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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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遺蹟-遺物 |
영어의미역 | Prehistoric Artifact and Relic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이남석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발견된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과 유물.
[개설]
선사시대는 역사시대와 대비되는 시대 구분 용어로, 일반적으로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기, 즉 구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를 포함한다. 우리나라의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를 비롯하여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로 구분된다.
공주 지역은 남쪽과 북쪽에 높은 산이 많고, 시가지를 중심으로 금강 일대에 저평한 충적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금강은 공주시의 중앙부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류하면서 많은 지류와 합류하고, 주변에 비옥한 범람원을 이루어 놓았다. 이러한 자연적·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공주 주변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공주 지역에서 발견된 선사 유적과 유물은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의 것이 있다.
[구석기시대]
공주 지역에 기존에 알려진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과 반포면 공암굴 유적이 있다. 이 가운데 발굴 조사된 유적은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한 곳뿐이다.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남한 지역에서 최초로 조사된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1935년에 함경북도 동관진에서 조사된 유적과 더불어 일본에 의해 부정되었던 한반도 구석기시대의 존재를 확증해준 유적이다.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에서는 전기·중기·후기 구석기 문화층과 중석기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석기류로 외날 도끼(Chopper)·쌍날 도끼(Choppingtool)·밀개(Scraper)·주먹 도끼(Hand Axe) 등이 있다. 이 밖에 후기 구석기시대의 집자리를 비롯하여 중석기시대의 문화층에서 좀돌날몸돌·수정새기개·잔격지 등이 수습되었다.
[신석기시대]
공주 지역에서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공주시 정안면 장원리 유물 퇴적층을 제외하고는 조사된 예가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제한적인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나, 앞으로 주변 지역으로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대될 가능성은 높다.
장원리 유적에서 조사된 신석기시대 유적은 뚜렷한 유구의 윤곽은 없으나, 유물 퇴적층에서 많은 양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유물은 빗살무늬 토기편과 돌괭이·갈돌·공이·숫돌 등의 석기류가 흩어진 상태로 노출되었다. 빗살무늬 토기는 어골문과 점렬압인문이 확인되었다. 문양은 대체로 구연부를 중심으로 시문된 신석기시대 후기적 요소가 많다. 이 유적은 공주 지역의 선사 문화가 구석기시대 이후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다양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청동기시대]
공주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은 선사 유적 중 가장 풍부하게 확인되었다. 유적의 성격에 따라 분묘·주거지·유물산포지·선돌[立石]로 구분된다. 분묘 유적은 고인돌·석관묘·옹관묘·석개토광묘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정식으로 학술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으나 석관묘·옹관묘·석개토광묘는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특히, 옹관묘는 석관묘가 밀집된 지역의 한쪽 모서리에서 함께 조사된 예가 많다. 석관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송국리형의 석검이나 석촉이 많은 양을 차지하며, 옹관묘에 사용된 토기는 모두 구연부가 외반된 송국리형 토기이다.
주거지는 모두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태봉동·귀산리·산의리·안영리 유적 등이 있다. 주거지의 형태는 송국리형 원형 주거지와 방형 주거지가 대부분이며, 출토된 유물도 청동기시대 중기의 문화상을 보인다. 토기류는 주로 구연부가 외반된 송국리형 토기와 발형 토기이며, 석기류는 석검·석촉·반월형 석도·삼각형 석도·석부·석착·연석 등 다양하다.
공주 지역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유적의 대부분은 시기적으로 인접한 부여 송국리형 문화상과 유사한 청동기시대 중기의 특성을 보인다. 부여 송국리 유적으로 대표되는 송국리 문화는 청동기시대 전기와 후기의 전환점이 되는 중기 단계이다. 이 유적에서 나타난 토기와 주거지의 형태는 각각 송국리형 토기와 송국리형 주거지로 불리며, 충청도 지역은 물론 전라도 지역·경상도 지역·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조사된 자료로 볼 때 공주 지역청동기 문화의 성격은 원형 주거지를 중심으로 하는 송국리형 문화를 중심으로 변화되고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 후기 혹은 초기철기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적으로는 유물산포지로 알려져 있는 공주시 장기면 봉안리 유적이 유일하다. 이곳에서 한국식 동검·동과·유리제 관옥이 출토되었다. 유구는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발견자의 전언으로 미루어 볼 때 단순 토광묘나 목관묘로 추정된다. 동검은 등날이 검신 기부까지 나 있는 형식이며, 동과는 좌우의 혈구가 봉부 가까이에서 합치면서 혈구가 있는 부위에는 등대를 연마하지 않은 형식이다. 유리관옥은 부여 합송리나 소소리에서도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
공주 지역에서 조사된 원삼국시대 혹은 삼국시대 초기의 자료로는 정안면 장원리 유적, 장기면 하봉리 유적, 우성면 도천리 토광묘, 이인면 이인리 토광묘, 탄천면 남산리 토광묘, 분강·저석리 토광묘, 안영리 토광묘 등이 있다. 이 유적들은 선사시대 혹은 백제시대 관련 유적과 함께 조사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3~4세기 대로 편년된다. 당시 백제 지역의 재지 세력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