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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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郡西面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강욱 |
개설 시기/일시 | 1898년 - 전라남도 영암군 서시면에서 영암군 군서면으로 개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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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기관 | 군서면사무소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744-2번지 |
박물관 | 영암 도기 박물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54번지 |
미술관 | 영암군립 하 미술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81-1번지 |
성격 | 법정면 |
면적 | 57.25㎢[2014년 12월 31일 기준] |
가구수 | 1,800세대[2016년 4월 30일 기준] |
인구[남,여] | 3,543명(남자 1,719명, 여자 1,824명)[2016년 4월 30일 기준]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개설]
영암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이다. 1939년 진행된 간척 사업으로 인해 넓은 해수면이 농토로 바뀌었다.
[명칭 유래]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의 서쪽 첫머리여서 서시면(西始面)이라고 하였다. 성지천(省之川) 등 34개 마을을 관할하였는데, 1898년(광무 2) 지방 행정 개편에 따라 서종면(西終面)의 서호정(西湖亭) 등 19개 마을을 병합하고, 영암군의 서쪽이므로 군서면(郡西面)으로 개칭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서시면이라는 이름으로 성지천 등 34개 마을을 관할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영암군에서 1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편호(編戶)는 322호, 남자가 318명, 여자가 472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1898년 지방 행정 개편에 의해 군서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구림리, 서구림리, 도갑리, 모정리, 양장리, 동호리, 성양리, 월곡리, 마산리, 도장리, 해창리, 송평리 등 12개 법정리와 51개의 자연 마을을 관할하였다. 하지만 1973년 7월 대통령령에 따라 송평리를 영암읍에 넘겨주고, 현재는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자연 환경]
군서면의 남쪽에 월출산이 위치하며, 주지봉[491m]과 노적봉[536m]이 동남쪽을 감싸고 있다. 북쪽은 학산천, 영암천, 호동천이 흐르고 있다. 서호강이 간척되기 이전인 1920년대에는 배가 드나들었지만, 1939년 현준호에 의해 진행된 간척 사업으로 인해 넓은 해수면이 농토로 바뀌었다.
[현황]
영암군의 중앙에 위치하며, 남쪽은 월출산과 학산면 일부, 동쪽은 영암읍, 서쪽은 서호면, 북쪽은 도포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7.25㎢로 영암군 전체 면적의 8.9%를 차지한다. 2016년 4월 30일 현재 인구는 총 1,800세대, 3,543명(남자 1,719명, 여자 1,824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법정리 11개, 자연 마을 31개, 반은 51개이다. 밭이 420만 4162.7㎡, 논이 2032만 523.6㎡, 과수원이 13만 4654㎡, 목장이 11만 9636㎡를 차지하고 있다. 임야는 1888만 3403㎡이며, 공장 지대는 16만 7118.8㎡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참깨 등 특용 작물과 사과·감 등 과수 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체 수는 162곳이며, 농업이 1곳, 제조업이 24곳, 도매 및 소매업이 36곳, 숙박 및 음식점이 34곳이다. 이 중 제조업은 대부분 월곡리의 농공 단지에 입주하여, 전자 제품 생산 및 농산물 가공을 하고 있다. 또한 산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갑리에는 축산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군서면에 소재하는 문화재는 총 23점으로 국보 1점, 보물 4점, 사적 1점, 천연기념물 1점이다.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영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 50호], 영암 도갑사 석조 여래 좌상[보물 제89호], 영암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 동자상[보물 제1134호], 영암 도갑사 도선 국사·수미 선사비[보물 제1395호], 영암 월곡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84호]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영암 도기 박물관, 영암군립 하 미술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매년 왕인 국화 축제가 개최되고 있으며, 2012년에는 대한민국 한옥 건축 박람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