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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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基郡 |
영어공식명칭 | Punggi-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 |
집필자 | 박소희 |
[정의]
1450년부터 1914년까지 영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구역.
[개설]
풍기군(豊基郡)은 1450년(문종 즉위년)부터 1914년까지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안정면·봉현면과 예천군 은풍면·효자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초기 기천현(基川縣)은 은풍현(殷豊縣)을 속현으로 두고 있었다. 그러다 1450년 7월 문종의 태가 안치되면서 은풍현과 기천현을 합해 풍기로 고치고 군으로 승격시켰으며, 지방관도 종4품의 군수로 대체되었다. 이때 은풍현이 속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풍’자를 앞에 둔 것은 문종의 태를 안치한 곳이 은풍현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관련 기록]
『문종실록』 권2 즉위년 7월 무진[26일] 기사에 풍기군 설치 기록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지리지에도 풍기군의 연혁이 수록되어 있다. 순흥도호부 혁파에 따른 영역 분속과 환속은 『세조실록』과 『숙종실록』에 그 내용이 보인다.
[변천]
『문종실록』 권2 즉위년 7월 무진, 즉 1450년 7월 26일 기사에 따르면, 의정부가 이조의 계문에 의거해 “경상도 기천 관할 안 은풍현은 태를 안치한 곳이니, 청컨대 곤양군(昆陽郡)의 예에 의하여 군으로 승격시키고, 기천현을 합속시켜 풍기군으로 이름하소서.”라고 하였다. 즉, 왕실의 태를 안치한 곳이기에 원활한 관리를 위하여 고을의 읍격(邑格)을 승격시켰다.
1457년(세조 3) 순흥도호부에 위리안치되어 있던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순흥도호부사 이보흠(李甫欽)과 더불어 단종복위운동을 모의하다 실패로 끝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단종복위운동으로 세조는 순흥도호부를 역향(逆鄕)으로 지목하고 고을을 혁파해 버렸다. 순흥도호부 영역을 이웃한 영천군과 풍기군·봉화군으로 분속시켰는데, 『세조실록』 권10 3년 11월 기축 기사에는 “마아현(馬兒峴) 냇물[川] 이서(以西)와 소백산 대령(大嶺) 이서는 모두 풍기군에 속하게 하고, 마아현 아래 냇물 이동(以東)과 문수산(文殊山) 아래 냇물 이서, 그리고 파문단곶(破門丹串) 냇물 2리(里)는 영천군에 속하게 하며, 문수산 아래 냇물 이동은 봉화현에 속하게 하면 …”이라며, 분속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단종이 신원되고 1683년(숙종 9) 순흥도호부가 복설됨에 따라, 영천군에 분속되었던 옛 순흥도호부 땅도 환속되었다.
개항기 이후 다시 전국적인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조선 정부는 제2차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고종 32) 5월 26일[음력] 반포된 칙령 제98호 「지방제도개정에 관한 건」에 따라, 1895년 윤5월 1일[양력 6월 23일] 부로 기존의 8도 체제를 23부 체제로 개편하고,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을 부와 군으로 이원화하면서 전국이 23부 337군 체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영천군은 23부 가운데 안동부(安東府) 풍기군에 편제되었다. 이어 1895년 9월 5일[음력] 반포된 칙령 제164호 「군수의 관등 봉급 건과 각 군의 분등표」에 의거해 풍기군은 4등급 군으로 매겨졌다.
그러나 지방행정 혼란으로 1896년(건양 1) 8월 4일[양력] 반포된 칙령 제36호 「지방 제도와 관제 개정에 관한 안건」에 의거해 23부가 13도 체제로 개편되면서 경상북도 풍기군에 편제되었다. 풍기군은 1914년 4월 1일 실시된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소멸되었다. 조선총독부는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하여, 토지조사사업 등을 통한 방대한 국토 자료를 바탕으로 전국을 13도 12부 220군으로 개편하였다. 이때 풍기군은 영천군·순흥군과 통합하여 영주군(榮州郡)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풍기군의 존재는 전통시대 지방행정구역 구획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로, 1450년 기존의 기천현을 풍기군으로 승격시킨 것도 문종의 태가 안치되었기 때문이다. 또 단종복위운동에 따라 순흥도호부의 영역을 이웃 고을에 합속시켰다가, 다시 환속한 것도 인적 연고와 관련되어 있다. 한편, 개항기 이후 풍기군의 존재는 근대적 지방행정제도의 개편 과정과 특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