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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도와주고 명당 잡은 김완 장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816
한자 虎狼-明堂-金完將軍
이칭/별칭 김완 장군과 몽해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
집필자 정성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4년 - 「호랑이 도와주고 명당 잡은 김완 장군」, 『영암의 전설집』에 「김완 장군과 몽해」로 수록
관련 지명 「호랑이 도와주고 명당 잡은 김완 장군」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지도보기
성격 전설|출생담|인물담|보은담
주요 등장 인물 김완|호랑이|김극조
모티프 유형 태몽|어린 시절의 시련|은혜를 베풂|호랑이의 보은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에서 전해 오는 김완 장군에 얽힌 이야기.

[개설]

「호랑이 도와주고 명당 잡은 김완 장군」은 어린 시절 시련을 겪은 김완이 호랑이에게 도움을 주고 호랑이의 보은으로 명당을 잡아 복을 받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시대 무신으로 큰 활약을 한 김완(金完)[1577~1635]은 아버지 김극조(金克祧)와 어머니 천안 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완이 태어나기 전에 전씨는 영암만(靈岩灣) 바닷물이 치마폭으로 밀려드는 꿈을 꾸었다. 이로 인해 훗날 김완이 태어난 마을이 몽해(夢海) 또는 꿈바다, 굼바대 등으로 불린다.

김완이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김극조는 광양(光陽) 현감으로 있다가 이성(利城) 현감으로 옮겼는데, 후임으로 광양 현감이 된 한덕수의 모함을 받았다. 김극조는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1591년에 옥사했다. 김완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시신을 모시고 몽해에서 10리[약 3.93㎞]쯤 떨어진 서호면 엄길리에 이르렀다.

그때 호랑이가 김완의 앞을 가로막고 비키지 않았다. 호랑이가 무엇인가를 부탁하는 듯하여 김완이 호랑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호랑이의 목에 사람 뼈가 걸려 있었다. 김완이 뼈를 빼내 주자 호랑이는 인사를 하더니 김완의 옷자락을 물고 이끌었다. 김완이 이상해서 따라가 보니 호랑이가 북쪽으로 20리[7.86㎞]쯤 가서 학산면 매월리에 있는 산에 올라 앞발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곳은 갈용음수(渴龍飮水) 터라 하는 명당이었다. 김완은 그 명당에 아버지를 모셨다. 후에 김완은 1615년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다.

[모티프 분석]

「호랑이 도와주고 명당 잡은 김완 장군」은 위인의 이야기에서 흔히 나타나는 ‘태몽’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의 시련’, ‘은혜를 베풂’, ‘호랑이의 보은’을 주요 모티프로 한다. ‘태몽’, ‘어린 시절의 시련’, ‘은혜를 베풂’은 인물담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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