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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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谷里寺址 |
영어음역 | Baggok-ri Saji |
영어의미역 | Archeological Site of Temple in Baggok-ri |
이칭/별칭 | 오백나한사지,박곡사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오방낭골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엄익성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 절터.
[위치]
양지에서 국도 17호선으로 백암을 지나가다 원대에서 동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박곡리에 이른다. 절터는 마을 동편 대덕산 서쪽 사면에 해당하는 오방낭골의 구릉 평지에 있다. 2011년 현재 주민들이 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고적총람(古蹟總覽)』·『사탑고적고』 등에 나타난 기록을 정리하면 “신라시대 오백나한사지로 삼층석탑 1기와 1척 5촌 크기의 석불 1구가 있으며, 수 조(條)의 석단이 있고 전부 밭으로 변하였다. 높이 약 1척의 석불 100개가 남아 있다.”고 하였다.
1990년대에 마을 주민 이낙구가 절터에서 크기 40~50㎝ 내외의 곱돌로 만든 나한상 13기를 수습하였다. 이는 『사탑사적고』에 기록된 100여 개의 석불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에는 “계유년(癸酉年) 혜명(惠名)”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것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절터 내 밭에서 주민 정봉상이 발견한 화강암제 석상 1구는 현재 절터의 남쪽 도랑 너머에 안치되었는데, 보살상이라기보다 민간신앙과 관련된 것이다. 절터에서 발견되는 기와는 주로 어골문 계통과 격자문 계통의 문양이 시문된 고려시대의 것들이나, 통일신라시대의 기와편도 일부 산재하여 절의 창건 시기를 짐작하게 한다.
[현황]
절터는 능선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길게 자리하는데, 약 9,900㎡ 규모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장대한 석축과 넓은 사역(寺域) 등으로 미루어 매우 번창하였던 사찰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서 석탑 등은 사라졌으나, 축대 이외에 석탑의 받침 기초석과 불상의 받침돌 등이 남아 있고, 건물의 적심석으로 추정되는 돌더미와 기단 적심석 등이 기와편과 함께 산재해 있다.
현지 주민들에게는 절터에 불상이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데 1980년대에 금동불 1구가 주민에 의해 수습되었다고 하나 행방을 알 수 없다. 석탑 등도 일제강점기에 반출되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