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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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藝術 |
영어음역 | Yesul |
영어의미역 | Art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장환 |
[정의]
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루어지는 기예와 학술의 총칭.
[개설]
예술은 경험과 상상력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인간의 활동 및 작품을 말한다. 즉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등으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운 작품의 창작을 통하여 정신의 충실 체험을 추구하는 인간의 문화 활동 또는 작품 그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예술은 회화, 조각, 영화, 무용, 음악, 연극, 문학 등 전통적으로 범주화된 여러 가지 미적 표현 양식과 관련된 인간의 활동이나 작품 중의 하나를 지칭하기도 하며 이 모두를 총칭해서 부르기도 한다.
[변천]
경기도 용인 지역은 전통적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구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발달하지 못하고 농촌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풍물(농악)이 오래 전부터 연희되어 왔으며 현재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 백암농악과 서천리농악이다. 역사 인물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의 재상 남구만(南九萬)의 5대 손이며 평생 동안 나비만 즐겨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 남계우(南啓宇)의 무덤이 남사면 꽃골에 있다.
또한 1945년 우리나라 최초로 이화여자대학교에 미술학과를 창설한 서양화가 심형구(沈亨求)가 백암면 용천리 출신이며 한국 현대 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화가 장욱진(張旭鎭)의 말년 작업실이 구성면 마북리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1930년대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崔承喜)의 시댁이 원삼면 문촌리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승희의 남편인 안막(安漠)[본명 安弼承]은 1929년 카프 계열의 동인지 『무산자(無産者)』를 간행하는 등 진보적인 문필가로 명성을 떨쳤다.
한편 용인 최초의 예술단체는 일제강점기에 용인과 안성의 시인들이 결성한 ‘백구시단’이라는 문학 단체였다. 이후 1989년 용인미술인회를 결성하여 용인문화원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다 1997년 한국미술협회 용인지부로 되었으며 이 단체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용인지부 탄생의 모태가 되었다. 1998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용인지부의 출범으로 용인의 예술계가 일대 중흥기를 맞게 되었다.
[예술단체]
경기도 용인 지역은 서울이나 수원 등 대도시의 그늘에 가려 사회 문화적으로 오랫동안 소외되어 오다가 1980년대 이후 수도권 택지 개발의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급격한 인구의 증가 현상이 나타났다. 그 결과 많은 향락 시설의 유입으로 용인 지역 고유의 문화적 면모를 잃어버린 각박한 도시로 변모되기에 이르렀다. 경제 성장에 따른 시민들의 문화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채 기형적인 양적 팽창만 거듭되어 온 것이 과거 용인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모순을 안타깝게 여겨 온 문화계 인사들이 1998년 문화도시 건설의 기치를 들고 그 구심점으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용인지부(용인예총)를 창립하게 되었다. 용인예총은 미술, 문인, 국악 등 3개 지부로 창립하여 현재는 7개 지부로 발전하였으며 용인의 예술 문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9년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용인민예총)가 창립되어 민족 예술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시대 변화에 맞서 대안 문화를 창출한다는 취지로 민속굿, 풍물, 민요, 춤위원회 등을 산하에 두게 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용인과 안성의 시인들이 ‘백구시단’이라는 문학 단체를 결성하여 삼일당 한약방을 근거로 시를 짓고 노래를 하고 창을 하던 모임이 있었는데 이것이 용인 최초의 문학 단체이다. 이후 1980년대 초 임준규, 박상돈, 김종경 등이 결성한 시 동인인 ‘서정3세대’가 동인이라는 카페를 중심으로 용인 문학의 명맥을 이어 오다가 1993년 용인문화원에서 주최한 주부백일장에서 입상한 여성들이 모여 문인 동아리를 조직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오고 있다. 1996년 ‘용인문학회’가 결성되고 이듬해 한국문인협회 용인지부가 탄생하면서 용인 문학의 새로운 터전이 형성되었다.
[민속예술]
경기도 용인 지역은 전통적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구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민속 예술의 다양한 장르가 발달하지 못하고 농촌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풍물이 오래 전부터 연희되어 왔다. 농자(農者)를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 삼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배어있는 풍물은 김매기, 논매기, 모심기, 타작 등의 힘든 일을 할 때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덜며 나아가서는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서 비롯되어 마을 전체의 행사에는 반드시 동원되었다.
경기도권의 웃다리를 기본으로 하여 용인 지역 마을마다 크든 작든 풍물이 존재했으나 치는 가락에 있어서는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러한 자생적인 마을 단위의 풍물패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용인의 전통적인 풍물을 계승하고 있는 단체는 서천리농악을 중심으로 1984년 결성된 ‘용흥농악회’와 1997년 설립된 한국농악보존협회 용인시지회, 그리고 1994년 창단된 용인시농악단 등이 있다. 또한 예부터 풍물이 융성했던 백암면 용천리 일대의 전통적인 계보를 이어오고 있는 상쇠 차용성 등이 있으나 대부분 별세하거나 연로하여 조직적인 활동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1988년 갈내굿패, 1995년 우리문화연구회, 1996년 두레마당, 1997년 사물놀이패 휘모리, 1997년 용인문화원 예술단(한우리예술단) 등의 국악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1997년에는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용인지부가 설립됨으로써 지역의 전통 음악을 조직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또한 1998년에는 용인대학교 국악과 출신 국악인들로 구성된 용인예술단이 창단되어 대규모 국악 관현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되면서 국악 분야에 일대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전망]
경기도 용인 지역은 여건상 유능하고 역량 있는 예술인들이 집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에버랜드와 한국민속촌을 비롯하여 각종 박물관들이 밀집되어 있어 연일 수 천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천혜의 문화적 환경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용인 지역이 문화면에서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용인지부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용인지부는 장차 이러한 문화적 환경을 바탕으로 용인을 21세기 문화 선진도시로 이끌어 가는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