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023 |
---|---|
한자 | 先史 |
영어음역 | Seonsa |
영어의미역 | Prehistoric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김봉숙 |
[정의]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개설]
선사는 문자를 사용하여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록한 이전의 시대로 역사 시대라는 용어와 대칭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인류가 생산한 유물의 재질을 기준으로 하여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의 3대 시기로 구분한다. 석기 시대는 다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눌 수 있다. 김천 지역에서는 구석기 시대 유적이나 유물이 조사되지 않았으므로 현재로서는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상주와 성주 등 주변 지역의 조사 성과를 보면 김천 지역에서도 구석기 시대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은 높다.
[석기 시대]
김천 지역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주변에 발달한 구릉들과 함께 많은 물줄기들이 만든 충적 평야가 선사 시대 취락의 형성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김천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구석기 시대 유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낙동강 중상류 지역의 유적을 통해 볼 때 김천 지역에서도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확인될 가능성은 크다.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김천의 선사 시대 문화는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감천의 중상류인 구성면 송죽리에서 발견된 암음 유적과 송죽리 유적의 조사 성과를 통해 신석기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암음 유적은 화강암 절벽을 이용한 주거 유적일 가능성도 있으나 남동쪽에 위치한 송죽리 유적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때 어떤 의식이 행해지던 특수한 공간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송죽리 유적의 신석기 시대 주거지는 모두 수혈 주거지로 10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를 비롯한 다양한 유구와 빗살무늬 토기, 돌도끼, 돌대패, 돌보습, 갈돌, 갈판, 돌촉, 돌창, 어망추 등의 출토 유물로 보아 다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여러 세대가 생활한 정주 취락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
김천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은 송죽리 신석기 시대 유적과 같은 곳에서 확인된 대규모 취락과 고인돌군으로 구성된 송죽리 유적과 1996년 주거지 1기가 확인된 교동 유적이 전부이다. 하지만 지표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청동기 시대 유적은 감문면, 어모면, 봉산면, 구성면, 부항면 등에 있는 총 31개소로 감천으로 유입되는 지류를 따라 김천 지역 전역에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죽리 유적에서는 지표 조사 당시 확인된 2기의 고인돌 상석을 중심으로 발굴한 결과 상석이 남은 것과 하부 구조를 포함하여 고인돌 19기와 주거지 65기 등이 밝혀졌다. 65기의 주거지는 모두 수혈식 주거지로서 대체로 유적의 북쪽과 남쪽으로 양분되어 밀집된 분포 양상을 보임에 따라 유적의 가운데 부분이 비교적 큰 공간으로 남는다. 주거지에서는 청동기 초기로 편년되는 돌대문토기를 비롯하여 발형·호형의 무문토기와 다양한 형태의 무기, 목공구, 농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 안에서 석기를 제작한 흔적이 발견되어 석기 제작 장소의 기능을 가진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신석기 시대의 석기 제작 장소가 노천에 있었던 점과 대비된다.
고인돌은 일정한 공간에 집중된 묘역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계기적으로 조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그 시기는 대체로 주거지와 병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인돌에서는 불태운 흔적, 유구석부와 비파형 동검을 꽂아 놓는 행위 등의 축조와 관련된 장송 의례 행위로 추정되는 흔적도 발견되었다. 고인돌의 부장품들은 머리 방향인 남향에 위치하고 있는데 홍도, 돌촉, 돌도끼, 돌끌, 비파형 동검, 물미 모양의 청동기, 대롱옥이 출토되었다. 주거지 주변에서는 17기의 적석군이 확인되었는데 내부에 할석과 불에 타서 깨진 강돌, 토기편 및 석기의 파편들이 뒤섞여 있어 폐기장 및 야외 조리 시설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김천 송죽리 유적은 신석기 시대 및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과 유물이 다량으로 조사되어 선사 시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생활 유적, 즉 무덤, 야외 화덕, 토기를 굽고 석기를 만들었던 장소, 화장실, 쓰레기장 등이 복합적으로 조사되어 더욱 흥미를 끌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생활 유적 속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선사 시대의 토기와 석기의 변천상을 잘 보여 준다는 점도 있지만 영남 서북부 내륙 지역의 문화적 특색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