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67 |
---|---|
한자 | 新幹會榮州支會 |
영어공식명칭 | Yeongju Branch of Singanho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명근 |
[정의]
1927년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설립된 신간회 소속 지회.
[개설]
신간회(新幹會)는 일제강점기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통일전선에 의해 성립된 민족운동 단체이다. 1927년 2월 신간회가 결성된 후 전국의 사회운동 단체들이 지지 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족운동이 활성화되었고, 이는 전국적인 지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영주 지역에서도 1927년 8월 29일 영주청년회관에서 신간회 영주지회가 결성되었다.
[설립 목적]
영주 지역에서는 신간회 설립에 앞서 유림단(儒林團)의 독립청원운동, 제2차 유림단의거, 영주청년회, 영주청년동맹, 풍기소작조합 등 민족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신간회 영주지회는 이러한 단체들의 활동을 기반으로 전 민족적 통일 운동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변천]
신간회 영주지회는 창립 당시 1927년 8월 29일 회장은 권상두(權相斗), 부회장 송상갑(宋相甲)이었지만, 1928년 3월 24일에는 회장 박제형(朴齊衡), 부회장 이범진(李範鎭)으로 바뀌었다. 다시 1929년 1월 15일에는 회장 이범진, 부회장 김동필(金東弼) 체제로 바뀌었으며, 1929년 7월 30일에는 위원장이 김기국(金基國)으로 변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간회 영주지회는 1927년 8월 29일 신간회 본부에서 온 홍명희(洪命憙)가 참석한 가운데 설립되었다. 신간회 영주지회는 서무부·재정부·정치문화부·조사연구부·조직선전부 등 5개 부서를 두고 활동하였다. 회원 수가 많을 때는 500여 명에 달했으며, 1년에 한 차례 정기대회와 임시대회를 개최하였다.
신간회 영주지회의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구제 활동이 있다. 1928년 영주 지역에 가뭄으로 인해 큰 피해가 발생하고, 이재민이 속출하자, 이재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영주청년동맹 등 지역 사회단체들과 함께 구제 활동을 전개하였다. 구제비 모금을 통해 피해 주민에게 지원하는 등 많은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8년부터 일제 당국의 탄압이 심해져서 신간회 영주지회가 준비하던 여러 행사가 무산되는 등 활동에 큰 제약을 겪으며 위축되었다. 특히 영주격문사건과 영주청년동맹을 비롯한 결사 활동으로 말미암아 신간회 영주지회의 전·현직 간부들이 검거되어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현황]
1931년 5월 16일 신간회 전체대회에서 해소안이 가결되면서 신간회 영주지회 활동도 중단되었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는 1920년대 일제의 지배정책에 대응하여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서로 협력하면서 운동을 전개한 데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영주 지역에서도 기존 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신간회 영주지회가 설립되어 민족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