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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지역의 지표수가 모여 일정한 물길을 따라 흐르는 곳. 하천은 육지의 표면에서 대체로 일정한 유로를 갖고 있는 유수의 계통을 일컫는다. 예로부터 큰 하천에는 강(江)이나 하(河)를 이름으로 썼고, 작은 하천에는 천(川)이나 수(水)를 이름으로 썼다. 양주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하천은 신천(莘川)이고, 이어서 공릉천(恭陵川)과 중랑천(中浪川)이 대표적인 하천이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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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패리(下牌里)라는 땅 이름은 고려 시대의 은현면 지역, 즉 사천현(沙川縣)에서 아래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하패리는 적어도 대한 제국 시기부터 이곳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1914년 이전까지는 현내면 하패리와 이담면 송라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두 지역에서 일부를 떼어 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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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군.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응달말마을 남서쪽 논에 화강암으로 된 하패리 고인돌군 2기가 50m 간격으로 놓여 있다. 하패리 고인돌군은 1998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양주군 일대에 대한 문화 유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면서 확인되었다. 남쪽 고인돌 상석은 남북 방향 장축으로 놓여 있고, 그 크기는 높이 110㎝, 길이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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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에 있는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하패리 유물 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있다. 한 곳은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응달말마을에서 동쪽 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500m 떨어진 지점, 다른 한 곳은 하패1리 선업동마을 도로변에서 남쪽으로 얕은 구릉 지점, 나머지 한 곳은 하패리 고인돌군이 위치한 사거리 서쪽 태봉산에서 남동쪽으로 저평하게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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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에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느티나무에 이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뭇과의 낙엽 교목으로, 높이는 40m까지 자라며, 잎은 부채 모양으로 한 군데서 여러 개가 난다. 암수딴그루로 5월에 꽃이 피는데, 암꽃은 녹색이고 수꽃은 연한 노란색이다. 열매는 은행이며, 핵과(核果)로 10월에 노랗게 익는다. 하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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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군.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응달말마을 남서쪽 논에 화강암으로 된 하패리 고인돌군 2기가 50m 간격으로 놓여 있다. 하패리 고인돌군은 1998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양주군 일대에 대한 문화 유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면서 확인되었다. 남쪽 고인돌 상석은 남북 방향 장축으로 놓여 있고, 그 크기는 높이 110㎝, 길이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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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휘세(輝世), 호는 학곡(鶴谷). 고조할아버지는 홍윤덕(洪閏德), 증조할아버지는 홍계정(洪係貞), 할아버지는 황해도 관찰사 홍춘경(洪春卿)이며, 아버지는 도승지를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홍천민(洪天民)이다. 어머니는 고흥 유씨(高興柳氏)로 고려 시중 유탁(柳濯)의 후손인 제용감 주부 유당(柳摚)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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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장(子章), 호는 학당(鶴塘). 증조할아버지는 풍안군(豊安君) 조흡(趙潝)이고, 할아버지는 조중운(趙仲耘), 아버지는 돈녕부 도정(都正) 조도보(趙道輔)이다. 어머니는 김필진(金必振)의 딸이다. 부인은 이정태(李廷泰)의 딸이다. 아들은 조돈(趙暾)이다. 조상경(趙尙絅)[1681~1746]은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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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추석은 음력 8월 보름으로 설날과 더불어 2대 명절의 하나이다. 이를 가배(嘉俳),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등이라고도 한다. 추석은 가을의 한 가운데에 있어 한 해 농사가 마무리 되어 가는 시기라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수확의 시기이자 보람의 시기이다. 그래서 “1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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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가업리, 장흥면 부곡리에 걸쳐 있는 산봉우리. 맑은 날 올라 남쪽을 내려다보면 한강이 보인다 하여 한강봉(漢江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산 정상에 오르면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또한 이 봉우리에 비가 내려 빗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한강으로 들어가고 북으로 흐르면 신천과 덕계천을 흘러내려가 임진강이 된다 해서 한강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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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를 관할하는 한국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의 지사.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는 관할 지역의 경제 활성화, 농어업 경쟁력 강화 및 지속적인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는 경기도 양주시를 비롯한 파주시·고양시·동두천시·연천군 등의 물 관리 및 시설 개보수 사업과 공사 시행 사업, 양주시를 비롯한 경기도 북부 지역의 시·군 수탁 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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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한국문인협회 산하 양주 지역 지부. 경기도 양주시는 김삿갓을 비롯한 많은 문인을 배출한 고장 중 하나이며 지금도 많은 문인이 창작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설립된 한국문인협회 양주지부는 시, 소설, 수필 부분을 중심으로 순수 문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동인지로 『양주 김삿갓 문학』을 매년 발간해 오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양주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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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정동에 있는 KBS의 방송망 관리 중계소. 라디오 및 TV 중계소를 두는 이유는 산악 지형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과도 관련이 있다. 방송국에서는 지방에 중계 지점을 정하고 중계소를 설립하여 더 선명한 라디오 및 TV 방송을 송출하고자 한다. 한국방송공사 방송망관리국 양주중계소는 한국방송공사 뉴미디어·테크놀로지본부 네트워크관리국에 속해 있다. 한국방송공사 방송망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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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에 있는 사회 복지 시설. 한국보육원은 원불교 재단인 창필재단의 허가로 설립되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3,000여 명의 4세~18세 무의무탁한 원생들을 맡아 교육하고 직업을 갖도록 도와 온 양육 시설이다. 한국보육원은 원불교 기본 이념인 무자력자 보호의 정신에 입각하여 4세부터 18세까지의 부모 없는 아동들과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자유로운 환경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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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섬유 소재 연구소. 한국섬유소재연구원은 국내 섬유 산업 기술의 기술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 아래 섬유 산업의 미래를 선도하는 국내 최고의 섬유 소재 종합 연구 기관이다. 연구원의 전문화, 성과 중심 조직, 효율적인 연구 기반, 기술 개발 체계화, 서비스 우선 정신, 창의적 직장 문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연구 기관으로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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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방동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양주 지역 지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는 1961년 12월 건축가협회·국악협회·무용협회·문인협회·미술협회·사진작가협회·연예협회·영화인협회·음악협회 등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결성을 위한 창립 준비 위원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초대 회장으로 유치진(柳致眞)을 선출하였다. 양주 지역 예술인들은 지역 예술 문화 발전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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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는 사립 특성화 고등학교. 창의적 인재, 미래 사회의 주인공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서로 돕고 사랑하며 예의 바르게’이다. 1955년 3월 29일 이사장 정병국을 중심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남문학원에 의하여 1961년 3월 31일 당시 양주군 최초의 고등학교인 남문농업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이후 1979년 11월 20일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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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 전쟁은 1948년 남북한에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고 양측에 대한 우방국의 지원이 갈라지게 되자 정치적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북한군의 남침으로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은 1953년 7월 23일 당시까지의 전선을 군사 분계선으로 정하고 포로 자유 송환을 골자로 하는 휴전 협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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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를 관할하는 한국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의 지사.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는 관할 지역의 경제 활성화, 농어업 경쟁력 강화 및 지속적인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는 경기도 양주시를 비롯한 파주시·고양시·동두천시·연천군 등의 물 관리 및 시설 개보수 사업과 공사 시행 사업, 양주시를 비롯한 경기도 북부 지역의 시·군 수탁 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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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정동에 있는 KBS의 방송망 관리 중계소. 라디오 및 TV 중계소를 두는 이유는 산악 지형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과도 관련이 있다. 방송국에서는 지방에 중계 지점을 정하고 중계소를 설립하여 더 선명한 라디오 및 TV 방송을 송출하고자 한다. 한국방송공사 방송망관리국 양주중계소는 한국방송공사 뉴미디어·테크놀로지본부 네트워크관리국에 속해 있다. 한국방송공사 방송망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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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방동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양주 지역 지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는 1961년 12월 건축가협회·국악협회·무용협회·문인협회·미술협회·사진작가협회·연예협회·영화인협회·음악협회 등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결성을 위한 창립 준비 위원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초대 회장으로 유치진(柳致眞)을 선출하였다. 양주 지역 예술인들은 지역 예술 문화 발전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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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는 사립 특성화 고등학교. 창의적 인재, 미래 사회의 주인공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서로 돕고 사랑하며 예의 바르게’이다. 1955년 3월 29일 이사장 정병국을 중심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남문학원에 의하여 1961년 3월 31일 당시 양주군 최초의 고등학교인 남문농업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이후 1979년 11월 20일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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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는 사립 특성화 고등학교. 창의적 인재, 미래 사회의 주인공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서로 돕고 사랑하며 예의 바르게’이다. 1955년 3월 29일 이사장 정병국을 중심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남문학원에 의하여 1961년 3월 31일 당시 양주군 최초의 고등학교인 남문농업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이후 1979년 11월 20일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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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출신의 법조인. 본관은 전의. 아버지는 이상익이고 동생은 이웅섭이다. 아버지 이상익은 남면사무소에서 초대 남면장을 지냈다. 부인은 평택국민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권태옥(權泰玉)이며,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다. 이영섭(李英燮)[1919~2000]은 1919년 11월 5일 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아버지 이상익이 광주법원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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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어둔동에 있는 청소년 수련원. 한마음청소년수련원은 천주교 의정부교구에서 운영하는 수련 시설로서 고요한 산속에 위치하여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마음청소년수련원은 도심의 복잡함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과 청소년이 자연 속에서 수련하며 몸과 마음을 다스려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984년 경기도 양주시 어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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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할아버지는 예문관 제학 한상질(韓尙質)이고, 아버지는 감찰 한기(韓起)이다. 어머니는 여주 이씨로 대제학 이적(李逖)의 딸이다. 형은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로 우찬성 권제(權踶)의 딸이다. 아들은 대사헌을 지낸 청평군(淸平君) 한언(韓堰)이다. 청주 한씨는 한언 대에 부평부[현 구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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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를 포함하는 경기 북부 5개 권역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지역 신문. 『한북신문』은 1988년 민주화 선언으로 신문 간행 규정이 해제되자 1989년 9월 25일 문화공보부에 등록 신청하여 경기 북부의 지역 뉴스의 선두 주자로 출발하였다. 현재 경기도의 정책을 알리는 것은 물론 양주시, 의정부시, 동두천시, 포천시, 연천군의 시정(市政) 방향과 성과 및 시민의 소리를 다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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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사회주의 운동가·정치가. 호는 한산(韓山)·일강(一剛)·일광(一光)·소앙(笑仰). 일명 유포심(劉怖深)·진덕삼(陳德三)·이극화(李克和)·김지강(金志綱)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유생 홍순석이다. 홍남표(洪南杓)[1888~1950]는 경기도 양주의 빈농가에서 태어났다. 1907년 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하자 아버지 홍순석은 망국의 한을 품고 음독자살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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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를 포함한 한강 유역 일대에 설치되었던 고구려와 신라의 군. 고구려는 장수왕의 남진 이래 한강 유역을 다시 개척하면서 양주를 포함한 지역에 한산군(漢山郡)을 두어 관할토록 하였다. 그런데 551년 신라와 백제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면서 이 지역은 신라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후에 북한산주, 다시 한산주로 바뀌었다가 755년(경덕왕 14)에는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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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할아버지는 조신(趙愼), 아버지는 공조 좌랑 조안평(趙安平)이고, 어머니는 하양 허씨(河陽許氏)이다. 부인은 해주 오씨(海州吳氏)로 예빈 판사(禮賓判事) 오축(吳軸)의 딸이다. 자녀는 아들 한평군(漢平君) 조익정(趙益貞)과 세 딸을 두었다. 장녀는 부녕 부사(富寧府使) 이공순(李公淳), 차녀는 태안 군수(泰安郡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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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한산리(閑山里)라는 땅 이름은 마을이 한가한 뱀의 꼬리 모양[한사미(閑蛇尾)]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혹은 앞산이 한새[황새]처럼 생겨 한새미·한사미·한산이라 불리었다고도 한다. 이 마을에 한산거사(閑山居士)가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산리라는 땅 이름은 18세기 후반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는 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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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한산리 고인돌은 감악산 정상부에서 남쪽 능선 말단 사면 해발 100m 조금 넘는 막은골마을 앞 논에 있었다. 한산리 고인돌은 1998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과 2006년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양주 지역 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1998년 조사 당시 확인된 한산리 고인돌은 상석 화강암이 타원형에 가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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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에 있는 일곱 그루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느티나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나뭇과의 낙엽 교목으로, 잎은 부채 모양이며 한군데에서 여러 개의 잎이 난다. 높이는 40m까지 자란다. 암수딴그루로 5월에 꽃이 피는데, 암꽃은 녹색이며 수꽃은 연한 노란색이다. 열매는 핵과(核果)로 10월에 노랗게 익는다. 한산리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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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한산리 고인돌은 감악산 정상부에서 남쪽 능선 말단 사면 해발 100m 조금 넘는 막은골마을 앞 논에 있었다. 한산리 고인돌은 1998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과 2006년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양주 지역 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1998년 조사 당시 확인된 한산리 고인돌은 상석 화강암이 타원형에 가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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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정치사상가.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조용은(趙鏞殷), 자는 경중(敬仲), 호는 소앙(素昻), 별호는 아은(亞隱)·소해(嘯海)·한살임(韓薩任)·아나가위후인(阿那伽餧後人).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 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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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희백(熙伯).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이고, 할아버지는 영돈녕부사를 지낸 서릉부원군(西陵府院君) 한치례(韓致禮)이며, 아버지는 군기시 판관으로 병조 참판에 추증된 서성군 한익장(韓翊長)이다. 어머니는 순천 박씨로 판중추부사 평양군(平陽君) 박중선(朴仲善)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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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공서(公瑞). 증조할아버지는 한(韓䂠)이고 할아버지는 군자감 정 한치원(韓致元)이며, 아버지는 첨정 한운(韓運)이다. 어머니는 예안 이씨로 전풍군(全豊君) 이신(李愼)의 딸이다. 부인은 전직 이영령(李永齡)의 딸로 경주 이씨다. 한세환(韓世桓)[1470~1522]은 1492년(성종 23) 사마시에 급제하고,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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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당진. 자는 자순(子純), 호는 간이당(簡易堂). 할아버지는 한윤우(韓允祐)이고, 아버지는 세자좌세마 한근(韓瑾)이다. 어머니는 고성 이씨로 승정원 도승지 이평(李泙)의 딸이다. 부인은 평강 채씨로 채유손(蔡裕孫)의 딸이다. 한숙(韓淑)[1494~1560]은 1513년(중종 8) 진사시를 거쳐 1525년(중종 20) 식년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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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고 양주의 옛 지명의 하나였던 한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한양(漢陽)은 현재의 경기도 양주시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한양 조씨의 시조는 조지수인데, 덕원부 용진현에서 세거하던 사족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에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이 개국하자 조지수의 후손들이 한양으로 이주하고 그곳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파는 안정공파(安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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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고려 후기의 행정 구역. 1308년(충렬왕 34) 심양왕(瀋陽王)이었던 충선왕이 중앙과 지방 제도 및 관제 개편 등을 단행하면서 양주에 한양부를 설치하였다. 이는 충선왕 자신의 왕권 강화 및 원의 체제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진행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많은 부윤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의 독자성을 견제하고자 시도하였다. 『고려사(高麗史)』[권77, 지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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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산북동 샘내고개 남쪽에서 발원하여 의정부시를 관류한 후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 시대 지리지와 고지도 등에는 중량포(中梁浦)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당초 중량천이라 하였다가 뒤에 중랑천(中浪川)으로 고쳤다. 지역에 따라 서원천, 새내, 샛강, 한천(漢川), 속계(涑溪)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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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한치형(韓致亨)[1434~1502]은 외척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네 임금을 모시고 최고 벼슬인 영의정까지 올랐다. 큰 공적은 없지만 또한 드러난 과실도 없었다. 마음가짐이 조용하고 엄격하였으며 공무는 엄정하게 처리하였다. 조정에서 외손자에게 벼슬을 주려고 하자 “이 늙은 것 때문에 어리석은 아이에게 벼슬을 줄 수는 없다.”며 허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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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혼례 전에 신랑 쪽에서 채단(采緞)과 혼서지(婚書紙)를 넣은 나무 상자를 신부 쪽에 보내는 의례. 함팔기는 전통 혼례의 한 과정에 해당한다. 혼인이 결정되어 택일이 이루어지면 치마저고리감인 채단과 혼서지를 넣은 함을 준비한다. 함은 대개 혼례 전날 신랑 친구나 마을 사람 중 첫 아들을 낳은 사람이 진다. 함을 진 사람을 함진아비라 하는데 대략 3~4명이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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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시청에서 발행하는 시정 소식지.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교통 통신망의 구축과 인터넷 서비스의 보급은 현대인들의 생활을 크게 바꾸었다. 정보의 바다가 열린 동시에 실시간 쌍방향 소통도 가능해졌다. 더구나 시민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지역 사회에서 자발적인 참여가 늘어났다. 양주시에서도 시정을 시민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민을 위한 올바른 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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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홍보하고 있는 관광 서비스. 함께 그린(Green) 양주 투어란 양주의 문화 유적지와 체험 학습장, 장흥 문화 예술 특구를 관광객들이 보다 저렴하고 편리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경기도 양주시에서 홍보하고 있는 관광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정기 투어와 일반 투어로 나누어 시행되고 있는 양주 시티 투어는 양주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문화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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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에 있는 장애인 지역 사회 재활 시설. 함께랑은 지적 장애인들을 위하여 설립된 지역 사회 거주 시설이다. 시설에 입주한 장애인들은 공동생활을 통해 일상생활의 기술과 지역 사회의 적응력을 기르는 훈련을 하고 있다. 함께랑은 지적 장애인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여 사회 적응력을 길러주고 지역 사회로의 통합을 도모하며, 공동생활 가정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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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에서 불도를 닦은 조선 초기 불교계를 대표하는 승려. 성은 유씨(劉氏). 호는 득통(得通), 당호는 함허(涵虛). 처음 법명은 수이(守伊)이며, 처음 법호는 무준(無準)이다. 아버지는 전객시사(典客寺事) 유청(劉聽)이고, 어머니는 방씨(方氏)이다. 어려서 성균관에 입학하는 등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21세 때 삭발 출가하여 양주 회암사에서 수행하던 자초(自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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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대에 편찬된 『해동지도(海東地圖)』의 경기도 양주목에 해당하는 부분. 『해동지도』는 국가 차원에서 제작된 방대한 분량의 채색 필사본 지도로, 조선 전도를 비롯해 도별도, 군현 지도, 세계 지도가 망라되어 있다.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9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태고 4709-41]. 그중 「해동지도 양주(海東地圖楊州)」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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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어머니를 잡아먹고 삼남매까지 잡아먹기 위해 찾아온 호랑이를 피해 하늘로 올라가는 오누이에 대한 신이담이다.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가 해와 달이 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해와 달의 유래와 관련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으며, 학자에 따라서는 일월 신화(日月神話)로 해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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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있는 고개. 게너미고개는 게가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인근 노고산에 노고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노고 할머니가 오줌이 마려워 다리 한쪽은 노고산에 걸치고 다른 한쪽은 반대편 도락산에 걸친 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와 광석리 경계 지점 부근 황새등고개에 있는 요강바위에 오줌을 쌌다고 한다. 그런데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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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있는 임진왜란 최초의 육지 전투 승전지. 해유령(蟹踰嶺) 전투(戰鬪)[게너미고개 전투]는 1592년(선조 25) 5월 중순, 북상 중인 일본군을 맞아 부원수 신각(申恪)을 중심으로 한 조선군이 육지전에서 최초로 승리를 거둔 전투였다. 이때 신각은 전 유도대장(留都大將) 이양원(李陽元)과 함경도 남병사 이혼(李渾), 인천 부사 이시언과 함께 일본군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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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경기도 양주 해유령에서 왜적을 상대로 벌인 전투. 16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 크게 동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일본과의 교역을 단절하여 임진왜란 직전에는 양국 간의 교섭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일본은 오랜 내란을 끝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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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海平尹氏) 선산에서 발견된 죽은 아이의 염습 의류로, 조선 시대 남자 아이의 바지. 2001년 11월 15일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48-20번지에 있는 해평 윤씨 선산에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해평 윤씨 묘역 출토 남아 바지는 시신이 입고 있던 수의이다. 해평 윤씨 묘역 출토 남아 바지는 바지통이 나누어져 있어 통변이 쉬우며, 옆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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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海平尹氏) 선산에서 발견된 죽은 아이의 염습 의류로, 조선 시대 남자 아이가 착용한 겉옷. 2001년 11월 15일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48-20번지에 있는 해평 윤씨 선산에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시신을 염할 때 사용되는 삼베 염포(殮布)나 이불을 대신하여 남아 중치막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 중치막은 직령 깃에 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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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海平尹氏) 선산에서 발견된 죽은 아이의 염습 의류로, 갓 태어난 아기에게 입히는 옷. 일반적으로 배냇저고리는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출생과 동시에 쌀깃[배냇저고리 아래에 옷 대신 둘러싸는 헝겊 조각]에 싸 두었다가 3일 또는 일주일이 지난 뒤 목욕시키고 나서 입히는 옷이다. 그러나 이 해평 윤씨 묘역 출토 배냇저고리는 2001년 11월 15일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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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海平尹氏) 선산에서 발견된 죽은 아이의 염의로 쓰인 베개. 일반적으로 베개는 누울 때 머리에 괴는 도구이다. 해평 윤씨 묘역 출토 베개는 2001년 11월 15일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48-20번지에 있는 해평 윤씨 선산에서 ‘어린이 미라’의 염의 중 하나로 발견되었다. 해평 윤씨 묘역 출토 베개는 누비로 만들었으며, 죽은 아이의 염의용으로 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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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海平尹氏) 선산에서 발견된 죽은 아이의 염습 의류로, 마루폭, 큰사폭, 작은사폭, 허리로 구성된 조선 시대의 남자 바지. 2001년 11월 15일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48-20번지에 있는 해평 윤씨 선산에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시신을 염할 때 사용되는 삼베 염포(殮布)나 이불을 대신하여 사폭 바지를 사용하였다. 해평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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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海平尹氏) 선산에서 발견된 죽은 아이의 염습 의류. 2001년 11월 15일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48-20번지에 있는 해평 윤씨 선산에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시신을 염할 때 사용되는 삼베 염포나 이불을 대신하여 성인 중치막을 사용하였다. 소매가 좁은 중치막을 ‘창옷’이라고 하는데 여름용은 홑옷으로 모시나 사(紗)로 만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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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海平尹氏) 선산에서 발견된 죽은 아이의 염습 의류로, 말총, 가죽, 헝겊 등으로 양태 없이 밋밋하게 만든 모자. 2001년 11월 15일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48-20번지에 있는 해평 윤씨 선산에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시신을 염할 때 사용되는 삼베 염포(殮布)나 이불을 대신하여 소모자를 사용하였다. 해평 윤씨 묘역 출토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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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海平尹氏) 선산에서 출토된 죽은 아이의 염습 의류로, 누벼서 지은 아기의 옷. 2001년 11월 15일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48-20번지에 있는 해평 윤씨 선산에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시신을 염할 때 사용되는 삼베 염포(殮布)나 이불을 대신하여 아기 누비옷을 사용하였다. 해평 윤씨 묘역 출토 아기 누비옷은 발 부분을 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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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海平尹氏) 선산에서 발견된 죽은 아이의 염습 의류로, 조선 시대 여자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서부터 길게 내려 쓰던 옷. 2001년 11월 15일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48-20번지에 있는 해평 윤씨 선산에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해평 윤씨 묘역 출토 장옷은 이 미라의 시신을 염할 때 사용된 염의 의류 중 하나이다. 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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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해평 윤씨(海平尹氏) 선산에서 발견된 죽은 아이의 염습에 사용된 철릭의 소매. 2001년 11월 15일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48-20번지에 있는 해평 윤씨 선산에서 ‘어린이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시신을 염할 때 사용되는 삼베 염포(殮布)나 이불을 대신하여 철릭 소매를 사용하였다. 해평 윤씨 묘역 출토 철릭 소매는 조선 시대 성인용 철릭 소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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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옥정동에 있는 해평윤씨 집성촌. 해평(海平)은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이다. 해평윤씨의 시조는 윤군정(尹君正)으로, 고려 고종 및 원종 때에 수사공 상서 좌복야 판공부사를 지냈다. 윤군정의 손자인 윤석(尹碩)이 충숙왕 때에 충근 절의 동덕 찬화 보정 공신에 책록되고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해평윤씨가 시작되었다. 파는 문영공파(文英公派), 충간공파(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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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증조할아버지는 장원(掌苑) 윤계정(尹繼丁)이고, 할아버지는 사용(司勇) 윤희림(尹希林)이며, 아버지는 군자감 정 윤변(尹忭)이다. 어머니는 부사직 현윤명(玄允明)의 딸이다. 형은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이다. 윤근수(尹根壽)[1537~1616]는 1558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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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는 도자기 체험 학습장. 행원도예(行圓陶藝)는 도자기 제작 도예원으로,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고 어른들의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정신 수양의 장으로 도자기 체험 학습을 실시하고 있다. 1990년 3월 1일에 창립했으며 1998년 10월 1일부터 도예가 이창걸, 김선희 부부가 행원도예 체험 학습관을 개관하고 도자기 체험 학습을 실시하고 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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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 행정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국가 작용 중 입법 작용과 사법 작용을 제외한 것을 말하며, 형식적인 의미에서는 행정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작용 전체를 말한다. 입법권, 사법권과 대등한 통치권의 하나로서 행정을 행하는 권능을 행정권이라 한다. 양주시가 공익상 필요한 결과를 실현할 목적으로 행하는 기술적·정신적·법률적 사무 전체라고 볼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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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군길(君吉), 호는 행촌(杏村). 아버지는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를 주도하였던 호조 참판 정언각(鄭彦慤)이고, 어머니는 고령 신씨로 우참찬 신공제(申公濟)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진주 유씨로 도총관 유진동(柳辰仝)의 딸이다. 둘째 부인은 창녕 성씨로 봉직랑 성언박(成彦博)의 딸이다. 아들은 정문영(鄭文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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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양주목 관아(楊州牧官衙)의 형 집행 터. 포청 터는 조선 시대 범죄자들을 잡아 다스리는 포도청이 있던 곳으로, 양주목 관아가 존재하였던 조선 시대까지는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형수를 처형하는 장소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행형장이라고도 불렸다.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1871]에 토포청(討捕廳)이 17칸 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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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선조(先祖) 혹은 선현(先賢)의 신주(神主)나 영정을 모신 곳. 좁은 의미의 사당(祠堂)은 사대부가를 비롯해 일반 민가에서 자신의 조상의 신주를 모셔 두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말하는데, 넓은 의미의 사당은 사우(祠宇)와 같은 의미로 제사의 대상에 조상뿐만 아니라 선현까지 포함한다. 사우는 지역에 따라 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이사(里祠)·영당(影堂)·별묘(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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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만 전수되는 조리법으로 만든 토속 음식. 양주가 속해 있는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바다에 면하여 있고, 기후는 중부의 내륙 분지에 위치하여 한서(寒暑)의 차가 심하고 강수량은 많은 편이다. 서해안의 해물과 산골의 산채는 물론 밭곡식도 여러 가지가 골고루 있어 향토 음식은 소박하면서도 다양하다. 양주의 음식은 서울 음식이 사치스럽고 가짓수가 많은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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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향토지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룩해 낸 주체와 객체 그리고 매개체의 유기적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원래 최초의 향토지는 조선 후기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 『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를 비롯한 각종 지리지에서 출발한다. 해방 이후 향토지는 향토사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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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선조(先祖) 혹은 선현(先賢)의 신주(神主)나 영정을 모신 곳. 좁은 의미의 사당(祠堂)은 사대부가를 비롯해 일반 민가에서 자신의 조상의 신주를 모셔 두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말하는데, 넓은 의미의 사당은 사우(祠宇)와 같은 의미로 제사의 대상에 조상뿐만 아니라 선현까지 포함한다. 사우는 지역에 따라 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이사(里祠)·영당(影堂)·별묘(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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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암각문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 자는 문보(文父)·화보(和父), 호는 미수(眉叟)·대령노인(臺嶺老人). 증조할아버지는 의정부 찬성 허자(許磁)이고, 할아버지는 별제 허강(許橿)이며, 아버지는 연천 현감 허교(許喬)이다. 어머니는 나주 임씨로 정랑 임제(林悌)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로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손녀이다. 허목(許穆)[159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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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서 삼척의 퇴조비(退潮碑)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허미수와 퇴조비」는 조선 시대 문신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이 삼척부사 시절 세운 퇴조비에 관해 전승되는 이야기로서 후임 부사가 퇴조비를 부술 것을 예언하여 미리 대비해 두고, 그것 때문에 조수로 인한 물난리를 면했다는 유적에 얽힌 신이담이다.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양주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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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 있는 허브 농장. 음악가였던 최혜경이 우리나라에 허브를 도입하고 개척한 그의 아버지 최영전 박사의 뜻을 이어받아 2002년에 착공하여 2007년 자연 정원인 허브힐을 완공, 개관하였다. 2009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고 지원을 받아 농촌 체험 교육장으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하우스 온실과 허브 육종과 관련된 각종 부대시설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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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형(季馨), 호는 왕산(旺山).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4형제 중 막내로, 형은 허훈(許薰)[1990년 애국장 추서]·허신(許藎)·허겸(許兼)[1991년 애국장 추서]이다. 자녀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허학·허영·허준·허국이다. 허위(許蔿)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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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들 사이의 낮은 능선부. 고개는 산을 넘어가는 능선부로서 예로부터 사람과 물자 교류의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현재는 교통의 발달로 고개가 차지하는 교통상의 지위는 거의 상실하였고, 대부분 등산로나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 양주시의 지세는 대체로 험한 산지를 이룬다. 북동부의 동두천시와 남부의 의정부시 사이에는 남북 주향(南北走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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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현내면(縣內面)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고구려·백제에서 내을매(內乙買) 혹은 내이미(內爾米)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내을매현 혹은 내이미라는 땅 이름은 이미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면서 경덕왕 때에 이르러 사천현(沙川縣)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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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한국사 속에서 전개된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회 구조와 계층, 생산력 등을 바탕으로 시대 구분을 하며 그에 따라 고대나 중세, 근세, 근대, 현대 등의 구분을 하기 마련이다. 시대 구분을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시대의 전환점, 즉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를 제시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사에서 특히 남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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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마전동에 있는 현충탑(顯忠塔). 현충탑은 6·25 전쟁 참전 등 조국 수호와 국토방위를 위해 공헌하거나 장렬히 산화한 호국 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주민들의 호국 보훈 정신 함양에 기여하며, 더불어 민(民)·관(官)·군(軍)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2001년 12월에 건립되었다. 현충탑은 양주시청 북쪽에 위치한 테니스장 옆에 자리하고 있다. 천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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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형수(馨叟). 증조할아버지는 안원기(安原起), 할아버지는 안처(安處), 아버지는 안지(安地)다. 어머니는 경주 정씨(慶州鄭氏)로 호군(護軍) 정지의(鄭之義)의 딸이다. 자녀는 3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사축(司畜) 안서기(安瑞麒), 현령 안서봉(安瑞鳳), 첨지 안서황(安瑞凰)이다. 안극치(安克治)[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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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유생.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형연(瀅然).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임익신(任翊臣)이고, 할아버지는 형조 참판 임광(任絖), 아버지는 광흥창 수 임윤석(任允錫)이다. 어머니는 원주 변씨로 승지 변효성(邊孝誠)의 딸이다. 임형(任瀅)[1629~1665]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문과에는 떨어져 벼슬길에 오르지는 못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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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와 파주시 광탄면의 경계 지역에 있는 산봉우리. 개명산과 나란히 서 있는 봉우리라 형제봉(兄弟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개명산은 북쪽에 있고, 형제봉은 남쪽에 있다. 그러나 형제봉이라는 이름이 옛날 이 일대에 살았던 의좋은 형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옛날 이 봉우리 양쪽에 있는 돌고개와 자그나골에 의좋은 형제가 살았는데, 이 봉우리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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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와 파주시 광탄면의 경계 지역에 있는 산봉우리. 개명산과 나란히 서 있는 봉우리라 형제봉(兄弟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개명산은 북쪽에 있고, 형제봉은 남쪽에 있다. 그러나 형제봉이라는 이름이 옛날 이 일대에 살았던 의좋은 형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옛날 이 봉우리 양쪽에 있는 돌고개와 자그나골에 의좋은 형제가 살았는데, 이 봉우리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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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 지역에서 형제투금(兄弟投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형제투금」은 의형제를 맺은 형과 아우가 함께 길에서 생금덩이를 주웠는데, 이후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기 위하여 금을 버린다는 우애담이다. 또한 버린 금이 황금 구렁이로 변하고, 다시 2개의 같은 크기의 금으로 변한다는 신이담이기도 하다. 「형제투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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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혜백(惠伯), 호는 수허재(守虛齋). 고조할아버지는 경기 관찰사를 지낸 해봉(海峰) 홍명원(洪命元)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성암(醒庵) 홍처후(洪處厚)로 역시 경기 관찰사를 지냈다.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 홍수하(洪受河)이고, 아버지는 이조 참판 홍우석(洪禹錫)이다. 어머니는 이중린(李仲獜)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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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목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곡(壺谷). 아버지는 부사 남득명(南得明)이다. 남용익(南龍翼)[1628~1692]은 1646년(인조 24) 진사가 되었고, 164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시강원 설서, 성균관 전적, 삼사를 지냈고, 병조좌랑과 홍문관 부수찬 등 중앙의 요직을 거쳐 경상 도사로 나갔다. 1655년(효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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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에서 장흥면 일영리를 거쳐 고양시 원당동으로 연결되는 국도. 국도 39호선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서 경기도 의정부시까지 연결되는 도로로, 총 길이는 222.8㎞이다. 그 중 왕복 2차선은 117.6㎞, 왕복 4차선은 99.8㎞, 왕복 6차선은 5.4㎞이고, 도로 포장률은 100%이다. 전국 25개 남북 노선 가운데 하나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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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 지역에서 호랑이 뱃속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호랑이 뱃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사람」은 호랑이에게 통째로 잡아먹혀 뱃속까지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 사람의 소화(笑話)이다. 소화는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인데, 「호랑이 뱃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사람」은 그중에서도 현실에는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인 과장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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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군 미금읍 지역에서 서경덕(徐敬德)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호랑이를 물리친 서화담」은 별호인 화담(花潭)으로 더 많이 알려진 조선 중기의 유학자 서경덕[1489~1546]이 뛰어난 도술 실력으로 제자와 호랑이를 다룬다는 신이담이다. 서화담은 황진이(黃眞伊),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리기도 하며, 황진이와 관련한 일화도 유명하다.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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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사용된, 소 한 마리의 힘을 이용해 논밭을 가는 쟁기. 쟁기는 땅을 갈아엎어 잡초를 제거하고 토양을 다공성(多孔性)으로 만들기 때문에 농사에 반드시 필요한 기구였다. 호리쟁기는 한국의 전통 쟁기 중 하나로, 중부 이남의 평야 지대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에 있는 농기구민속박물관에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사용된 호리쟁기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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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 남쪽 지역과 방성리 및 어둔동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산에 바위가 많으며 범[호랑이]이 많이 울어 대던 산이라 해서 범울산이라 부르다가 호명산(虎鳴山)으로 굳어졌다. 옛날에는 각종 산짐승이 많이 살았으며 특히 호랑이가 밤마다 사납게 울어 대어 사람들이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 세조대에 김질이 녹양평 일대[현재 양주시 어둔동, 의정부 일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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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음력 6월 말~7월 초쯤 김매기를 끝내고 일꾼을 대접하는 풍습. 호미씻이는 음력 6월 말에서 7월 초가 되면 농사는 세 벌 논매기를 마치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데, 이때 그동안 수고한 일꾼들을 하루 쉬게 하는 풍속이다. 이를 호미씨세, 세서연(洗鋤宴), 풋굿, 초연(草宴) 등이라고도 한다. 논매기 등이 끝난 후 날을 받아 백중을 전후하여 하루를 쉬면서 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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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음력 6월 말~7월 초쯤 김매기를 끝내고 일꾼을 대접하는 풍습. 호미씻이는 음력 6월 말에서 7월 초가 되면 농사는 세 벌 논매기를 마치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데, 이때 그동안 수고한 일꾼들을 하루 쉬게 하는 풍속이다. 이를 호미씨세, 세서연(洗鋤宴), 풋굿, 초연(草宴) 등이라고도 한다. 논매기 등이 끝난 후 날을 받아 백중을 전후하여 하루를 쉬면서 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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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는 사회 복지 시설. 호산나의 집은 30명 미만의 장애인들을 수용하여 생활과 자립을 돕고 있는 중증 장애인 요양 시설이다. 호산나의 집은 장애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그들이 사회와 함께하는 참여 복지를 성취하고 교육과 재활 훈련을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0년 1월 1일 설립되었으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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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조용원(趙鏞元), 호는 호일(胡逸).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조용한(趙鏞漢)이고, 누나는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시원(趙時元)[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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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호는 노은(蘆隱). 서도(瑞道)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김영선(金永先)이다. 김규식(金奎植)[1882~1931]은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1907년 당시에는 경성부 동서 돈암현[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 살았다. 대한제국 시위대부교(侍衛隊副校)·육군연성학교(陸軍硏成學校)의 조교로 있었다. 1907년 6월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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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존재한 지방 세력. 호족(豪族)은 통일 신라 말기의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지방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여 지방 사회에서 지역에 대한 일정한 행정적·경제적·군사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던 독자적인 지방 세력으로 사회 변동을 주도한 지배 세력이었다. 호족은 대체로 낙향한 귀족 세력, 지방의 군진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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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목사를 역임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호중(浩仲), 호는 이지(二知). 증조할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신석정(申碩丁), 할아버지는 서윤(庶尹) 신단(申湍), 아버지는 승지 신경락(申景洛)이다. 어머니는 파평 윤씨로 윤기묘(尹起畝)의 딸이다. 영원군(靈原君) 신경식(申景植)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유대일(兪大逸)의 딸이다. 형은 신육(申淯)이다. 신속(申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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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혼인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일련의 의례. 혼례는 한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가정을 꾸밀 때 올리는 의례이다. 이를 혼인식, 결혼식 등이라고도 한다. 혼인은 두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어 부부가 되는 중요한 평생 의례로서 개인뿐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결합을 의미한다.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는데다가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자식을 낳아 대를 잇게 되므로 혼례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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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혼인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일련의 의례. 혼례는 한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가정을 꾸밀 때 올리는 의례이다. 이를 혼인식, 결혼식 등이라고도 한다. 혼인은 두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어 부부가 되는 중요한 평생 의례로서 개인뿐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결합을 의미한다.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는데다가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자식을 낳아 대를 잇게 되므로 혼례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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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혜백(惠伯), 호는 수허재(守虛齋). 고조할아버지는 경기 관찰사를 지낸 해봉(海峰) 홍명원(洪命元)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성암(醒庵) 홍처후(洪處厚)로 역시 경기 관찰사를 지냈다.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 홍수하(洪受河)이고, 아버지는 이조 참판 홍우석(洪禹錫)이다. 어머니는 이중린(李仲獜)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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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홍구택(洪九澤)의 묘비. 홍구택[1668~1693]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윤백(潤伯)이다. 기풍이 장중하면서도 온화하고 순하여 부모를 잘 섬겼고 자제들과 사이가 좋았으며, 교우함에 있어 믿음이 있었다. 풍부한 재주와 아름다운 자질, 학문에 힘씀, 일처리의 민첩함이 있었지만, 세상에 나아가서는 뜻을 펼치지도 못하고 일찍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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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사회주의 운동가·정치가. 호는 한산(韓山)·일강(一剛)·일광(一光)·소앙(笑仰). 일명 유포심(劉怖深)·진덕삼(陳德三)·이극화(李克和)·김지강(金志綱)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유생 홍순석이다. 홍남표(洪南杓)[1888~1950]는 경기도 양주의 빈농가에서 태어났다. 1907년 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하자 아버지 홍순석은 망국의 한을 품고 음독자살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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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만초(萬初), 호는 보옹(葆翁). 고조할아버지는 홍계정(洪係貞), 증조할아버지는 홍춘경(洪春卿), 할아버지는 도승지 홍천민(洪天民)이며, 아버지는 영의정 홍서봉(洪瑞鳳)이다. 어머니는 좌승지 황혁(黃赫)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종실(宗室) 시림군(始林君) 이세준(李世俊)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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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홍명형(洪命亨)의 정려(旌閭). 홍명형[1581~1636]의 자(字)는 계통(季通), 호(號)는 무적당(無適堂), 시호는 의열(義烈)이다. 1612년(광해군 4)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이후 전적·형조 참의 등을 지냈다. 1639년(인조 17)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김상용(金尙容)과 함께 분신자살하였다. 이때 홍명형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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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에 있는 자연 마을. 홍복(洪福)은 큰 복을 받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95년 일본이 제작한 군사 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에 홍북(弘北)이라고 나와 있으나, 일제 초기의 문헌인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에는 백석면의 홍복리(弘福里)로 소개되어 있다. 홍복이라는 명칭은 2011년 현재도 사용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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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과 어둔동 및 의정부시 녹양동 일대에 걸쳐 있는 산. 홍복산(弘福山)과 관련하여 여러 설화가 전해 오고 있다. 먼저 서울의 주산이 되어 백성들의 복을 누리게 하는 산이라는 데서 홍복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 외에 종루(鐘樓)처럼 생겨서 온 겨레를 깨우치는 산이라는 이야기나 부처 모양으로 생겨서 산이 보이는 지역에서 문장가나 명필가가 많이 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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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휘세(輝世), 호는 학곡(鶴谷). 고조할아버지는 홍윤덕(洪閏德), 증조할아버지는 홍계정(洪係貞), 할아버지는 황해도 관찰사 홍춘경(洪春卿)이며, 아버지는 도승지를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홍천민(洪天民)이다. 어머니는 고흥 유씨(高興柳氏)로 고려 시중 유탁(柳濯)의 후손인 제용감 주부 유당(柳摚)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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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좋지 않은 운수를 막기 위해 지냈던 의례. 홍수맥이는 보통 음력 정월 초에 뜻밖에 당할 수 있는 사람의 액운을 미리 막거나 피한다는 예방적 차원으로 행하는 의식이다. 이를 홍수막이, 횡수막이 등이라고도 한다. 홍수맥이란 ‘뜻밖에 닥쳐오는 재액을 막는다’는 횡수(橫數)막이가 잘못 전해진 글자의 음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민간에서 전래되어 오면서 굳어 버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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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좋지 않은 운수를 막기 위해 지냈던 의례. 홍수맥이는 보통 음력 정월 초에 뜻밖에 당할 수 있는 사람의 액운을 미리 막거나 피한다는 예방적 차원으로 행하는 의식이다. 이를 홍수막이, 횡수막이 등이라고도 한다. 홍수맥이란 ‘뜻밖에 닥쳐오는 재액을 막는다’는 횡수(橫數)막이가 잘못 전해진 글자의 음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민간에서 전래되어 오면서 굳어 버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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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부(純夫). 증조할아버지는 호조참판 홍자경(洪子儆)이고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원사 홍익생(洪益生)이며, 아버지는 홍귀연(洪貴演)이다. 어머니는 좌랑 이영홍(李永弘)의 딸이고, 부인은 현령 안극치(安克治)의 딸이다. 자녀는 1남 2녀를 두었다. 홍숙(洪淑)[1464~1538]은 1492년(성종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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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 지역에서 홍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홍시를 구한 효자」는 효성이 깊은 아들이 병환이 깊은 어머니가 홍시를 드시고 싶어 하시자, 음력 이삼월에 구하기 힘든 홍시를 호랑이 등에 타고서 구해 왔다는 효행담이자 호랑이가 효자의 효성에 감동하여 효자를 돕는 기적이 일어난 감호 이적담(感虎異蹟談)이기도 하다.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출간한 『양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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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양송(楊松). 아버지는 홍재선(洪在宣)이다. 홍종헌(洪鍾憲)[1867~1919]은 천도교인으로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출신이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1905년 이후 동학에 들어가 양주 접주로 활동하였다. 이때를 전후하여 의병이 되어 항일 의병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낙향한 후에는 의병 지원 사업을 전개하여 화승총과 화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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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3리 천죽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홍죽3리 천죽 산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 월암산 3부 능선의 산제당에서 월암산 산신에게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요로움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산치성’, ‘산제’ 등이라고도 한다. 산제사를 지내는 날은 음력 10월 1일로 정해져 있는데, 해가 저물 무렵 산에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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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2리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홍죽2리 홍죽 산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 밤 자정 무렵에 홍죽2리 서쪽에 있는 마을의 진산 월암산의 산제 고사 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웃하고 있는 홍죽3리의 주민 역시 월암산 산신에게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산제[홍죽3리 천죽 산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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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1리 안골마을에서 나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홍죽1리 안골 들제사는 홍죽1리 안골마을 앞 들판인 앞벌이란 곳에서 매년 음력 7월 1일 저녁 8시 경에 마마 신[홍역 신]이 마을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우두제사’라고도 한다. 홍죽1리 안골 들제사에서는 마마 신을 모시고 위하는 치성제이다.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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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1리 안골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홍죽1리 안골 산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안골마을 동쪽의 은봉산에서 마을에 해가 없고 사람들이 무사태평하게 잘 지내기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안골마을에서는 음력 7월 1일에 마마 신에게 홍죽1리 안골 들제사를 지내고, 10월에 다시 마을 사람 모두의 평안과 무사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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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에 조성된 일반 산업 단지. 일반 산업 단지는 산업의 적정한 지방 분산을 촉진하고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하여 조성되는 산업 단지로, 시·도지사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장이 지정한다. 홍죽일반산업단지는 2006년 3월 20일 산업 단지 공업 물량을 확보하여 2008년 3월 31일 경기도 제2청사 고시 제2008-5050호에 의해 산업 단지 지정 고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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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속하는 법정리. 홍죽리(弘竹里)라는 땅 이름은 홍동리(弘洞里)와 천죽리(川竹里)에서 ‘홍’자와 ‘죽’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홍동리라는 땅 이름은 큰 마을이라는 뜻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겼고, 천죽리라는 땅 이름은 마을을 흐르는 시냇가에 있었던 대나무와 관련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홍죽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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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홍중(弘仲). 증조할아버지는 승의교위(承義校尉) 유지(柳漬)이고, 할아버지는 진도 군수 유호지(柳好池)이며, 아버지는 도총 경력(都摠經歷) 유의(柳依)이다. 어머니는 남조(南祚)의 딸이다. 부인은 신공제(申公濟)의 딸이다. 아들은 진사 유탱(柳樘)이고, 손자가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저자인 유몽인(柳夢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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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 자는 명철(明哲). 아버지는 동지 홍상부(洪尙溥)이다. 부인은 개성 왕씨로 왕족 수연대군(壽延大君) 왕규(王珪)의 딸이다. 자녀는 4남 3녀를 두었다. 홍지(洪智)는 고려 말 임진 도승을 역임하였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정6품 벼슬인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을 내렸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출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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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홍지(洪智)의 묘. 홍지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명철(明哲)이고, 아버지는 홍치(洪値)이다. 고려 유신(遺臣)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친구 사이였다. 조선 건국 후 관직을 낮추어 임진도승(臨津渡丞)이 되었다가 나중에 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거부하고, 절의를 지켜 낙향하여 시와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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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회(子晦), 호는 북정(北汀). 고조할아버지는 관찰사를 지낸 홍춘경(洪春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도승지 홍일민(洪逸民), 할아버지는 금산 군수 홍서룡(洪瑞龍)이며, 아버지는 사재감 첨정 홍명현(洪命顯)이다. 어머니는 해주 정씨(海州鄭氏)로 참판에 추증된 정용(鄭鎔)의 딸이다. 부인은 청송 심씨(靑松沈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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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재(德載), 호는 성암(醒庵). 고조할아버지는 관찰사 홍춘경(洪春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현감 홍일민(洪逸民), 할아버지는 진사 홍영필(洪永弼)이며, 아버지는 경기도 관찰사 홍명원(洪命元)이다. 어머니는 첨추(僉樞) 윤민준(尹民俊)의 딸이고 부인은 광주 정씨(光州鄭氏)로, 판서 정사호(鄭賜湖)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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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명중(明仲), 호는 석벽(石壁). 고조할아버지는 사재감 직장 홍지(洪智)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 홍경손(洪敬孫), 할아버지는 봉상시 부정(奉常寺副正)을 지낸 홍윤덕(洪閏德)이며, 아버지는 예문관 대교 홍계정(洪係貞)이다. 어머니는 언양 김씨(彦陽金氏)로 현감 김기수(金期壽)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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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애국지사. 1907년 당시 홍태순(洪太順)은 기독교를 전도하는 목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1907년 7월 20일 일제가 헤이그 밀사 사건을 구실로 사실상 고종 황제를 강제 폐위시키자, 이에 분함을 금치 못한 홍태순은 7월 22일 오후 4시 서울 덕수궁의 대한문(大漢門) 앞에서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로 국민들의 여론이 분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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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에 있는 관광농원. 삶의 질이 향상되었지만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흙과 농사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져갔다. 이에 따라 자급적 먹거리 마련과 아이들을 위한 농사 및 전통 놀이 체험 등을 통해 자연의 모습을 가진 시골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 일어나게 되었다. 나아가 자연의 풍취를 느끼며 휴식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찾기에 이르렀다. 이런 면에서 홍화농원은 옛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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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화목의 조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화목한 집 불화한 집」은 가장의 말을 잘 따르는 집안과 그렇지 않은 집안을 비교하여 가장의 말을 잘 따라야 집안이 화목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가족담이자 교훈담이다.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으나 채록 및 수집 정보는 나와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아버지 말을 잘 듣고 잘 사는 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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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암각문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 자는 문보(文父)·화보(和父), 호는 미수(眉叟)·대령노인(臺嶺老人). 증조할아버지는 의정부 찬성 허자(許磁)이고, 할아버지는 별제 허강(許橿)이며, 아버지는 연천 현감 허교(許喬)이다. 어머니는 나주 임씨로 정랑 임제(林悌)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로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손녀이다. 허목(許穆)[159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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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산북동 웃말에 있었던 우물. 꽃바위우물은 근처에 꽃이 핀 바위, 즉 꽃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화암정(花岩井)이라고도 불렀다. 꽃바위 밑에서 나오는 우물을 마을 전체에서 길어다 먹었는데, 물이 차고 수원이 풍부하여 찬우물이라고도 하였다. 서쪽으로 불곡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동쪽으로 넓은 벌판이 펼쳐지는 양주시 산북동의 중심에 있었다. 주변 야산에 안동 권씨와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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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근대까지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 일대에서 열렸던 정기 시장. 신천장(莘川場)은 양주를 관통하는 신천(莘川)에서 유래되었다. 신천은 양주군 남면 신산리(莘山里)에서 발원하여 남행하다가 회천에서 ㄱ자 형으로 돌아 북쪽으로 흘러가다 동두천 시내를 관통하여 한탄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본래 동두천 지역의 신천은 삼국 시대부터 모래내, 즉 사천(沙川)으로 불렸고 현재의 정식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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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생산되는 화훼. 경기도 양주시에는 양주화훼단지를 비롯해 양주화원, 늘봄화원 등 대략 100여 개가 넘는 화훼 업체가 있다. 양주 지역에서 재배되는 화훼는 시설 재배지의 환경을 개선하여 작목에 맞는 최적의 환경에서 꽃을 재배하여 꽃 색깔이 밝고 진하며, 잎과 줄기가 튼튼하여 병충해가 적다는 특징이 있다. 주로 생산되는 작물은 장미, 시클라멘, 심비디움, 호접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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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정동에 있는 환경실천연합회 산하 양주 지역 지회. 환경실천연합회 양주지회는 환경 보호 실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양주 주민이 주축이 되어 “맑은 물 맑은 공기 깨끗한 환경”을 회훈으로 환경 사랑 실천과 함께 생태계 파괴 및 환경오염을 감시하고, 환경 현실의 실태 파악 및 환경 계몽 교육 홍보 사업 등을 통해 환경 개선에 전력하여 건강한 자연 생태계를 보존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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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 도촌에서 한용승(韓用昇)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활 잘 쏘는 농부」는 광적면 석우리 도촌(島村)에서 살았던 양절공(襄節公) 한확(韓確)[1403~1456]의 후손 한용승이 호미를 꺾어 버린 후 서울로 가서 활을 꺾어 버리고 급제하였다는 일화이다. 「활 잘 쏘는 농부」는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는데, 이는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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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황방리(篁芳里)라는 땅 이름은 원래 감악산 아래 대나무가 무성하였고 그 모습이 흡사 꽃과 같아 황방·황뱅이·황방동이라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기록에 적혀 있는 황방리의 한자를 통해서 볼 때에는, 감악산 남쪽에 위치한 이곳에 무수히 많은 골짜기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1914년 이전에는 적성 무녀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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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 있는 수령 약 85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양주 황방리 느티나무는 수령이 오래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다.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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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황방리 원당 산제사는 매년 음력 10월 초에 감악산 남쪽의 산비탈에 있는 신당(神堂)에서 마을의 무사와 풍요로움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황방리는 양주시 남면의 북쪽 끝 마을인데 오랜 세월 동안 이 마을 사람들은 감악산과 감악산 산신을 숭배하였다. 그래서 감악산 산신을 대상으로 한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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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황방리 유물 산포지는 감악산에서 동쪽의 주능선에서 남쪽으로 있는 가지능선 남서 사면에 있다. 이곳은 원당저수지의 북동쪽에 해당한다. 2006년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양주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위한 지표 조사 때 황방리 유물 산포지 일대에서 삼국 시대 및 조선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 조각과 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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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 순교자인 황사영(黃嗣永)의 묘. 황사영[1775~1801]은 남인계 가문 사람으로,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이다. 세례명이 ‘알렉산델’로 알려져 왔으나 교회사가들에 의해 ‘알렉시오’로 확인되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시 천주교 교세와 순교자들의 약전 및 포교 방안 등을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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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에서 우고리로 넘어가는 고개. 황새등고개는 황새들이 많이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이곳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어 황새들의 서식처가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황새 등처럼 쉽게 넘어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물안재고개라고도 한다. 황새등고개는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 음지말에서 우고리 한걸음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조선 정종의 15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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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순일(黃順一)[1865~?]은 포군 부장(砲軍部長)을 지냈다. 1904~1905년경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로 이사하였으며, 1907년 9월 황재호(黃在浩)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양주를 비롯하여 적성, 포천, 가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에는 양주 출신의 의병 홍희영(洪喜永)을 포함하여 40여 명의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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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재호(黃在浩)[1872~?]는 1907년 8월 대한제국 육군 참위로 복무하던 중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낙향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적성군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권득수(權得洙)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얼마 후 권득수 부대를 흡수 통합하여 양주·파주·가평·영평 일대에서 양주 출신인 추삼만(秋三萬)·전순만(全順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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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 자는 경미(景美), 호는 서담(西潭). 증조할아버지는 황징(黃澄), 할아버지는 황준원(黃俊源), 아버지는 황탕경(黃湯卿)이다. 어머니는 오결(吳潔)의 딸이다. 부인은 이형성(李亨成)의 딸이다. 황진(黃璡)[1542~1606]은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4년(선조 7)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주서, 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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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에 있는 목조 가옥. 황천규 가옥은 ‘ㄱ’ 자형 안채와 ‘ㄴ’ 자형 바깥채로 이루어졌으며, 전체적으로 튼 ‘ㅁ’ 자형의 배치를 하고 있다. 서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안채와 바깥채가 만나는 곳에는 담을 세우고, 안마당에는 작은 화단을 꾸며 놓았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 왼쪽에 안방, 그 앞쪽에는 부엌이 위치하고 있다. 가옥의 창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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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 있는 자연 마을. 회만동(回晩洞)은 회만이를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마을 중앙에 야산이 자리 잡고 있어,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를 갈 때 돌아서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신라와 당나라의 싸움이 벌어진 매초성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가 대패하고 말을 돌린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일제초기의 문헌인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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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 있는 자연 마을. 회만동(回晩洞)은 회만이를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마을 중앙에 야산이 자리 잡고 있어,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를 갈 때 돌아서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신라와 당나라의 싸움이 벌어진 매초성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가 대패하고 말을 돌린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일제초기의 문헌인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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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회숙(會叔). 우의정 온양부원군(溫陽府院君) 정순붕(鄭順朋)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정수곤(鄭壽崑)이고, 할아버지는 정광겸(鄭光謙)이며, 아버지는 청도 군수 정창유(鄭昌兪)이다. 어머니는 이산보(李山輔)의 딸이다. 정민시(鄭民始)[1745~1800]는 어려서 작은아버지 정창사(鄭昌師)에게 입양되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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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에서 회다지를 하면서 부르는 의식요. 「회심곡」은 장례 의식에서 회다지를 할 때 달고 소리에 얹어 부르는 장례 의식요[성분요(成墳謠)]로서 백석읍 방성리 고릉말 주민이 충실히 전승·발전시켜 온 「양주 상여·회다지 소리」 중의 하나이다. 하관을 하고 봉분을 다지는 과정에서 흙을 덮고 회를 섞은 흙에 반복적으로 달구질을 하여 묘 터를 굳게 다진다. 「회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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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서 전통적으로 재배되는 토종 부추. 양주의 회암동 솔부추는 양주시 회암동 일대에서 자생하던 부추였다. 지역 농민들의 말에 따르면 30여 년 전 개울의 둑에서 자라는 자생 부추를 캐어 와서 재배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칼슘·철분·비타민 등의 영양 성분이 일반 재래 부추보다 뛰어나다 하여 한때 영양(營養) 부추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영양(英陽)이라는 지명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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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으로 넘어가는 고개. 회암령은 회암사(檜巖寺) 인근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회암사는 고려 후기에 건립된 절로 지공선사·나옹선사·무학대사의 부도(浮屠)와 비가 있어 유명하다. 회암령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중반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에서 확인된다. 일명 투바위고개라고도 불린다. ‘투바위’는 6·25 전쟁 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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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으로 넘어가는 고개. 회암령은 회암사(檜巖寺) 인근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회암사는 고려 후기에 건립된 절로 지공선사·나옹선사·무학대사의 부도(浮屠)와 비가 있어 유명하다. 회암령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중반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에서 확인된다. 일명 투바위고개라고도 불린다. ‘투바위’는 6·25 전쟁 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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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에 속하는 법정동. 회암동(檜岩洞)의 옛 이름인 회암리의 땅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옛 회암면 지역에 회암사(檜巖寺)가 있어 회암골·회암동·회암으로 불렸다는 설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문헌에 따르면 ‘회암’이라는 땅 이름은 회암사라는 사찰의 이름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회암사의 창건 시기가 분명하지 않아 연대를 확정하기 힘들다. 다만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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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보루. 삼국 시대에 한강 유역으로의 진출과 방어는 당시 국운을 좌우하는 큰 문제였다. 양주시 일대는 한강 진출과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이러한 여건에 따라 적의 움직임을 살피고 때로는 공격과 방어를 행하기 위해 여러 보루를 건설하였다. 회암동 보루(檜岩洞堡壘) 역시 이 중 하나로서 양주시 및 의정부시 일대를 경계하기 위해 세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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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서 전통적으로 재배되는 토종 부추. 양주의 회암동 솔부추는 양주시 회암동 일대에서 자생하던 부추였다. 지역 농민들의 말에 따르면 30여 년 전 개울의 둑에서 자라는 자생 부추를 캐어 와서 재배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칼슘·철분·비타민 등의 영양 성분이 일반 재래 부추보다 뛰어나다 하여 한때 영양(營養) 부추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영양(英陽)이라는 지명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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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회암동 유물 산포지는 모두 네 곳에 있다. 첫째는 투바이고개 정상부에서 북쪽 천보산 방향 길을 따라가면 해발 423m 언덕 주변, 둘째는 양주시 회암동 서재말 북쪽 삼성화학 남동쪽 구릉 말단 완사면의 경작지 일대, 셋째는 회암동 서재말 남쪽 구릉 말단부의 경작지 일대, 넷째는 율정주유소 사거리 북쪽 대경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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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으로 넘어가는 고개. 회암령은 회암사(檜巖寺) 인근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회암사는 고려 후기에 건립된 절로 지공선사·나옹선사·무학대사의 부도(浮屠)와 비가 있어 유명하다. 회암령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중반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에서 확인된다. 일명 투바위고개라고도 불린다. ‘투바위’는 6·25 전쟁 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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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서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으로 넘어가는 고개. 회암령은 회암사(檜巖寺) 인근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회암사는 고려 후기에 건립된 절로 지공선사·나옹선사·무학대사의 부도(浮屠)와 비가 있어 유명하다. 회암령이라는 이름은 19세기 중반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에서 확인된다. 일명 투바위고개라고도 불린다. ‘투바위’는 6·25 전쟁 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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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보루. 삼국 시대에 한강 유역으로의 진출과 방어는 당시 국운을 좌우하는 큰 문제였다. 양주시 일대는 한강 진출과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이러한 여건에 따라 적의 움직임을 살피고 때로는 공격과 방어를 행하기 위해 여러 보루를 건설하였다. 회암동 보루(檜岩洞堡壘) 역시 이 중 하나로서 양주시 및 의정부시 일대를 경계하기 위해 세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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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회암동 유물 산포지는 모두 네 곳에 있다. 첫째는 투바이고개 정상부에서 북쪽 천보산 방향 길을 따라가면 해발 423m 언덕 주변, 둘째는 양주시 회암동 서재말 북쪽 삼성화학 남동쪽 구릉 말단 완사면의 경작지 일대, 셋째는 회암동 서재말 남쪽 구릉 말단부의 경작지 일대, 넷째는 율정주유소 사거리 북쪽 대경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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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암면(檜巖面)이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 최대 거찰인 회암사(檜巖寺)가 있어 붙여졌다. 회암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암면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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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 1174년(명종 4) 금나라 사신이 회암사에 온 적이 있다는 기록과 보우(普愚)가 1313년(충선왕 5)에 회암사에서 출가했다는 사실이 있어 회암사는 늦어도 12세기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1328년(충숙왕 15)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들어온 지공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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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檜巖寺)에 있는 조선 전기 승려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부도. 무학(無學)[1327~1405]은 삼기(三岐)[현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출신으로 속성은 박씨(朴氏)이고, 휘는 자초(自初), 당호(堂號)는 계월헌(溪月軒)이다. 1344년(충혜왕 복위 5) 18세에 출가하여,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 불법을 배웠고, 1346년(충목왕 2) 부도암에 머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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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에 있는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 앞 석등. 석등은 어둠을 밝혀 준다는 조명의 역할 이외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닌 불가(佛家)의 중요한 상징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석등은 불교가 전래되는 삼국 시대부터 제작되었는데,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益山彌勒寺址)[사적 제150호]와 부여 가탑리 절터에서 석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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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정 왕후가 아들 명종의 쾌유와 세자 탄생을 빌기 위해 만들어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 봉안한 불화. 1565년(명종 20) 불화의 화기(畵記)에 의하면 문정 왕후는 명종의 장수와 선정(善政), 왕자의 다산(多産), 왕비의 회임(懷妊)과 훌륭한 세자의 탄신을 기원하기 위하여 석가, 미륵, 아미타, 약사여래의 화상(畵像)을 각기 금화(金畵)와 채화(彩畵)로 50점씩, 모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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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1리에서 팥죽을 쑤던 할머니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강진옥 등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간행한 『양주의 구비문학』2-자료편에 실려 있다. 「회암사에서 팥죽 쑤다 빠져 죽은 할머니」는 2003년 1월 9일 강진옥·신동흔·조현설 등이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1리[현 양주시 광적면 가납1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안인수[남, 79]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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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고려 전기~조선 시대의 절터. 회암사(檜巖寺)가 정확하게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에 ‘1174년(명종 4) 금(金)나라의 사신이 회암사를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1313년(충선왕 5)에는 태고(太古) 보우(普遇)[1301~1382]가 회암사에서 광지(廣智)에게 출가하였다고 하며,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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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고려 전기~조선 시대의 절터. 회암사(檜巖寺)가 정확하게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에 ‘1174년(명종 4) 금(金)나라의 사신이 회암사를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1313년(충선왕 5)에는 태고(太古) 보우(普遇)[1301~1382]가 회암사에서 광지(廣智)에게 출가하였다고 하며,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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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 있는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든 대(臺). 괘불대(掛佛臺)는 기우제(祈雨祭)나 수륙제(水陸齊), 영산재(靈山齋) 등 불교도들이 야외에서 지내는 대규모 법회나 의식에서 예배 대상물이 되는 괘불을 걸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하는 시설물이다. 따라서 괘불대는 당간(幢竿)이나 당간 지주(幢竿支柱)와 그 형태가 유사하다. 하지만 꼭대기에 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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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 있는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든 대(臺). 괘불대(掛佛臺)는 기우제(祈雨祭)나 수륙제(水陸齊), 영산재(靈山齋) 등 불교도들이 야외에서 지내는 대규모 법회나 의식에서 예배 대상물이 되는 괘불을 걸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하는 시설물이다. 따라서 괘불대는 당간(幢竿)이나 당간 지주(幢竿支柱)와 그 형태가 유사하다. 하지만 꼭대기에 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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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 있는 당간 지주(幢竿支柱). 당간 지주는 당(幢)을 지지하기 위한 2개의 기둥을 말하는데, 깃발과 같은 형태의 불교 장엄물인 당을 걸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 당과 유사한 불교 장엄물로서 번(幡)이 있는데, 불교 경전에 서술된 그 쓰임과 용도를 보면 사찰에서 부처의 세계를 장엄하는 불구(佛具), 혹은 부처에게 공양(供養)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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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서 출토된 맷돌 2기. 맷돌은 곡물을 가루로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도구로, 한 사람이 손잡이를 돌리고 다른 한 사람은 아가리에 곡물을 흘려 넣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회암사지 맷돌과 같이 맷돌이 크거나, 갈아야 할 곡물이 많을 때에는 손잡이에 가위다리 모양으로 벌어진 맷손을 걸고 2~3명의 사람이 노를 젓듯이 앞뒤로 밀어 가며 곡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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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 있는 조선 전기 부도탑. 회암사지 부도탑은 정제된 조각 수법이나 전체적인 조형감으로 볼 때, 제작 시기를 조선 전기인 약 15세기 중엽경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회암사지 부도탑이 승려의 부도인지 아니면 불탑인지, 만일 승려의 부도라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 여러 이견이 있다. 회암사지 부도탑(檜巖寺址浮屠塔)은 양주 회암사지의 가장 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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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고려 후기 선각왕사(禪覺王師) 나옹(儺翁)의 부도. 나옹[1320~1376]은 1344년(충혜왕 복위 5) 회암사(檜巖寺)로 들어가 불교에 입문하였다. 1358년(공민왕 7) 원나라에서 돌아와 왕의 부름을 사양하고, 구월산과 금강산 등에서 은거하다가 회암사로 다시 돌아와 절을 크게 새로 지어 올렸다. 1376년(우왕 2) 경기도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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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백자 인물상. 회암사지 출토 백자인물상(檜巖寺址出土白瓷人物像)은 양주 회암사지의 보광전(寶光殿) 터 동쪽 모서리에서 출토되었다. 제작 시기는 백자의 태토와 유색, 그리고 저고리 길이 등의 복식을 고려할 때 16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회암사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백자로 만들어진 인물상으로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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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檜巖寺址)에서 출토된 고려 말~조선 초 소조 인물 두상. 양주 회암사지의 중심 불전인 보광전과 서기료, 나한전 등이 위치하는 7단지에서는 이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소조 인물상의 조각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비교적 잘 알려진 소조 인물상은 대략 3구 정도인데, 이들은 머리에 두건을 쓴 것도 있으며, 눈을 한껏 부릅뜨고 양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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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지붕마루 장식 기와. 잡상(雜像)은 지붕마루에 설치하는 장식 기와의 일종으로 인물 혹은 동물 형상의 환조(丸彫)로 만들어진다. 궁궐과 같은 왕실의 건축물 등 이외에는 사용이 제한되는데, 특히 정전(正殿), 왕의 침전(寢殿), 도성의 성문(城門)과 같이 격이 높거나 중요한 건축물에만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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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서 출토된 ‘천순경진(天順庚辰)’ 명문이 기록된 조선 전기의 수막새. 수막새는 목조 건축 지붕의 기왓골 끝에 사용되었던 기와의 한 종류이다. 수막새에 새겨진 무늬는 시기에 따라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제작 시기를 추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즉 터만 남은 절이나 건물의 창건 및 중창을 포함한 존속 기간을 추정하는 데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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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지(檜巖寺址) 8단지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청기와. 청기와는 평기와에 유약을 발라서 청색의 색채가 드러나도록 번조한 것이다. 특히 중국 명나라에서 성행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세종 대에 처음으로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회암사지 출토 청기와는 양주 회암사지 발굴 조사 시 왕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정전(正殿)의 옆에 위치하는 대장전 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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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청동제 발(鉢). 발이란 불가(佛家)에서 공양물을 담는 법기(法器)를 말한다. 흔히 나무로 제작하지만 특별한 의식에 사용하기 위하여 금속기 혹은 도자기로 제작하기도 한다. 양주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청동발은 그 수량이 매우 많으며, 그 중에서 명문이 기록되어 있는 예는 모두 6점이다. 회암사(檜巖寺)의 2단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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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청동제 발(鉢). 발이란 불가(佛家)에서 공양물을 담는 법기(法器)를 말한다. 흔히 나무로 제작하지만 특별한 의식에 사용하기 위하여 금속기 혹은 도자기로 제작하기도 한다. 양주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청동발은 그 수량이 매우 많으며, 그 중에서 명문이 기록되어 있는 예는 모두 6점이다. 회암사(檜巖寺)의 2단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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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 보광전 터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청동제 금탁(琴鐸). 금탁은 불구(佛具)의 하나로 보통 풍경(風磬) 또는 풍탁(風鐸)이라고 부르며, 경세(警世)의 의미를 지닌 도구로서 수행자의 방일(放逸)이나 나태함을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 풍탁은 처마 끝에 매다는 작은 종으로, 속에는 붕어 모양의 쇳조각을 달아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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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서 출토된 ‘홍무삼십년정축삼월일(洪武三十年丁丑三月日)’ 명문이 기록된 조선 전기 수막새. 양주 회암사지의 발굴 조사를 통해서 회암사(檜巖寺)의 중창과 직접 연결되는 연호가 새겨진 기와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홍무삼십년정축삼월일’이라는 기록이 있는 수막새는 1397년(태조 6)에 제작된 것으로 양주 회암사지 출토 명문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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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양주 회암사지(楊州檜巖寺址)에서 출토된 ‘효령대군정통병진(孝寧大君正統丙辰)’ 명문이 기록된 조선 전기의 수막새. 명문 내용에 따르면, 회암사지 출토 효령대군정통병진명수막새는 1436년(세종 18) 회암사(檜巖寺)의 중창 불사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회암사지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지름은 18.5㎝이다. 모래가 섞인 진흙 태토를 구워서 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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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율정동에서 발원하여 회암동을 지나 봉양동에서 청담천에 합류하는 하천. 회암동에 있는 회암사(檜巖寺)의 이름을 따서 회암천(檜岩川)으로 불린 듯하다. 회암동의 이전 명칭인 회암리도 회암사가 있어서 회암골·회암동·회암으로 불리다가 정착된 것이다. 회암사의 창건 시기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회암천은 공식적으로 청담천의 지류로 분류된다. 그런데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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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정동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회정1리 평촌 산신제는 매년 음력 11월 초순[5일 이내] 과거 양주군 회천읍 회정1리[현 양주시 회정동] 평촌마을로부터 약 1.5㎞ 떨어진 과골안 산등성이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회정1리는 벌말과 과골, 새골 등 세 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예전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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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정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민주인, 스스로 공부하며 개성을 키우는 개성인, 꾸준히 소질을 키워 가는 창조인, 몸과 마음이 튼튼한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고운 마음, 바른 행동, 미래의 꿈’이다. 1999년 12월 6일 회정초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고, 2001년 9월 1일 8학급 2,007명으로 개교하였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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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2동에 속하는 법정동. 회정동(檜亭洞)의 옛 이름인 회정리라는 땅 이름은 과회리(寡悔里)에서 ‘회’자와 덕정리(德亭里)에서 ‘정’자를 따서 만들었다. 과회리는 과일나무가 많았던 과골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덕정리는 독을 굽던 사람들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 혹은 덕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정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회정리라는 땅 이름은 일제 초기의 문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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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정동에 있는 수령 약 35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양주시의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20~30m이며, 잎은 어긋나고 타원형 또는 달걀꼴이며, 잎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회갈색의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갈라진다. 5월에 푸른색을 띤 누런 꽃이 피고, 열매는 작고 동글납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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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2동에 속하는 법정동. 회정동(檜亭洞)의 옛 이름인 회정리라는 땅 이름은 과회리(寡悔里)에서 ‘회’자와 덕정리(德亭里)에서 ‘정’자를 따서 만들었다. 과회리는 과일나무가 많았던 과골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덕정리는 독을 굽던 사람들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 혹은 덕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정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회정리라는 땅 이름은 일제 초기의 문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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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정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민주인, 스스로 공부하며 개성을 키우는 개성인, 꾸준히 소질을 키워 가는 창조인, 몸과 마음이 튼튼한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고운 마음, 바른 행동, 미래의 꿈’이다. 1999년 12월 6일 회정초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고, 2001년 9월 1일 8학급 2,007명으로 개교하였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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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예의 바르고 시민 의식이 투철한 도덕인, 근면 성실한 지성인,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탐구하는 창조인, 심신이 건강한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이다. 2005년 12월 26일 회천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2006년 3월 1일 입학생 231명[6학급]으로 개교하였다. 2006년 3월 1일 초대 신현우 교장이 취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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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회천청년수양회는 지역 청년들의 지식 계발과 도덕 함양은 물론 지역 사회사업 및 발전 도모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회천청년수양회는 3·1 운동의 결과 일제가 문화 정치를 표방함에 따라 각종 문화 단체의 활동이 활성화되는 시기에 설립되었다. 1924년 10월 19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덕천강습소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설립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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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즐겁게 생활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예의 바른 어린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은 크게, 행동은 바르게’이다. 2002년 9월 1일 19학급을 편성하여 회천초등학교로 개교하였으며, 초대 도기종 교장이 취임하였다. 2004년 3월 1일 제2대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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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85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암면(檜岩面)의 ‘회’자와 천천면(泉川面)의 ‘천’자를 따서 회천면(檜泉面)이라고 불렀다.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 양주에 속하였고 다시 1308년 한양부에 속하였다. 1394년 양주에 속하였으며, 1895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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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부터 200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천읍(檜泉邑)은 회천면에서 왔으며, 회천면은 천천면·어등산면·회암면 등이 합쳐질 때 회암면의 ‘회(檜)’자와 천천면의 ‘천(泉)’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삼한 시대 마한에 속하던 지역으로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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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예의 바르고 시민 의식이 투철한 도덕인, 근면 성실한 지성인,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탐구하는 창조인, 심신이 건강한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이다. 2005년 12월 26일 회천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2006년 3월 1일 입학생 231명[6학급]으로 개교하였다. 2006년 3월 1일 초대 신현우 교장이 취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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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즐겁게 생활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예의 바른 어린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은 크게, 행동은 바르게’이다. 2002년 9월 1일 19학급을 편성하여 회천초등학교로 개교하였으며, 초대 도기종 교장이 취임하였다. 2004년 3월 1일 제2대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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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좋지 않은 운수를 막기 위해 지냈던 의례. 홍수맥이는 보통 음력 정월 초에 뜻밖에 당할 수 있는 사람의 액운을 미리 막거나 피한다는 예방적 차원으로 행하는 의식이다. 이를 홍수막이, 횡수막이 등이라고도 한다. 홍수맥이란 ‘뜻밖에 닥쳐오는 재액을 막는다’는 횡수(橫數)막이가 잘못 전해진 글자의 음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민간에서 전래되어 오면서 굳어 버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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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과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횡재한 과부」는 과부인 어머니가 일을 하러 나갈 때마다 혼자 놀아야 하는 아들을 아이로 변한 산삼이 돌보아 준다는 변신담이자 과부가 산삼을 팔아 뜻밖에 부자가 되었다는 우행담이다.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행운 덕에 부자가 된다는 내용은 우행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출간한 『양주군지』에 수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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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우고리(遇古里)라는 땅 이름은 여러 개의 골짜기가 이곳에서 만난다는 뜻의 우곡리(遇谷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광석면에 소재한 우곡리(牛谷里)라는 마을이 등장하는데, 이곳이 지금의 우고리를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일설에는 연산군의 폭정 당시 삼각산 북쪽 자락에서 약 100리에 이르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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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득성마을에 있는 관광농원. 효미원 전통체험장이 자리한 곳은 마을의 지형이 호리병처럼 생긴 득성(得聖)이란 곳이다. ‘득성’이란 ‘성인이 나오는 마을’이란 뜻으로 살고 있는 여섯 집이 모두 여산 송씨인 씨족 공동체이다. 고려 말부터 600여 년을 한 곳을 지키며 살고 있는 여산 송씨 13대 종갓집 며느리 이영순은 시아버지 송수근으로부터 전통장과 전통술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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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득성마을에 있는 관광농원. 효미원 전통체험장이 자리한 곳은 마을의 지형이 호리병처럼 생긴 득성(得聖)이란 곳이다. ‘득성’이란 ‘성인이 나오는 마을’이란 뜻으로 살고 있는 여섯 집이 모두 여산 송씨인 씨족 공동체이다. 고려 말부터 600여 년을 한 곳을 지키며 살고 있는 여산 송씨 13대 종갓집 며느리 이영순은 시아버지 송수근으로부터 전통장과 전통술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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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 출신이거나 양주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에서는 넓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좁게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가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자 관계를 지배하는 행위 규범은 효(孝) 또는 효도로 집약될 수 있다. 효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유교의 도리 중 하나로 삼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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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2리 거마울마을에서 마을의 액운을 막고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효촌2리 거마울 장승제는 2년에 한 번씩 음력 8월 추석 전으로 날을 잡아 마을 입구에 있는 3기의 장승 앞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인 동시에 길 가는 사람들에게는 마을이 있음을 알리는 표식이자 이정표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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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2리 효계동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효촌2리 효계동 산제는 효촌2리 효계동마을 서쪽 고청산 8부 능선에 있는 산제당에서 매년 음력 9월 2일 밤 자정 무렵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산제는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치러졌다. 효촌2리 효계동 산제가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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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1리 회내미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효촌1리 회내미 산제는 효촌1리 회내미마을의 산제당과 산제단에서 해마다 음력 9월 3일 밤 12시[자정]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산제는 마을에서 음력 8월 30일에 미리 뽑은 제관 및 화주 5명이 9월 3일 밤에 지내는데, 이것은 마을의 평화와 마을에 사는 사람 모두의 안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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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와 남면 두곡리·구암리에 있는 저수지. 경기도 양주시에서 제일 큰 저수지로 효촌지 또는 두곡지라고도 하며, 노고산[401m] 바로 아래 북쪽 기슭에서 내려오는 비암천과 광적면 효촌리에서 흘러내리는 효촌천의 상류 계곡 물을 막아 만든 저수지이다. 효촌리는 저수지의 상류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혜택이 적으며, 남면 두곡리, 경신리, 상수리 지역을 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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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의 바르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도덕인, 늘 생각하며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창조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씩씩한 건강인, 스스로 즐겁게 공부하는 자주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37년 7월 1일 가납공립보통학교 부설 효촌간이학교로 설립되었다. 이후 1944년 4월 1일 가납국민학교 효촌분교장으로 승격되었고,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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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효촌리(孝村里)라는 땅 이름은 효가동(孝佳洞)에서 ‘효’자와 회촌리(檜村里)에서 ‘촌’자를 한자씩 따서 만들어졌다. 효가동은 옛날 효자가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회촌리는 전나무 숲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효촌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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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효촌리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 있는 효촌저수지 북동쪽에 연접한 낮은 구릉지 일대로, 화내미마을 부근에 있다. 2006년 양주시는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만들기 위해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이 일대에서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생활 유물이 발견되었다. 효촌리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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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와 남면 두곡리·구암리에 있는 저수지. 경기도 양주시에서 제일 큰 저수지로 효촌지 또는 두곡지라고도 하며, 노고산[401m] 바로 아래 북쪽 기슭에서 내려오는 비암천과 광적면 효촌리에서 흘러내리는 효촌천의 상류 계곡 물을 막아 만든 저수지이다. 효촌리는 저수지의 상류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혜택이 적으며, 남면 두곡리, 경신리, 상수리 지역을 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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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서 발원하여 남면 두곡리와 상수리를 지나 신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발원지인 효촌리의 이름을 따서 효촌천(孝村川)이 되었다. 효촌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석적면 효가동의 ‘효’자와 회촌리의 ‘촌’자를 조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효촌천은 파주시 법원읍과의 경계에 있는 노고산[401m]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남면 두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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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의 바르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도덕인, 늘 생각하며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창조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씩씩한 건강인, 스스로 즐겁게 공부하는 자주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37년 7월 1일 가납공립보통학교 부설 효촌간이학교로 설립되었다. 이후 1944년 4월 1일 가납국민학교 효촌분교장으로 승격되었고,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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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휘세(輝世), 호는 학곡(鶴谷). 고조할아버지는 홍윤덕(洪閏德), 증조할아버지는 홍계정(洪係貞), 할아버지는 황해도 관찰사 홍춘경(洪春卿)이며, 아버지는 도승지를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홍천민(洪天民)이다. 어머니는 고흥 유씨(高興柳氏)로 고려 시중 유탁(柳濯)의 후손인 제용감 주부 유당(柳摚)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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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관광지는 서울의 북서쪽 약 17㎞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의정부시, 서쪽으로 고양시, 파주시와 인접하고 있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연결되면서 서울과 더욱 가까워졌다. 잠깐 마실 나왔다가 차 한 잔의 대화를 나누고 귀가해도 충분해질 만큼이나 가깝다. 여유가 있다면 북한산 국립공원의 산과 계곡, 아름다운 예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1일 휴양지로 찾을 수 있다. 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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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목사를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수원. 자는 사위(士偉), 호는 휴암(休菴). 증조할아버지는 백효삼(白效參)이고 할아버지는 참교를 지낸 백사수(白思粹)이며, 아버지는 왕자의 스승이었던 백익견(白益堅)이다. 어머니는 단양 우씨(丹陽禹氏)로 우종은(禹從殷)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평택 임씨(平澤林氏)로 아들 백유공(白惟恭)을 낳고 일찍 죽었다. 둘째 부인 순흥 안씨(順興安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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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던 다리 또는 그 다리가 있던 자연 마을. 신산리를 관통하는 시내인 입암천(立巖川)을 건너기 위해 흙으로 다리를 만들었는데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마을과 장이 형성되어 마을 이름을 흙다리, 시장 이름을 토교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편 일설에는 구 남면사무소 부근의 길 양쪽에 집이 들어선 모습이 마치 장터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원래 흙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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