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445
한자 三判書古宅
영어공식명칭 Sampanseo Historic House
이칭/별칭 판서댁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선비로181번길 56-1[가흥동 9-2]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태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훼철|철거 시기/일시 1961년 - 삼판서 고택 훼손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8년연표보기 - 삼판서 고택 복원
현 소재지 삼판서 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선비로181번길 56-1[가흥동 9-2]지도보기
성격 전통가옥
양식 팔작지붕|맞배지붕
정면 칸수 7칸
측면 칸수 6칸
소유자 영주시
관리자 영주시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고려시대 전통가옥.

[개설]

삼판서 고택(三判書古宅)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세 명의 판서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판서 고택은 고려시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영주 지역을 대표하는 고적(古蹟)이다.

[위치]

삼판서 고택영주시청에서 북쪽으로 약 2㎞ 거리에 떨어진 구학공원에 있다. 구학공원서천변 얕은 구릉에 조성되어 있는데, 삼판서 고택은 구릉을 평지로 조성하여 남향으로 앉혔다. 서쪽은 영주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서천이 유유히 흐르고, 동쪽은 서천변 구릉에 노송이 우거져 풍광이 그윽하다. 삼판서 고택 뒤에는 2007년 중건된 제민루(齊民樓)가 있다.

[변천]

삼판서 고택은 고려시대 건물로 약 1200년대나 1300년대 이미 구성산 아래 건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판서 고택의 첫 번째 주인은 고려시대 형부상서[조선시대 형조판서]를 지낸 정운경(鄭云敬)[1305~1366]이다. 정운경은 이 고택을 사위인 공조판서 황유정(黃有定)[1343~?]에게 물려주었다. 황유정 역시 사위 김소량(金小良)[1384~1449]에게 고택을 물려주었는데, 김소량의 아들 김담(金淡)[1416~1464]이 이조판서에 오르면서 봉화정씨(奉化鄭氏), 평해황씨(平海黃氏), 선성김씨(宣城金氏) 세 가문에서 판서를 배출하였다.

삼판서 고택은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고향집이기도 하다. 정도전이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유배생활 뒤에 거처한 곳 역시 삼판서 고택이었다. 정도전은 시(詩) 곳곳에 고향 영주와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을 적고 있다. 이 밖에 참판 정도존(鄭道存), 한성판윤 일봉(逸峰) 정도복(鄭道復), 사헌부지평 황전(黃銓), 성균관대사성 황현(黃鉉), 순흥훈도 황연(黃鉛), 집현전교리 김증(金曾), 통례원통찬 김홍(金洪) 등을 배출하였다. 1961년 영주 대홍수로 무너진 삼판서 고택을 2008년 10월 구학공원에 복원하였다.

[형태]

삼판서 고택은 정면 7칸, 측면 6칸 규모로,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삼판서 고택은 ㅁ자형의 전통가옥으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황]

삼판서 고택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삼판서 고택은 고택음악회와 각종 전시회, 체험활동 등 다양한 문화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삼판서 고택은 성씨가 각기 다른 3공(公)이 모두 판서에 올랐던 집으로 명성이 높았다. 삼판서 고택은 건물이 웅장하지는 않으나 비교적 규모가 큰데, 영주 지역에서 소문난 명당자리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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