중동 일대에는 정종(定宗)의 열 번째 아들인 덕천군 이후생(李厚生)[1398~1465]의 후손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이후생의 아들 신종군 이효백(李孝伯)[1433~1487], 이후생의 현손 이경석[1595~1671]이 유명하다. 왕족은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이효백은 활을 잘 쏘아서 세조(世祖)가 특별히 응시하도록 허락하였다. 이경석병자호란 후에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라는 왕명을 받고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비문을 지었으며, 병자호란 후 구제역이 창궐하여 전국의 소가 씨가 마르자 사람을 시켜 몽골에서 소를 수입해 왔다.

분당구 정자동에는 성종(成宗)의 열두째 아들인 무산군 이종(李悰)의 아들 태안군 이팽수(李彭壽)[1520~1592]의 후손이 집성촌을 이루었고, 수정구 복정동에는 성종의 열여섯째 아들의 막내인 양원군 이희(李憘)[1492~1551]의 후손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봉국사 대광명전(奉國寺大光明殿)은 조선 현종(顯宗)의 두 공주 명혜(明惠)명선(明善)의 명복을 빌던 곳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수정구 태평동망경암(望京庵)은 조선 후기에 이규승(李奎承)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던 곳이다. 망경암마애여래좌상(望京庵磨崖如來坐像)이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수동 뒷골에는 이대열(李大烈)[1946~ ]의 19대조인 이백유의 부인 정경택주 파평윤씨의 묘가 있고, 그 옆에 윤씨의 친정어머니 묘가 있으며, 그 건너편에는 이백유의 동서인 조견(趙狷)과 그 아들의 묘가 있다. 궁내동 뒷산에는 덕양군을 비롯하여 풍산군, 귀성군, 귀천군, 봉래군, 봉산군 등 후손의 묘가 있다. 덕양군의 손자인 이수(李晬)의 묘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석운동이경석 선생 묘,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태안군파 묘역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하산운동풍산군 이종린 묘역은 경기도 문화유산자료이다. 동원동참판공 이순제 묘역은 성남시 향토문화유산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밖에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에 성종의 아들인 양원군 이희의 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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