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6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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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喪禮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박종오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에 수반되는 모든 의례.
[개설]
상례 는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에 수반되는 모든 의례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상례는 상중에 행하는 모든 의례를 의미하고, 장례는 그중에서 장사를 지내는 예법과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례는 사람이 운명하는 순간부터 시신에 수의를 입히고 입관하고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것은 물론, 근친들이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평상 생활로 돌아갈 때까지의 각종 의례를 통틀어 말한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에서 죽음은 단순히 인간의 생물학적인 활동이 정지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현세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간다고 믿었다. 상례는 그러한 관념들이 행위로 표현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유형의 상례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례에 따라 지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부여(夫餘) 조에 “여름에는 얼음을 사용하고, 사람을 죽여 순장을 하는데, 많으면 백 명이나 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옥저(沃沮) 조에는 “죽은 자는 모두 가매장을 하는데, 겨우 형태만 덮은 후 피부와 살이 썩으면 이내 뼈를 취하여 곽 안에 둔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볼 때 지배층 계급에 속한 사람이 죽었을 때 산 사람을 함께 묻던 순장(殉葬) 풍속과 장사 지내고 다시 시신을 옮겨 묻는 세골장(洗骨葬)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부여(夫餘) 조에는 “장사는 후하게 치르고, 곽은 있으나 관은 없다. 『위략』에 따르면, ‘그 풍속에 장사는 5개월이나 되는데, 오래 지낼수록 성한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당시에는 매장을 서두르지 않는 지장(遲葬)의 풍속이 있어 상주는 시신을 매장하는 마무리 절차인 치장(治葬)을 서두르지 않다가 주위에서 억지로 청할 때에 행하는 것을 망자에 대한 도리라고 믿었던 풍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삼국 통일을 전후하여 매장법과 화장법이 도입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적 의례가 보편화되었다. 조선 시대의 말엽에는 천주교식·기독교식의 상례가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일제 강점기 때 화장이 보급되고 유교 의례가 간소화되었다. 지금은 장례식장 등 전문 대행자가 등장하면서 장례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절차]
일반적으로 전통 상례의 절차는 죽음을 인식하는 단계에서부터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단계까지를 말하는데, 이러한 절차는 영암 지역에서도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것으로, 지역이나 집안에 상관없이 그 내용이 비슷하다. 영암 지역에서 행해졌던 일반적인 상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초종례(初終禮)
1) 임종(臨終): 집안에 임종이 가까운 어른이 있으면 안방으로 모신다. 이때 머리는 윗목으로 두게 하고 자손들이 곁에서 수발을 든다. 부모가 운명하는 순간에 자식이 자리를 지키는 것을 ‘종신(終身)’이라고 한다. 운명한 것을 확인하는 방법으로는 코에 손을 대 보고 가슴에 귀를 대 본다. 임종을 확인한 자손들은 곁에서 곡(哭)을 한다.
2) 초혼(招魂): 초상이 발생하면 죽은 이의 육체를 떠난 혼을 불러들이는 ‘초혼’을 행한다. 이를 ‘고복(皐復)’이라고도 한다. 한 손에 죽은 이의 속적삼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북쪽을 바라보고 성씨와 주소를 불러 가면서 “복! 복! 복!”이라고 외친다. 초혼을 마치고 속적삼은 지붕 위에 올려놓고 내려온다. 속적삼은 사흘 후에 내려서 죽은 이가 생전에 입던 옷가지들과 함께 태운다.
3) 수시(收屍): 안방의 윗목에 머리가 동쪽을 향하도록 하여 죽은 이를 모신다. 이는 죽은 이의 손발을 묶는 절차이므로 “수족을 거둔다.”라고 표현한다. 먼저 시신에 온기가 없어지면 근육이 굳기 시작하므로 팔다리를 주물러서 가지런히 편다. 그다음으로 손바닥을 마주 닿게 하여 손목을 광목으로 묶는다. 발목도 마찬가지로 묶고 발가락이 모두 천장을 향하도록 직각으로 세운다. 이어서 어깨와 다리를 광목으로 묶고, 손목과 발목을 다시 팽팽하게 새 끈으로 연결한다. 이처럼 수시가 끝나면 시신에 홑이불을 덮어 둔다. 바닥에는 짚으로 베개를 세 개나 다섯 개를 만들어 놓고, 대로 발을 엮어서 그 위에 올린다. 시신 앞에는 병풍을 쳐 둔다.
4) 사자상(使者床): 죽은 이의 혼을 저승까지 데려갈 세 명의 저승사자를 위한 제물이다. 보통 메 한 그릇과 청수 한 그릇을 올리는 경우도 있으나 대게는 대문 앞에 짚을 깔고 메 세 그릇과 짚신 세 켤레를 놓아둔다. 노자(路資)의 의미로 동전도 세 닢을 놓아둔다. 삼 일에 출상을 할 때에 짚에 싸서 땅에 묻는다.
5) 상주(喪主)와 호상(護喪): 대개 장남이 ‘맏상주’[상주, 맏상제]가 되고 큰며느리가 ‘안상주’[안상제]가 된다. 미혼자가 죽은 경우에는 부친이 주상(主喪)의 역할을 한다. 상복을 입기 전에는 남자들은 두루마기의 한쪽 팔을 빼서 초상이 났음을 표시한다. 대개 부친상에는 두루마기의 오른쪽 팔을, 모친상인 경우에는 왼쪽 팔을 뺀다. 초상에 관한 온갖 일을 도맡아 보는 호상(護喪)은 친척이나 마을 사람 중에서 상주와 친분이 있고 장례 절차에 밝은 사람에게 맡긴다. 부고장은 죽은 이의 사망 사유와 발인 날짜·시간·장소를 순서대로 적고 나서 맏상주부터 순서대로 자손들의 이름과 호상의 이름을 기입하여 인편으로 직접 전달한다.
6) 수의(壽衣)와 장지(葬地) 장례 준비: 수의는 초상이 난 후에 짓기도 하고 미리 지어 두기도 하는데, 시신에 입혀야 하기 때문에 품을 넓게 한다. 남자용 수의는 속옷과 겉옷을 비롯하여 건과 두루마기를 만들고, 여자용 수의는 남자와 동일하나 건과 두루마기만 만들지 않는다. 그 외에 남녀 모두 이불·요·손싸개·버선·목 받침·멱목(幎目)[시신의 얼굴을 싸매는 헝겊]·손발톱 주머니 다섯 개 등을 만든다. 장지를 미리 잡아 두는 것을 구산(求山)이라고 한다. 부잣집에서는 묏자리를 잡고, 관이 놓일 자리인 내광(內壙)에는 회를 반죽하여 관을 두르는 회곽(灰槨)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
2. 습염(襲殮)
습염은 죽은 이가 운명하고 나서 이튿날에 행한다. 상주가 직접 염을 하기도 하고, 복인 중에서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맡기기도 한다. 먼저 약쑥을 우린 물로 죽은 이의 몸 전체를 닦아 준다. 임종을 앞두고 자손들이 목욕을 시키기 때문에 얼굴·손·발 등 눈에 보이는 곳만 닦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얼굴을 닦아 준 후에 특별히 화장(化粧)을 시키지는 않는다.
수의를 입힐 때에는 겉옷 안에 속옷을 끼움으로써 한 번에 입히기가 수월하도록 한다. 바지를 먼저 입히고 저고리를 입힌다. 수의를 입히고 나서는 죽은 이의 손발톱을 깎아서 작은 주머니 안에 넣는다. 여자가 죽은 초상일 때에는 수의를 모두 입히고 마지막에 원삼을 입힌다. 수의를 입히고 나서는 죽은 사람의 입에 구슬이나 쌀을 물리는 반함(飯含)을 하며, 죽은 이의 입 안에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불린 쌀을 넣는다. 이때에 “백 석이요. 천 석이요. 만 석이요.”라고 말한다. 이러한 절차로 염을 한 이후에 입관을 한다. 입관을 하고 나서 죽은 이의 헌 옷으로 빈 곳을 채우는 보공(補空)을 한다. 입관이 끝나면 관을 광목으로 일곱 매듭을 지어서 묶는다.
3. 혼백(魂帛)과 영좌(靈座)
습염이 끝나면 혼백의 신위를 모셔 놓을 자리인 영좌를 만드는데, 이곳을 ‘상방’이라고 한다. 상 위에는 조의틀[교의(交椅)]을 올려 두고 혼백을 모신다. 혼백을 만들 때는 마포를 손바닥만 한 크기로 접어 중앙을 청실과 홍실로 묶는다. 이를 가주(假主)라고도 부른다. 요즘은 혼백을 대신하여 영정 사진과 지방을 써서 모신다.
4. 성복(成服)과 조문(弔問)
습염한 후에 상주들은 처음으로 상복을 입는데, 이를 성복이라 한다. 부친상일 때에는 제복의 솔기가 밖으로 드러나도록 바느질을 하고, 모친상일 때에는 솔기가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남자들은 굴건제복(屈巾祭服)을 갖추고, 여자들은 광목으로 만든 소복(素服)을 입는다. 상주는 상복을 입고 지팡이인 상장(喪杖)을 짚는데 상장은 부친상에는 대나무로, 모친상에는 미루나무로 만들어 사용한다.
자손들은 성복을 한 후에 영좌에서 제사를 지낸다. 죽은 이와 친분이 있으면 조문을 한다. 조문을 일찍 가서 염습을 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에게 인사를 드리지 않는다. 요즘은 부조를 돈으로 하지만 예전에는 상갓집에 필요한 물품을 십시일반으로 가져다주었다.
5. 상여놀이
호상(好喪)인 경우에는 발인 전날 일꾼들이 모여서 빈 상여를 메고 한바탕 논다. 이를 “상보 멘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발인할 때에 발이 엇갈리지 않도록 상여를 메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제일 앞에는 핑경[요령]을 든 소리꾼이 선다.
6. 발인(發靷)
지관은 죽은 이가 돌아가신 날짜와 시간을 가려서 발인 날짜를 정한다. 출상하는 날 중상(重喪)[탈상 전에 부모상을 거듭 당하는 것]이 닿으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하여 피하려고 노력하는데, 중상을 막으려고 부적을 써서 붙인다거나 특별한 ‘맥이’[부정이나 액을 막고자 하는 일]를 하지는 않는다.
발인제는 마을 앞 넓은 공터나 마당에서 진행한다. 발인제를 지낼 장소에 상여를 꾸며 놓고, 시간이 되면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관을 운반한다. 죽은 이를 산소로 나를 시간이 다가오면 자손들은 경건하게 발인제를 지낸다. 발인제를 지내고 죽은 이의 머리가 제일 앞으로 나가도록 상여를 멘다. 행상 제일 앞에는 만장기(輓章旗)와 명정기(銘旌旗), 공포기(公布旗) 등 깃발을 든 사람들이 선다. 그다음으로 소리꾼이 상여 앞에서 핑경을 흔들면서 장례 행렬을 이끈다. 상여 뒤로는 상제들이 곡을 하며 따라간다. 내[川]를 건너게 되거나 삼거리를 지나게 되면 잠시 멈춰서 노제(路祭)를 지낸다.
7. 하관(下官)
묏자리를 정할 때에는 죽은 이가 돌아가신 날짜 및 시간 등을 고려하여 좋은 자리로 정한다. 땅을 파기 전에는 개토제(開土祭)를 지낸다. 이어서 산신에게 땅을 다룰 것을 고하는 내용의 개토축(開土祝)을 읽고 산신제를 끝낸 후에 일을 시작한다. 하관은 지관의 지시를 따라서 진행된다. 하관 후에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맏상주가 먼저 삽으로 흙을 퍼서 광 안에 집어넣는다. 자손들은 하관을 하고 이어서 평토제(平土祭)를 지낸다. 자손들은 제사를 마치고 묘소 주위를 살핀 다음, 혼백을 모시고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8. 우제(虞祭)
상주 일행이 장지로 간 동안 부녀자들은 집 안 청소를 하고, 혼백을 모실 장소인 영호(靈戶)를 마련한다. 이를 두고 ‘상방’이라고도 한다. 자손들은 집에 돌아와서 영호에 지방을 모시고 초우제(初虞祭)를 지낸다. 죽은 이의 혼이 돌아온 것을 기념하여 지내는 제사라 하여 반혼제(返魂祭)라고도 한다. 이튿날 새벽에는 재우제(再虞祭)를 모시는데, 경우에 따라서 이를 생략하는 가정도 있다. 사흘째 새벽에는 영호에서 삼우제(三虞祭)를 지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날 혼백을 묘소 옆에 묻는 매안(埋安)을 하고, 지방을 새로 써서 상방에 모시기도 한다.
자손들은 아침 일찍 성묘를 가서 묘소 주위에 무너진 곳은 없는지, 떼는 잘 살아 있는지 등을 살핀다. 우제가 끝나면 자손들은 상방에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초상집에서 아침저녁으로 영좌 앞에 올리는 음식]을 올린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는 삭망제(朔望祭)라 하여 마을에 사는 자손들이 모두 찾아와 제사를 모신다. 최근에는 장례 절차가 대단히 간소화되어 삼우제를 끝으로 탈상을 하는 게 보통이다.
9. 소상(小祥)·대상(大祥)
죽은 이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었을 때 지내는 제사인 소상(小祥)을 지내고, 이듬해에는 초상이 난 지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인 대상(大祥)을 지낸다. 효성이 지극한 사람은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을 사는 시묘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요즘은 대상까지 삼년상을 치르는 가정은 거의 없다.
10. 탈상(脫喪)
대상 후에 이튿날 새벽이나 아침에 영호를 헌다. 상주는 이때 비로소 상복을 벗는다. 마당의 손 없는 방위를 택하여 헐어 낸 영호의 부속품과 상복, 상장 등을 태운다. 영호에 모셨던 지방도 깨끗한 곳에서 불사르거나 산소 옆에 매안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영암 지역의 일부 마을에서는 상례를 돕고자 조직한 상두계를 통하여 상부상조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으며 상례도 전통적인 관습대로 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농촌의 현대화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상례는 장례식장을 이용하여 간소화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