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6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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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回甲 |
이칭/별칭 | 화갑(華甲),화갑(花甲),환갑,주갑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표인주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사람이 태어나 61세 되는 해에 맞는 생일.
[개설]
영암군에서는 해마다 돌아오는 출생일을 생일이라 하고 농가에는 귀빠진 날이라고 하여 떡과 미역국을 준비하고 가족들이 한곳에 모여 축하하였다. 하물며 회갑은 태어난 간지(干支)의 해가 다시 돌아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더욱 경사스러운 생일이라 할 수 있다. 회갑을 화갑(華甲)·화갑(花甲)·환갑(還甲)·주갑(周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암군에서는 회갑 때에는 집안에서 자손들이 큰 잔치를 하는데 이는 회갑을 맞이하는 부모님을 축하하려는 것으로, 매년 맞이하는 생일잔치와는 의미가 다르다. 즉,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일찍 죽거나 회갑을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이가 많았다. 그래서 평생 의례 중에서도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면 비로소 사람으로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축복하며 부모나 어른들이 아이를 위하여 백일잔치를 성대하게 치러 주었다. 백일을 넘겼다고 하더라도 수명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회갑을 넘기기는 쉽지 않아 회갑을 맞이하면 장수를 축하하고자 자손들이 성대하게 회갑잔치, 회갑연(回甲宴)을 바쳤던 것이다.
회갑잔치를 치르고 나면 회갑일로부터 “남의 나이를 먹는다.”라거나 “세상을 두 번 산다.”라고도 말하며, 회갑잔치를 일컬어 “살아 있는 조상을 대상으로 산[生] 제사를 지낸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잔치상도 제상과 다름없이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차리고, 축배를 하고 즐겁게 해 준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회갑을 축하하였는지는 기록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에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왕의 생일을 천춘절(千春節) 또는 천춘절(千春節)이라 하여 기념하였고, 조선 왕조에 와서도 궁중에서 탄신에 대한 행사가 있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최소한 회갑을 축하하는 행사도 고려 말 이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절차]
제사가 가문이나 지방의 습속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른 것처럼 회갑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회갑잔치의 규모도 가족의 경제적인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대개 농촌에서는 자손들이 회갑을 맞이한 당사자와 그 배우자에게 한복을 해 주는데, 남자의 한복은 명주 바지와 저고리, 회색 두루마기를 해 주고, 여자의 한복은 호박단 저고리와 치마를 해 준다. 자손들도 모두 한복을 입는다. 이는 가정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아침밥은 평상시 생일잔치를 하는 것처럼 장만한 음식에다가 미역국을 끓여 놓고 가족과 함께 식사한다. 그리고 열한 시 무렵에 마당에 차일을 치고 큰상을 차린다. 큰상의 차림은 교자상에 목기를 올리는데 제상의 차림처럼 한다. 다만 제상에는 탕과 밥이 있으나 회갑상에는 없다. 그리고 회갑상에 올리는 음식은 되도록이면 높이 쌓아 차려 놓으나 그것도 가정 형편에 따라 차이가 크다. 회갑상 차림이 끝나면 장남 내외가 절을 하는데, 제사 때와 같이 남자는 재배(再拜), 여자는 사배(四拜)를 해야 하지만 지금은 남녀가 똑같이 재배하는 게 보통이다.
모든 자손의 절이 끝나면 큰상을 치우고 곧 잔치를 시작한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부조를 할 때에는 자식들은 주로 의복과 돈을, 마을 사람들은 잔치에 필요한 고기·술·담배 등을 보낸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회갑 은 본래 생일에 치러야 하지만 지금은 주로 날을 가려 앞당겨서 잔치를 벌이는 게 보통이고, 아예 회갑잔치를 생략하고 여행을 다녀오거나 간단하게 치르는 대신 칠순을 성대하게 치르는 사례가 일반화되고 있다. 즉, 회갑잔치가 칠순잔치로 옮겨 가는 흐름인 것이다. 그것은 의학의 발달과 더불어 평균 수명이 길어진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회갑의 의미 역시 차츰 축소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