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007
한자 先史
영어공식명칭 Pre-historic Period
이칭/별칭 원사시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선사/석기,선사/청동기,선사/철기
집필자 강재현

[정의]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통칭하는 시대의 역사.

[개설]

선사시대(先史時代)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시대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철기시대(鐵器時代)로 구분하고 있다. 선사시대는 당대인들의 문자 기록이 없어서 고고학적 방법에 따라 연구할 수밖에 없으며, 아울러 지질학·형질인류학·고생물학 등 학제 간 연구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철기시대에 이르면 자체적인 기록은 없으나 중국 문헌에 일부 나타나기 때문에 선사와 역사의 중간단계인 원사시대에 해당한다.

영주 지역에서는 구석기시대와 관련된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존재를 확인할 수 없으며, 신석기시대 유적은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원형의 야외 노지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고인돌과 선돌, 바위그림 외에도 마을 유적의 일부가 확인되었다. 반면 초기철기와 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석기시대]

석기시대는 인류가 돌로 만든 도구를 쓰던 시기를 뜻한다. 크게 뗀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시대와 간석기를 사용하던 신석기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구석기시대는 고인류가 처음 등장한 때부터 1만 2천 년 전 무렵 플라이스토세가 끝날 때까지에 이르는 긴 시간대에 걸친 인류 문화의 원초 단계를 가리킨다.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대라는 기술발전 단계상 한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시대는 웅기 굴포리 유적,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 뗀석기가 출토되면서 인정되었다. 영주 지역에서는 구석기시대와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이 별도로 발견되지 않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근래 들어 낙동강 상류 유역에서 간헐적으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굴되고 있으며, 죽령을 사이에 두고 구석기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하는 충청북도 단양군과 인접해 있으므로, 여러 정황상 영주 지역에도 구석기시대 유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석기시대는 간석기의 사용, 농경을 바탕으로 한 정착 생활, 토기 제작이라는 문화요소로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의 토기 등장 시점으로 보아 약 1만 년 전부터 기원전 2,000~1,500년 무렵으로 보고 있다. 영주 지역의 경우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원형의 야외 노지가 확인되었으며, 출토된 유물 역시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에 해당한다. 영주 대촌리 유적은 경북 북부 내륙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발굴 조사된 신석기시대 유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소위 ‘서해안식 빗살무늬토기’의 특징을 보여주기 때문에 향후 서해안·남해안·동해안식 빗살무늬토기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민무늬토기와 간석기가 널리 사용되며, 사회복합도가 증가한 시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청동 유물은 드물고, 남부지방에서 청동기는 늦게 보급되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의 발전단계는 민무늬토기의 등장과 변화 양상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영주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은 그동안 고인돌과 선돌, 바위그림만 알려졌으나 근래에 들어와서 발굴조사를 통해 마을 유적의 일부가 확인되었다.

먼저 영주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마을 유적은 영주 가흥동 유적이다. 이곳에서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장방형 집자리 2동이 조사되었으며, 경북 북부 지역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 유적 가운데 가장 빠른 시기에 속하는 집자리로 알려져 있다. 무덤 유적으로는 고인돌 유적이 있다. 그동안 알려진 영주 지역의 고인돌과 선돌은 휴천리 지석 및 입석, 영주 휴천동 지석묘군, 영주 교촌리 지석묘, 영주 석포리 지석묘군, 영주 반구리 지석묘군, 영주 용산리 지석묘군, 영주 사계리 지석묘군 등 모두 6개소가 확인되었으며, 그 수는 36기 정도이다. 주로 서천과 그 지류 주변에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 영주 지역의 청동기시대 바위그림 유적으로는 영주 가흥리 암각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8호]로, 고령 장기리 암각화, 포항 칠포리 암각화, 경주 석장동 암각화 등과 함께 동일 유형의 암각화에 속한다.

[철기시대]

철기시대는 철기를 사용한 시대이나 이전 시기인 청동기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발전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철기시대는 대체로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300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기원전 100년경 내지 기원전·후를 기준으로 전반부를 초기철기시대, 후반부를 원삼국시대로 부른다. 일부에서는 원삼국시대 대신에 삼한시대라 부르는 견해도 있다.

영주 지역에서 초기철기와 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은 확인된 바 없다. 다만 영주시 풍기읍 동부리의 풍기토성 지표상에서 격자문이 타날된 와질토기편이 채집되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에 원삼국시대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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