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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564
한자 煙臺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3년 4월 3일 - 제주도기념물 제 23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6년 9월 9일 - 제주도기념물 제23호 추가 지정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전 근대 시기에 봉[횃불]과 수[연기]로써 급보를 전하던 통신 방법에 이용된 대.

[개설]

연대(煙臺)는 변경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이나 또는 변경의 다른 기지, 그리고 해당 지방의 주민에게 알려서 위급할 때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설치한 전통 시대의 통신 방법에 이용된 유적이다. 조선 시대의 읍지류에 따르면, 제주도 내에는 25개소의 봉수대와 38개소의 연대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제주도에 남아 있는 연대는 1973년 4월 3일[1976. 9. 9.|1996. 7. 18. 추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1. 기능

연대는 가까이서 적국의 배가 어떤 곳에 와서 정박하는가를 자세히 관찰하는 동시에 해안 변경인 최전방에 위치한 연변 봉수의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에 그 임무 수행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요새적인 시설인 연대를 구축해 그 기능 수행을 도왔다. 해안 구릉에 위치한 연대는 급한 소식을 상응하는 연대에 전하는 동시에 가까이 있는 봉수에도 연락을 취했다.

통신 방법은,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하는데, 거화법(炬火法)은 오거법으로, 평상시는 1개, 이양선이 나타나면 2개, 지경에 가까이 오면 3개, 지경을 침범하면 4개, 접전하게 되면 5개로 통신했다. 그러나 안개 등 날씨 관계로 봉수 연락이 불가능한 때는 봉졸이 직접 달려가 연락했다.

2. 설치

원래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세우고, 연대는 구릉에 세웠다. 봉수는 해변 가까운 산악에 설치하여 50리 밖을 후망하고, 연대는 선박이 접안하기에 용이한 해변 가까운 높은 지대에 설치하여 적선인지 표류선인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제주도의 경우는 둘 다 바다가 보이는 주요 지점에 설치되었다.

3. 형태

연대의 규모는 지형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대체적으로 높이와 너비가 각각 10척 내외였으며, 돌로 쌓았다.

4.배치

각 봉수와 연대의 배치 인원은 봉수가 별장 6명, 봉군은 12~36명으로 차이가 있다. 연대는 모두가 별장 6명, 연군[혹은 직군] 12명이다. 이들은 병기·기·각을 가지고 후망함으로써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어 불이나 연기를 피울 수 없는 경우에는 봉군이나 연군이 달려가서 연락을 취하였다.

[현황]

서귀포시 내에 위치한 연대의 수는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17세기 후반 이후의 『제주병제봉대총록(濟州兵制烽臺總錄)』에 의하면, 연대는 38개소로 되어 있다. 제주목 소속의 연대는 18개소, 정의현은 11개소, 대정현은 9개소 등이다. 서귀포 지역의 연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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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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