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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2235
한자 改新敎
영어의미역 Protestantism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근배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설]

충주와 개신교와의 만남은 서울에서 충청도에 이르는 길목과 무관하지가 않다. 길은 곧 사람과 문물, 그 모든 것의 흐름이자 통로이기 때문이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기 전 충청도는 남도와 경상도 그리고 서울을 잇는 길목으로 세 갈래 길이 있었다.

서울에서 한강을 건너 경기도 과천~시흥~수원~성환을 거쳐 충청도 천안~공주~은진을 지나 전라도 삼례로 이어지는 길이 그 하나요, 두 번째 길은 송파나루를 건너 경기도 광주~이천~음죽을 거쳐 충청도 충주에 이르러 연풍으로 해서 조령을 넘어 경상도 문경으로 가거나 단양으로 해서 죽령을 넘어 경상도 영주로 이어지는 길이다. 세 번째 길은 한강나루를 건너 경기도 판교~용인~죽산을 거쳐 충청도 진천~청주~보은~영동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 경상도 김천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세 갈래의 길 중에서 충주의 개신교와 관련이 된 길은 두 번째 길로 미국 감리교파에서 집중적으로 선교 활동을 벌였는데, 중심 포교 지역이 경기도 이천과 충주·제천·단양 등 충청북도 북부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충주 지방의 교회의 시작을 언제로 보아야 할 것이야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교파 및 교회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으며 때로는 교회 설립 기준을 각기 달리 제시하고 있어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선교 분할 협정]

충주 지방의 선교 역사 중 가장 영향력을 끼친 사건은 1909년 미감리회와 북장로회 사이에 충청북도와 강원도 지역에 대한 선교 지역의 분할 협정이었다. 선교사들의 각축으로 선교지를 두고 교파 간의 갈등과 극심한 경쟁을 피하고자 1892년 장로교와 감리교 사이에 7개항의 협정을 맺은 것을 비롯해 수시로 선교지 분할 작업을 해왔는데, 1909년에는 충청북도와 강원도의 분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협정의 결과 청주를 중심으로 충청북도의 남부 지역은 북장로회 구역으로, 북장로회 구역이었던 강원도 원주와 충청북도 북부 지역(충주·제천)은 미감리회 구역으로 확정되었다. 즉, 충청북도의 연풍·청주·문의·영동·회인·청산·보은·청안·옥천·황간·괴산 일부는 북장로회 선교 구역이 되고, 미감리회는 충주를 중심으로 진천·음성·제천·청풍·영춘·단양·괴산 일부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충주는 기존의 장로회가 감리교로 편입되는 등의 과정 등을 거치면서 감리교 우세 지역이 되었다.

[전파 과정]

충주에 복음화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1902년 이전으로 올라갈 수 있다. 1902년 감리회 『연회록』에는 초기 전파 과정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이미 우리는 목천과 진천뿐만 아니라 청주와 충주에서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금년(1902)에는 이 네 곳에서의 사업이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이 지역에 처음으로 믿기 시작한 덕들교회의 박해숙이 이곳에 와서 활동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버리고 속회를 조직했습니다. 넉 달 동안 열두 개 마을에서 속회가 조직되었고 470명의 새 신자가 생겼습니다. 나는 예배처로 사용될 집문서 네 개를 건네받았습니다. 그 중 한 곳에는 65가정이 있고 또 다른 곳에는 40가정이 있습니다. 나는 1월 1일 이후 두 번 이곳을 방문했는데 특히 이 지역은 정치적 불안이 아주 심하기 때문에 상당한 목회전 관심이 필요한 지역입니다.”

충주 지역의 복음 사역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이천 덕들교회 초대 교인 박해숙 권사였다. 박해숙은 충청도 출신으로 첫 개신교인이 된 사람으로 1901년 고향인 충청도로 돌아와 충주·목천·진천·충주 등지를 돌며 전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충주 지역의 복음은 1902년 이전으로 보는 견해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충주 지역 선교에 공헌한 또 한 사람은 서원보 선교사이다. 서원보는 충주 지역을 방문하여 선교 사업을 위한 사전 조사를 한 후 사업 계획을 구상했으며 충주 인근 면소재지에 전도인을 배치했고 서울 본부에 그 결과를 보고했다.

이에 따라 1904년에 감리교의 충청도 지역 책임자로 샤프(R. A. Sharp)와 샤프의 부인 사에리시(史愛理施, Sharp. A. J. Hammond)가 이 지역에 파송되었다. 이들 부부는 1904년 12월 조사 윤성렬과 함께 충주를 방문하여 성서를 보급하고 1905년에는 서원보 선교사와 함께 사경회를 개최했는데, 이때 충주의 사경회에 47명이 등록한 것은 복음화의 터전이 마련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천 덕들교회 출신의 한창섭 전도사, 이천 출신의 김제안 전도사, 이문현 전도사 등이 이 지역 구역장으로 파송되어 전도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충주 지역의 복음화 열정은 1909년 충주 지역이 미감리회의 선교지로 협약에 의해 결정됨으로써 더욱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충주 지역 최초의 교회는 아무래도 1905년 장로교로 시작한 충주읍교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충주읍교회는 "1905년 4월 10일 충주읍 금정동 74번지(현재 성서동 74번지)의 초가 8칸에서 김정현 전도사가 교인 3명으로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고 한다.

충주읍교회는 충주가 감리교 선교 지역으로 정해지기 전인 1907년 ‘감리교 충주읍교회’로 명칭을 바꾸었는데, 장로교에서 감리교로 변경된 것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의 충주제일감리교회가 된 충주읍교회는 100주년을 넘긴 충주 기독교 역사의 중심에 있는 교회답게 감리교 선교 구역이 된 1909년 이후 1915년에 제3대 장춘영 전도사가 부임하면서 그해 하구암교회·가금중앙교회·대소원교회·용원교회 등을 개척하는 등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장춘영 목사는 초창기 충주·제천·음성 지역 복음화에 획기적인 공을 세웠다. 장춘영은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맹골에서 태어난 의병 출신이다. 1899년 구연영(구춘경)과 함께 이천 덕들교회에서 세례를 받아 첫 권사로서 종교 서적을 짊어지고 충주·제천·음성 등지에 팔러 다니면서 전도를 하며 교회를 개척하였다. 1900년경에는 여주 최초의 교회로 알려져 있는 맹골교회를 설립하였고, 1919년까지 충주 구역을 담임하며 많은 교회를 개척하였다.

충주가 감리교 선교 지역으로 결정되기 이전에는 장로교 전파도 활발했다는 것은 여러 자료가 증명하고 있다. 1897년 9월 5일 ‘장로회 회의 한말’과 같은 해 9월 15일 ‘조션 그리스도인 회보’의 기사에서 충주가 언급되고 있다는 것, 1898년 미국 북장로회 연례 보고서에서도 언더우드 목사의 충주 지역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 1902년 장로교 선교사가 엄정면 목계까지 나귀를 타고 왔다가 유봉리 임치수를 만나 1903년 같은 동리의 서하영 등과 함께 유봉교회를 세웠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지금의 충주제일감리교회가 최초에는 1905년 ‘장로교 충주읍교회’로 설립되었던 것을 상기해 보면 장로교의 선교가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충주 지역의 개신교 전파 과정에서 특이한 것은 현재 대한예수교 장로회에 속해 있는 당시의 조선기독교회의가 이곳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이다. 충주 지역의 엄정·목계·문산·구룡·용포 등에 교회가 세워졌고, 감리교에 속해 있던 이들 교회들이 1925년 조선예수교를 내걸고 분리·독립하였다가 황해도에서 김장호 목사에 창시된 조선기독교회와 1928년 3월에 합병하였다.

충청북도 북부 지역은 충청도가 갖는 지역적 보수성과 산간 지역이라는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꾸준히 전파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하여 1996년의 ‘기독교 대한감리회 동부연회사’에서는 개인 전도 추진, 신도들이 서로 연합하여 전도대 조직, 권사들과 함께 성서 보급, 부흥회 및 사경회, 평신도 양성 등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오늘날의 교훈으로 삼아야 것이다.

[현황]

충주 지역의 기독교는 2005년 100주년을 넘기기까지 장족의 발전을 하여 충주시의 기독교 인구가 2만 명 내외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전체 인구의 10% 미만의 수준으로 충주의 복음화 비율은 전국의 평균 수준을 밑돌고 있으며, 지역별 복음화 비율로 볼 때는 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충주에 거의 모든 교파들이 망라되어 전파되고 있음은 다른 지역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1909년의 선교지 분할에 따라 충주는 감리교 선교 지역에 속하게 되어 감리교단에 속한 교회와 교세가 가장 크다는 특징이 있다.

2000년 기준으로 파악된 교단별 교회 수를 보면, 장로교가 114개(통합측 45, 합동측 10, 기장 9, 기타 50), 감리교가 70개, 성결교가 21개, 침례교가 19개, 순복음이 24개 그리스도교가 16개, 구세군이 2개, 성공회가 4개, 기타 3개로 모두 273개 교회가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교회 숫자에 대한 단순 비교를 하자면, 청주에 488개 교회가 있어 인구 비례로는 충주에 교회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감리교회의 경우 청주에는 66개가 있지만 충주에는 70개가 있어 충주가 감리교 우세 지역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교회도 청주의 12개보다 충주가 6개나 많고 성공회도 청주의 2개에 비해 충주에는 4개나 있어 2배나 많다.

개신교 관련 단체로는 충주시 기독교연합회, 충주시 성서화운동본부, 충주시 장로회, 충주 YMCA, 충주YWCA 등이 있다. 이 중 충주시 기독교연합회에는 210개 교회가 가입되어 있어 충주의 기독교 연합 최대 기구가 되고 있다.

[의의]

충주의 개신교는 개인의 영적 구원을 통한 교회 성장에 역점을 두고 선교에 힘쓰며 지역 사회에의 참여와 나눔을 통해 나름대로 헌신해 왔다. 최근에는 보다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을 위해 사랑의 쌀 나누기, 연탄 1만장 나누기, 헌혈, 장기 기증 캠페인 등 헌신을 통해 사회 구원에도 점차 관심을 가져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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