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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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盤松-懶翁和尙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다원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77년 8월 12일 - 「반송과 나옹화상」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박노활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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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77년 8월 14일 - 「반송과 나옹화상」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 윤경호에게 채록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78년 4월 - 「반송과 나옹화상」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이장호에게 채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79년 - 「반송과 나옹화상」 영남대학교출판부가 발행한 『인물 전설의 의미와 기능』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반송과 나옹화상」 영덕군이 발행한 『영덕군지』에 수록 |
채록지 | 「반송과 나옹화상」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
채록지 | 「반송과 나옹화상」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 |
채록지 | 「반송과 나옹화상」 채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
성격 | 설화|인물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나옹화상|중|나옹화상 어머니 |
모티프 유형 | 나옹화상의 신이담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나옹화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반송과 나옹화상」은 나옹화상(懶翁和尙)[1320~1376]이 절로 떠나면서 지팡이를 꽂았는데, 이 지팡이에서 새싹이 자라나 고목이 될 수 있었다는 신이담(神異譚)이다.
[채록/수집 상황]
1977년 8월 12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의 박노활이 구연하였고, 1977년 8월 14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의 윤경호에게도 채록하였다. 1978년 4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서 이장호에게 채록하였고, 이후 1979년에 간행된 조동일의 『인물 전설의 의미와 기능』에 「나옹, 반송과 까치소」, 「나옹, 까치소와 반송」, 「지팡이를 꽂아 심은 나무」 등의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2002년 영덕군에서 발간한 『영덕군지』에는 「반송과 나옹화상」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용]
나옹화상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없어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중이 찾아와 어머니에게 시주를 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나옹화상의 어머니는 "스님, 집이 가난하여 시주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중은 어머니에게 "저 아이를 부처님께 시주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나옹화상을 시주할 수밖에 없었다.
나옹화상은 절로 떠나면서 땅에 지팡이를 꽂고는 "어머니, 지팡이에서 새싹이 자라나면 제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시고, 지팡이가 그대로 있으면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시옵소서."라고 말하였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무에는 새싹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 지팡이는 어머니를 염려하는 나옹화상의 마음이었다.
이 나무는 700여 년의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고목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68년 영덕군에 큰 수해(水害)가 나 그만 죽고 말았다. 1970년경에 마을 사람들이 고목이 있던 자리에 사당을 짓고 나옹선사의 초상화를 모셔 두었다. 때문에 신기리를 일러 반송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티프 분석]
「반송과 나옹화상」의 주요 모티프는 '기아', '까치의 보호', '신이(神異)' 등이다. 나옹화상은 출생 당시 타인에 의해 '기아(棄兒)'가 된다. 하지만 '까치의 보호'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는 영웅의 일생 구조에서 보이는 '기아 → 구출'과 닮아 있다고 하겠다. 나옹화상이 꽂은 지팡이는 나무를 잘라 만든 것이다. 때문에 땅에 다시 꽂는다고 해서 살아날 수 없다. 하지만 나옹화상이 꽂은 지팡이는 큰 고목이 될 수 있었다. 이는 신이(神異)한 일이라 하겠다. 기아에서 까치의 보호를 받아 살아날 수 있었고, 또한 지팡이를 나무로 자라나게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신이한 일이다. 이 이야기는 신이함을 지닌 인물인 나옹화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인물이라는 전승 집단의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