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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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突馬面-萬歲示威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서승갑 |
[정의]
1919년 3월 27일 돌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경과]
돌마면의 만세시위운동 은 천도교인과 농촌의 지식인층 일단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점이 특색이다. 이로써 참가자가 증폭하였고 낙생면과의 연합시위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돌마면 율리의 한순회(韓順會), 한백봉(韓百鳳) 등은 1919년 고종 장례식에 참여한 후 3.1운동을 직접 경험하였다. 이들은 면내의 유지들과 접촉하면서 시위운동을 준비하는 한편, 낙생면 초대면장 남태희(南台熙)와도 연계하여 거사를 도모하였다. 특히 한순회가 천도교 광주교구장이었던 점과 면장을 지낸 남태희 등이 운동을 주도한 것은 농촌의 지식인층이 시위운동에 적극적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3월 27일 새벽에 한백봉 등은 율리 동민 50여명을 인솔하고 뒷산에 올라가 봉화로 시위를 예고하는 등의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거사 당일 10시경 분당리 장터에서 군중이 운집하자 한백봉 등은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본격적인 시위운동이 전개하였다. 면내를 순회하는 동안 시위 군중이 늘어났고 오후에 낙생면소재지 판교리에서 남태희가 주도한 시위군중과 합세하였을 때 시위 군중은 3,000여명에 달하였다.
[의의]
한순회가 천도교에 관여한 사실에서 보면 당시 천도교인들은 국권회복과 독립이 당면한 사명이라는 인식하에 독립을 쟁취하려는 의지력이 강하였다. 천도교인들은 독립선언서를 각지에 배포하는 한편, 태극기를 극비리에 제작하고 운동자금 모집 등도 관여하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