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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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宗敎 |
영어공식명칭 | New Religion |
이칭/별칭 | 신흥종교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엄진성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종교.
[개설]
신종교(新宗敎)는 이전 기성 종교와 대응하여 쓰이는 개념이다. ‘새롭다[신(新)]’라는 의미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또한 ‘새롭다’라는 의미는 한편으로 별로 기반이 없고 정교화되지 못하다는 뜻과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호소력과 적합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의 양가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신종교는 기성 종교와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신도 수, 교단 조직, 교리 체계, 제의 체계 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성립 시기가 짧아 아직 사회적으로 완전하게 인정받지 못한 종교이다. 흔히 신흥종교(新興宗敎)라고 일컬어져 왔으나, 그 용언에 함축된 경멸적이고 이탈적 의미 때문에 이제는 더 중립적이고 객관성을 띤 신종교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19세기 말~20세기 초 한말·일제강점기에 발생한 종교운동과 1960년대 이후 도시화·산업화와 더불어 급격히 성장한 종교운동의 성격을 구분하여 각각 신흥종교·신종교로 개념화하기도 한다.
영주 지역의 신종교는 각자 교리에 따라 종교활동을 하며, 지역 사회와의 조화를 위하여 여러 가지 대외활동에 힘쓰고 있다. 다만 기존 종교와 마찰로 인해 그 성과는 미미한 정도이다.
[영주의 신종교]
영주 지역은 다른 시·군에 비해 신종교라 부를 수 있는 종교기관이 많다. 가정교회[통일교], 대순진리회, 대한도덕회, 대한천리교, 성덕도, 여호와의증인, 원불교, 제7일안식일재림예수교, 증산도, 한국천부교, 한국SGI, 정령회, 명덕도 등 많은 종교 단체가 있다.
가정교회[통일교]는 1961년 문원양 목사가 전도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6년 영주군 영주리에 영주가정교회를 설립하였다. 대순진리회는 30여 년 전 송진환 선감이 포교활동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팔백식당에 연락사무소를 두었다가 1989년 영주시 가흥동에 대순진리회 영주회관을 세웠다. 송진환 선감은 영주회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지역을 오가면서 포교하고 회관을 관할한다고 한다.
대한도덕회의 경우 1989년 영주시 가흥동에 대한도덕회를 세우고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천리교를 영주에 전도한 인물은 노경형 전도사이다. 노경형은 1945년 안동통로에 교당을 지어 전도하였다. 1985년 영주시 가흥동에 대한천리교 영주교회를 설립하였다. 성덕도는 1995년 손효성의 집에서 교직자 윤명수에 의해 포교되었다. 현재 영주시 영주동과 영주시 풍기읍 동부리에 교화원이 있는데, 영주교화원과 풍기교화원은 안동교구 소속이다. 여호와의증인이 영주에 전도된 것은 한국전쟁 때 서울에서 피난 온 사람들에 의해서라고 전해진다. 교인의 수가 점차 늘어나 한때 교당을 4개나 세웠으나, 현재는 영주시 가흥동과 풍기읍 성내리 두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원불교가 영주 지역에 도입된 것은 1958년 영주교당이 들어서면서이다. 원래는 영주시 하망동에 있었으나 2010년 영주시 가흥동으로 옮겼다. 영주원광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1964년 영주시 부석면 노곡리에 사는 권노민에 의해 전도되었다. 1980년 부석면 소천리로 교당을 옮겼다. 교당은 1983년 완공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2005년 새로 지어 옮긴 것이다. 현재 영주시 하망동, 영주시 안정면, 부석면 소천리·노곡리, 풍기읍에 교회가 세워져 있다. 증산교는 1991년 영주에 전도되었다. 영주시 영주동에 증산도 영주도장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천부교가 영주에 전도된 시기는 교단에서 밝히지 않아 알 수 없다. 영주시 가흥동에 한국천부교 영주교회가 있다. 한국SGI가 영주에 전도된 것은 약 20~30년 전으로 전해진다. 누군가의 전도가 아닌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믿음을 가지면서 시작되었고, 1999년 영주시 가흥동에 교당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