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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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在承 |
영어공식명칭 | Seo Jae-seung |
이칭/별칭 | 성서(聖瑞),죽림(竹林)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76년 - 서재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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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서재승 의병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15년 - 서재승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0년 - 서재승 건국포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서재승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서재승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개설]
서재승(徐在承)[1876~1915]은 1907년 정미의병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15년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고문 끝에 총살당하였다.
[가계]
서재승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성서(聖瑞), 호는 죽림(竹林)이다. 1876년 11월 25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에서 서목렬(徐穆烈)의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서재승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개하고 지기가 비범했다고 한다. 동강서숙(東岡書塾)에서 공부하였으며, 1901년 탁지부주사에 서임 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임하고 군량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준비하였다. 1907년 정미7조약에 의거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켜 수년간 대일항전을 지속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고향 영주로 피신하였다. 1915년 친일 첩자의 밀고로 전적이 드러나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었고, 서울로 압송되던 중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7월 22일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창락리에서 총살당하였다.
[저술 및 작품]
서재승의 문집으로 21권 14책의 『죽림선생문집(竹林先生文集)』이 1995년 간행되었다.
[상훈과 추모]
서재승은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1951년 후손들이 서재승을 기리기 위하여 지금의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에 창의사(彰義祠)를 건립하였으며, 1971년 이를 백산서원(白山書院)으로 승격시켰다. 또 사시(私諡)를 충의(忠義)라 하였다. 묘갈명은 김진수(金晉秀)가 짓고, 묘지명은 배동환(裵東煥)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