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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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社會運動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희환 |
실업 극복 국민운동 인천 본부 | 종합 경기장 204-205호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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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을 단위로 해서 진행된 범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친 운동.
[개설]
1970년대 이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관 주도의 사회 운동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폭넓게 진행되었다면,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그 이후에는 진보적인 사회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관 주도의 운동]
1. 새마을 운동
197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전개된 사회 운동으로 새마을 운동이 있다. 인천에서는 새마을 운동의 추진을 위해 1972년 4월 시에 새마을 운동 협의회를 두고 각 구에 구 새마을 운동 협의회를 구성하여 새마을 운동 관련 기관의 사업을 조성하고, 새마을 운동에 관한 지도 계몽 및 홍보 협의를 하는 한편, 기타 새마을 운동의 효과적 추진을 위한 방안의 검토와 조정을 하였다. 이 밖에도 분야 별로 자연 보호 협의회, 민간단체 새마을 운동 협의회, 마을금고 협의회, 주택 개량 촉진 협의회가 운영되고 있으며, 자연 보호 협의회는 1979년부터 새마을 운동 협의회에 통합 운영되었다.
2. 바르게 살기 운동
1980년대 초에 신군부 집권과 더불어 펼쳐졌던 사회 정화 운동이 많은 부작용과 민주화 운동 세력들과의 마찰 끝에 1989년 2월 국무 회의에서 사회 정화 위원회가 폐지됨과 동시에 막을 내리자 같은 해 4월 1일에 바르게 살기 운동 중앙 협의회가 발족되었다. 이후 1991년 12월 ‘바르게 살기 운동’ 조직 육성법이 제정됨으로 해서 정부 지원 민간 조직으로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9년 1월 17일 민간 국민운동 단체인 바르게 살기 운동 중앙 협의회가 발족됨에 따라 동년 2월 18일 인천직할시 바르게 살기 운동 협의회가 결성되었다. 1988년 12월 사회 정화 국민운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1989년 4월 1일 바르게 살기 운동 인천직할시 협의회[인천직할시 등록 제57호]로 발족하여 국민운동을 전개하였다.
초기 바르게 살기 운동은 올바른 민주 시민상을 조속히 정립하고 건전 사회 기풍을 진작시켜 민주 화합의 새 시대 건설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바르게 살기 운동을 지역 단위로 활성화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50명 내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시 협의회가 개설되고, 구와 동 단위에는 30명 내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구 협의회, 동 위원회가 각각 설치되었다.
[민간 주도의 운동]
1. 노동 운동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오랫동안 한국의 노동 시장은 노동력의 무제한적 공급 상태가 계속되었고 이에 따라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지배적인 현실이었다. 노사 관계 역시 사용자 우위의 노사 관계가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경제 성장으로 소득이 향상되고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고 노동자들의 교육 수준과 지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누적되어 가던 노동자들의 불만과 요구가 1987년의 정치적 변화를 계기로 폭발하여 이른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가져왔다.
1987년 이후 노동조합 수와 노조원 수가 급증하고 단위 노조들의 민주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사 간 분규도 급증하였으나 1990년대에 들어 노사 관계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분규 건수도 크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1997년의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의 구조 조정, 휴폐업, 인원 감축 등이 계속됨에 따라 이를 둘러싼 노사 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노사 관계의 흐름은 인천 지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인천 지역에는 대기업을 위주로 한 공단이 밀집되어 있어 전국 어느 곳보다도 노동 운동이 활발하고 노사 분규가 많았다.
인천 지역 노동 운동의 성장을 촉진하는 여러 요인이 맞물리면서 인천 지역의 노동운동은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노동 운동을 주도하는 위치를 부여받게 되는데, 특히 대규모 공단이 위치했던 지금의 인천광역시 부평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는 노동 운동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났다.
2. 실업 극복 국민운동
1990년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전개된 대표적인 사회 운동으로 실업 극복 국민운동 인천 본부의 활동을 들 수 있다. 1997년 소위 IMF 사회 이후 급증한 실업자 문제를 민간 차원에서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전국적으로 실업 극복 국민운동 본부가 구성되었다. 인천에서도 1998년 9월 4일 김병상, 양재덕 등 천주교 인천 교구 정의 평화위원회[정평회]와 인천 연합의 주요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름과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지역 유지들이 가담하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424 종합 경기장에 사무실을 차리고 인천 본부가 출범하였다. 이후 주로 민간 위탁 공공 근로 사업과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에 의한 위탁 사업을 수행하였으며, 창업 상담, 취업 상담, 자활 상담, 저소득 실직 가장 자활 사업 지원 등에도 나섰다.
3. 문학산 반환 운동
2000년대 들어 미추홀구 지역에서 벌어진 가장 두드러진 사회 운동은 인천 역사의 발상지인 문학산 반환 운동이다. 2005년 국방부에서 문학산 정상의 나이키 미사일 부대를 대신하여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대를 배치할 계획을 발표하자 인천 지역 시민 사회 단체들이 연합하며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 반대 및 문학산 반환을 통한 시민 공원 조성을 추진하였다. 해를 넘겨가면서 진행된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 반대 운동은 결국 국회에서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중단되었으나, 군부대는 이전하지 않고 아직도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인천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였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사회 운동은 시대 흐름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여 1980년대 전반까지는 관 주도의 사회 운동이 주종을 이루었다면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사회의 민주화에 따른 진보적 사회 운동이 전개되어 왔고, 이는 오늘날에도 그 흐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