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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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富信 |
영어음역 | Gim Busin |
이칭/별칭 | 가행(可行),양정당(養正堂),오천칠군자(烏川七君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만기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행(可行), 호는 양정당(養正堂). 아버지는 생원 김유(金綏),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김수홍(金粹洪)의 딸이다. 형이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이다.
[활동사항]
김부신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8년(명종13)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이황은 ‘이름은 연방에 들었지만 인간 44년이로다/ 몸소 회약함을 싫어하지 않으면서 병을 오래도록 견뎠구나/ 사제지간은 길이 이별하고 즐기겠지만/ 지란은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네/ 영원히 이별을 가장 아파하노니/ 똑똑히 사람들에게 전해지리.(名薦芙蓉榜 人間卌四年 不嫌身晦約 叵耐病纏綿 棣萼長辭樂 芝蘭未畢緣 最傷終訣語 歷歷在人傳)’라는 만시를 지어 애도하였다.
『선성읍지(宣城邑誌)』에 군자리(君子里)를 소개하면서 “곧 오천리(烏川里, 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이다. 김부인(金富仁)·김부필(金富弼)·김부신·김부의(金富儀)·김부륜·금응협(琴應夾)·금응훈(琴應壎)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이황의 문하에 종유했으며 덕행으로 널리 알려졌다. 문목공(文穆公) 정구(鄭逑)가 일찍이 말하기를 ‘오천 한 동네에 군자(君子) 아닌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뒤의 사람들이 그것을 계기로 이렇게 불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훗날 이 일곱 사람은 ‘오천칠군자(烏川七君子)’로 불렸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나소리 한천산(寒天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선성읍지』에 따르면 김부신은 김효로(金孝盧)·김연(金緣)·김부인·김부필·금응협·김부의·김부륜·금응훈·김기(金圻)·김해(金垓) 등과 함께 낙천정사(洛川精舍)에 배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