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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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工藝 事業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일욱 |
[정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석재를 이용하여 비석이나 벼루, 생활용품, 구조물 등을 만드는 사업.
[개설]
보령 지역은 돌[오석, 애석, 청석]의 고장이다. ‘남포오석(藍浦烏石)’은 옛 남포현 지역인 웅천, 청라, 미산, 성주 지역에서 나는 검은빛의 사암으로 석질이 단단하고 흡수율이 낮아 잘 깨지지 않으며, 검은 광택이 나는 특징이 있어 비석 등의 재료로 사용하여 왔다. 애석(艾石)은 남포 해안가 및 섬 지역에서 나는 미정질 화강암으로 풍화작용에 강하며, 갈면 희고 푸른 빛이 나는데 비석 이외의 석제품을 만드는 데 쓰였다. 청석(靑石)으로도 불리는 흑색 셰일은 보령의 남포벼루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 셰일은 층리로 이루어져서 마모율이나 강도에 따라 벼룻돌 또는 벼루의 뚜껑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
이처럼 보령 지방은 우수한 석재의 산지였기 때문에 예로부터 석재산업이 발전하여 왔다. 특히 충청남도 보령 웅천 지역은 오석과 남포벼루의 산지로 대한민국 석재산업의 메카로 유명하다.
[역사]
오석[보령오석]이 맨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백제 시대라고 전해오고 있으나, 보령 지역에 세워져 있는 가장 오래된 비석은 보령시 성주면에 소재한 성주사지에 있는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 시대 제작]로 약 1,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웅천에서 생산되는 오석은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돌로 유명해 조선 시대부터 우리나라 최고 벼루로 명성이 자자하다.
[현황 및 활용]
최근 경기 침체와 부진으로 보령 석재산업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 웅천 지역 석재산업은 전국 제일의 석공예 단지로 성행했었으나 지금은 중국의 값싼 원석과 가공품이 들어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보령시와 석공들이 ‘남포오석’의 특허를 신청하는 등 보령시 석재산업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련 예술문화 공간으로 웅천돌문화공원[보령시 웅천읍 구장터3길 102]이 있으며, 공원 내 석재전시관은 보령 벼루관, 오석 작품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