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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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祭禮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박종오 |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돌아가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
[개설]
제례 란 제사를 지내는 순서와 형식, 그리고 예절 등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제례는 원래 천지(天地)와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비롯하여 풍사(風師)·우사(雨師)·사직(社稷)·산악(山岳)·강천(江川)과 선왕(先王)·선조(先祖)·선사(先師)를 대상으로 하는 제사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조상 숭배의 일종으로 조상에 대하여 지내는 의례를 가리킨다.
[연원 및 변천]
예로부터 천지·일월성신을 비롯하여 풍사·우사·사직·산악·강천, 선왕·선조·선사를 대상으로 지내 온 제사는 유교가 우리 사회에 정착함에 따라 대부분의 제사 대상이 그 의미를 상실하였다. 그리하여 제례는 단지 선조, 즉 조상에 대한 의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조상 숭배가 제사로 체계화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삼국 시대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차례(茶禮)라는 형식을 갖추었고, 효(孝)를 국가적 실천 이념인 충(忠)으로 발전시킨 유학의 수용과 함께 한결 체계화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후기에 유입된 『주자가례(朱子家禮)』에서는, 조상은 자신의 근본이므로 선조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제사라고 설명하고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신분에 따라 3품 이상은 4대, 6품 이상은 3대, 7품 이하 선비들은 2대, 서민들은 부모만 지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752년(영조 28)에 사대부와 서민의 4대 봉사(奉祀)[제주를 기준으로 4대조 조상까지 제사를 모시는 것]를 허용함에 따라 4대 봉사가 제사의 문화적 전통이 되었다.
제례 는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는 성의의 표시이자 조상이 지녔던 생전의 뜻을 기리고 추모하는 의식이다. 그런데 요즘 영암 지역에서는 종교적 이유나 핵가족화 등에 따라 제례가 간소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절차]
영암 지역에서 모시는 제례는 차례와 기제사, 그리고 묘제를 들 수 있다. 명절에는 집안마다 차례를 지내고 4대조까지 기제를 모시며 5대조 이상은 묘제를 지낸다.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차례
설 과 추석 명절에는 하루 전날 저녁에 차례를 모신다. 안방에 4대조의 지방을 써서 붙이고 그 앞에 제사상을 마련한다. 조상상 옆으로는 가내 최고 신령인 성주상을 차려 둔다. 영암 지역에서는 가정에 따라서 자손들을 돌보아주는 신령인 ‘지앙’을 위한 지앙상을 성주상 옆에 차리기도 한다.
영암읍 망호리의 김영호 씨네 가정에서는 설과 추석 전날 미리 차례상을 차려 두고 이튿날 남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유교식으로 차례를 모신다. 차례상은 대청에 윗대부터 순서대로 네 개의 상을 장만한다. 설에는 떡국을 올리고 추석에는 메를 지어서 올리는데, 축문을 생략하고 단잔(單盞)을 올린다.
영암읍 남호리 김복덕 씨네 가정에서는 새벽 두 시께에 차례상을 마련한다. 대청에 성주상을 차리고 그 옆에 조상상을 마련한다. 대청의 제물을 모두 마련하고 나서 마지막에 차린다. 차례를 지내고 나서는 제물을 모두 거두어들여서 음복을 한다.
2. 기제사(忌祭祀)
종가에서는 4대조까지 기제를 모시기 때문에 1년에 기제만 도합 여덟 번을 모신다. 기제사는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살아 있던 날을 기준으로 하여 지낸다. 곧 죽기 전날 자시(子時)를 기하여 제사를 모신다.
여자들이 제물을 마련하는데, 머리카락이나 돌이 들어가지 않도록 특히 신경을 쓰며 고춧가루는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영암 지역은 바다가 가깝다 보니 숭어·병어·낙지 등의 어물이 많이 올라가는 편이다. 삼호읍에서는 낙지를 갯벌에서 잡아다가 올린다. 낙지는 볏짚을 가운데 두고 말아서 굽는다. 남자들은 미리 내외분의 지방을 써 둔다.
상을 놓을 자리에는 병풍을 치고 윗목에 제상을 차리고는 자시가 되면 경건하게 제사를 모신다. 제물은 다섯 줄을 넘기지 않도록 차리는데, 제일 앞줄에는 삼색실과를 올리고, 집사자를 기준으로 우측에 다식·약과 등을 놓는다. 다음 줄에는 무·숙주·고사리 등 여러 종류의 나물과 조기·김 등을 올린다. 어물을 올릴 때에는 머리가 동쪽을 향하게 한다. 좌측에는 어포(魚脯)를 올리고, 우측에는 식혜를 밥알만 떠서 놓는다. 탕은 삼탕을 올리고 적도 삼적을 마련한다. 삼적 중 육적(肉炙)은 소고기를 눌러서 마련한 산적이다. 그다음에 계적(鷄炙)과 숭어를 삶아 올린 어적(魚炙)을 올린다.
제물 차림이 끝나면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제주가 분향(焚香)을 하고 강신(降神)을 한다. 이어서 첫 술잔을 올리는 초헌(初獻)을 하고 축문을 읽는다. 맏이 이외의 자식들이나 손자들이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으로 둘째, 셋째 잔을 올린 다음, 조상신이 제물을 맛보는 운감(殞感)을 할 동안 마루로 나가서 잠시 문을 닫거나 병풍을 치는 합문(闔門)을 한다. 잠시 후에 기침을 하고, 방 안에 들어와 얇게 썬 무와 다시마 등으로 끓인 국인 ‘갱물’을 올린다. 모든 제사 절차가 끝나면 음복을 한다.
3. 묘제(墓祭)
1) 영암읍 망호리 김해 김씨(金海金氏) 시제
2012년 현재 망호리에는 김해 김씨 익재공파의 후손들이 17대째 거주하고 있다. 마을에 거주하는 자손들은 10대조까지 크게 시제를 모시고, 9대조부터는 다섯 개의 파로 나뉘어 시제를 모신다. 해마다 음력 10월 보름에 13대조와 12대조의 시제를 모신다. 과거에는 묘소마다 찾아다니며 시제를 모셨으나, 요즘은 마을의 중앙에 있는 김씨 문중의 사당인 영호사 강당에서 합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묘에서 지내는 제사의 비용을 마련하고자 경작하던 논밭인 위토를 각 묘소마다 마련해 두었는데, 제사 비용은 거기에서 난 소출로 충당한다. 과거에는 위토를 부치고 제물을 마련하는 조건으로 산지기를 두었다. 제사 비용은 시제를 모시는 데에 평균 100만 원 정도가 쓰인다.
제물 마련은 ‘시제답(時祭沓) 유사(有事)’라고 하여 한 집을 미리 정해서 맡기는데 제사의 제반 업무를 도맡는 자리인 유사는 하루 전에 제수를 미리 마련한다. 숭어·모쟁이·병어·조기·상어 등 크고 좋은 어물을 많이 올리며, 모두 삶아서 낸다. 특히 상어고기는 큼직하게 토막을 내어서 꼬치를 하여 구워 올린다. 문어는 볏짚에 말아서 올린다. 적은 육적으로 돼지고기·소고기 산적을 올리고, 계적은 올리지 않는다. 건어로는 상어포나 문어포를 올린다. 편은 대떡[가래떡]·인절미·시루떡 등 세 종류를 제기에 높이 고여서 놓는다. 한편, 어물 중에서 비늘이 없는 것은 올리지 못하게 한다. 또한 고춧가루는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쓰지 않으며, 동일한 이유로 과일 중에서도 복숭아는 피한다.
제관은 제사에 참석한 자손 중에서 항렬이 높고 연령이 많은 순으로 초헌관(初獻官)·아헌관(亞獻官)·종헌관(終獻官)을 뽑는다. 또한 집사를 정하여 제례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인 홀기(笏記)를 읽게 한다. 시제는 기제사와 마찬가지로 유교식 절차로 진행되는데 집사가 홀기를 읽어 그 순서를 알린다. 첫 술잔을 올리는 초헌을 한 이후에 육적인 소간을 안주로 올리고, 둘째 잔을 올리는 아헌을 하고 그 옆에 제육을 올린다. 마지막으로는 셋째 잔을 올리는 종헌을 하고 어물로 모쟁이를 올린다. 삼적을 올리는 공간은 메 앞에 미리 비워 둔다. 이처럼 강당에서 시제를 모신 이후에 제관 일행은 선산으로 가서 산신제를 모신다. 산신제를 지낼 때는 단잔을 올리고 산신축을 읽는다.
2) 영암읍 장암리 남평 문씨(南平文氏) 시제
장암리는 남평 문씨 순평파의 집성촌이다. 마을의 뒷산이 남평 문씨 선산이다. 시제는 해마다 음력으로 9월 9일인 중양절에 12대조부터 10대조까지 사흘간 제사를 모신다. 9대조 이하 조상은 음력 시월상달에 파별로 나누어 모신다. 보통은 묘소에서 시제를 지내는데, 비가 올 때에만 종가의 대청에서 지낸다.
산지기는 재실에서 제물을 장만하는데, 제물 중 어물은 바닷고기 중 으뜸으로 여기는 숭어 한 종류만 쪄서 올린다. 다른 어물은 일절 올리지 않으며, 특히 비늘이 없는 어물은 불경하다고 하여 올리지 못하게 한다. 탕은 7탕을 올린다. 삼적은 저육과 소고기 산적만을 올린다. 계적은 쓰지 않고 그 대신 닭은 삶아서 메탕[국]에 넣는다. 제물 중 메는 생략하고 이를 대신하여 편을 올린다. 모든 제물이 마련되면 지게에 실어서 묘소까지 운반한다. 참석한 자손 중에서 제관을 선출한다. 대개 초헌은 종손이 하고, 아헌은 항렬이 높은 어른, 종헌은 나이가 많은 어른이 맡는다. 헌관을 도울 집사 역할까지 다 나누어 정하면 창호지에 ‘○○할아버지 ○월 ○일 묘제를 지냅니다. 초헌·아헌·종헌·집례·축관·봉향·봉로·전작·사준·전작·봉작·척귀·관세’라고 명시한다. 보통 열한 시쯤에 시제를 모시기 시작한다. 제사 순서는 앞의 기제사와 동일하며, 산신제는 시제가 끝나면 간략한 제물를 마련하여 별도로 지낸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제례 는 예로부터 지속되고 있는 오랜 전통으로, 조상 숭배와 관련되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유교의 영향이 강했던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그 형식이 엄격해지고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으나, 현대에는 점차 그 형식이나 절차가 간소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영암 지역에서는 설날과 추석에 차례를 모시고 있으며, 조상의 기일에는 제사를 올리고 있다. 또한 집안에 따라 시제도 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