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10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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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恩國民學校內明分校場 |
영어공식명칭 | Naemyeong Branch School of Pyeongeun Elementary School |
이칭/별칭 | 기독내매학교,사립기독내매학교,내명학교,내명국민학교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1063-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임삼조 |
인가 시기/일시 | 1910년 4월 5일 - 기독내매학교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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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시기/일시 | 1913년 9월 1일 - 사립기독내매학교 개교 |
개칭 시기/일시 | 1942년 9월 1일 - 사립기독내매학교에서 사립내명학교로 개칭 |
개칭 시기/일시 | 1946년 9월 1일 - 사립내명학교에서 공립내명국민학교로 개칭 |
개칭 시기/일시 | 1991년 3월 1일 - 내명국민학교에서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으로 격하 |
폐교 시기/일시 | 1995년 3월 1일 -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 폐교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3년 -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 한국기독교 사적 제11호 지정 |
최초 설립지 | 사립기독내매학교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
성격 | 공립초등학교 |
설립자 | 내매교회|강석진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
[변천]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은 강석진이 1910년 4월 5일 내매교회 안에 교회가 자리 잡고 있던 마을 이름인 ‘내매(乃梅)’를 따 설립한 기독내매학교의 후신이다. 1913년 7월 14일 조선총독부 「학제 1542호」에 근거해 사립기독내매학교로 인가를 받아 1913년 9월 1일 정식으로 개교했다. 사립기독내매학교의 학구는 현 영주시 평은면과 이산면, 봉화군 상운면 일대였다.
1915년 3월 15일 제1회 졸업식을 시행하였는데, 홍옥성(洪玉成)을 비롯해 5명이 졸업했다. 1925년 9월 3일 교무실 1칸, 교실 2칸으로 된 교사를 신축했다. 1942년 9월 1일 사립내명학교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1946년 8월 19일 사립학교에서 공립학교로 인가를 받아, 1946년 9월 1일 내명국민학교가 되었다. 내명국민학교는 공립학교로 인가받은 후 1946년 166명, 1947년 258명으로 매년 학생 수가 급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 15일 휴교를 했지만 3개월이 지난 1950년 10월 6일 다시 개학했다. 1964년 1월 5일 평은국민학교가 독립 개교하면서 내명국민학교의 학구는 평은면의 천본1리와 천본2리, 이산면의 신천1리로 줄어들었다.
1975년 6월 30일 대흥주식회사의 후원을 받아 4개 교실[908평(358㎡)] 및 숙직실 1동[8.4평(28㎡)]을 개축하였다. 1984년 2월 16일 제67회 졸업식을 하였는데, 남학생 10명, 여학생 14명이 졸업하였다. 1991년 3월 1일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으로 격하되었고, 영주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됨에 따라 1995년 3월 1일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은 폐교되었다.
[교육 활동]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은 1951년 9월 25일 내명국민학교 후원회를 해체하고 사친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1972년 3월 6일 향토교육발전협의회를 조직하였고, 1973년 7월 15일 체육진흥회를 조직하여 단순한 정규 교과과정만을 위한 교육기관의 역할을 넘어 지역사회와 더불어 교육적 효과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교가와 상징물]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의 교가는 현정순이 작사하고 김주연이 작곡했다.
[1절] 태백산 줄기줄기 어린 정기로/ 이룩된 매화낙지 내매 고을에/ 긴 역사 이어받은 푸르른 날개/ 우뚝이 빼어났다 우리의 모교
[2절] 낙동강 맑은 물이 겨울이 되어/ 참되라 어여뻐라 타이르는 곳/ 우리는 정답게 창공을 난다/ 배우고 익히는 겨레의 일꾼
[후렴] 자라라 슬기롭게 피어라 향기롭게/ 맑고도 아름다운 내명 꽃송이
[학교를 빛낸 인물]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에서 배출된 대표적 인물로는 강병주(姜炳周)[1882~1955], 강신명(姜信明)[1909~1985], 강백남(姜白南) 등이 있다. 강병주는 사립기독내명학교의 초대 교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영주 지역 3.1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렀다. 강신명은 1923년 사립기독내명학교의 제9회 졸업생이다. 강신명은 세계선교사 훈련원장, 연세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한 한국 기독교계의 원로이다. 강백남은 1909년 지금의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내매마을에 야학을 설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립기독내매학교가 세워지자 약 10년간 교사와 교장으로 근무하였다.
[의의와 평가]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은 일제강점기 영주시에 설립된 유일한 기독교계 사립학교이자 경상북도 사립학교 중 처음으로 조선총독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학교이다.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은 영주 지역 민족교육뿐만 아니라 사회·계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한 대표적 교육기관이다. 평은국민학교 내명분교장은 비록 사라졌지만 지역사회에 이바지한 공로가 커 2013년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한국기독교 사적 제11호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