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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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夢星 |
이칭/별칭 | 응상(應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탁현진 |
출생 시기/일시 | 1561년 - 전몽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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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3년 - 전몽성 무과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전몽성 금산 전투에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597년 - 전몽성, 의병을 규합함 |
몰년 시기/일시 | 1597년 - 전몽성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98년 - 전몽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전씨 충효문이 세워짐 |
사당|배향지 | 영암 장동사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432-1 |
정려문 | 전씨 충효문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장동 마을 553-1 |
성격 | 무신|의병장 |
성별 | 남 |
본관 | 천안 |
대표 관직 | 현감 |
[정의]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의병장.
[가계]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응상(應祥)이다. 아버지는 충순위를 지낸 전방필(全邦弼)이며, 형제로는 전몽일(全夢日), 전몽진(全夢辰), 전몽태(全夢台)가 있다.
[활동 사항]
전몽성(全夢星)[1561~1597]은 1583년 무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초토사 고경명(高敬命) 휘하에서 금산 전투에 참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아우 전몽진(全夢辰), 첨사 김덕흡(金德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격파하였다. 영암의 해암포(海岩浦) 싸움에서 왜군과 전투 중에 아우 전몽진이 전사하고 화살이 떨어지자, “나라의 적을 무찌르는 것은 신하의 도리이다.” 하고 크게 외치고는 적진으로 뛰어들어 온힘을 다해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숙종 때 병조 참의에 추증되었고, 전라남도 기념물 제109호로 지정된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의 영암 장동사(靈巖長洞祠)에 배향되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의 전씨 충효문(全氏忠孝門)은 전몽성·전몽진의 충절과 막내아우 전몽태(全夢台)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조선 후기 문인인 송내희(宋來熙)가 쓴 『금곡집(錦谷集)』에는 「전함평몽성사과몽태형제전(全咸平夢星司果夢台兄弟傳)」이란 글이 실려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금산과 진산(珍山)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운 전몽성·전몽태 형제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