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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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기도 양주시와 관련하여 양주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898년 부터이다. 양주와 함께 이미 견주(見州)도 이때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고려 시대의 양주를 편의상 건국 후 정종(靖宗) 대까지를 초기, 문종(文宗) 대부터 원종(元宗) 대까지를 중기, 충렬왕(忠烈王) 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후기로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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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가 23부, 336군으로 개편되었다. 신관제(新官制)에 의한 23부제가 1895년 6월 23일에 시행됨에 따라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었다. 한성부에 소속된 군은 양주 이외에 한성·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 등 11개 군이 더 있었다. 23부제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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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문신. 김병시(金炳始)[1832~1898]는 문호 개방과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이후 1895년 을미사변 등 우리나라 근대의 격동기에 정부의 중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온건과 보수의 길에 서서 개량주의를 지향하는 정치가로 일관하였다. 특히 갑신정변을 주도한 혁명 세력은 물론 온건 개화 세력 등과도 정치적으로 대립한 보수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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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천주교 순교자.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증오(曾五), 호는 연파(煙波) 또는 중재(重齋). 세례명은 요한. 증조할아버지는 남규로(南奎老), 할아버지는 남이우(南履佑), 아버지는 충주부사를 지낸 천주교 순교자 남상교(南尙敎)이다. 친아버지는 남탄교(南坦敎)로, 어려서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 첫째 부인은 신행권(申行權)의 딸이고, 둘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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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경기도 양주 출신 인물들. 1910년 불법적 한일 강제 합방이 이루어지고, 1910년에서 1920년대에 걸쳐 점차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이 잇따르면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조직화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이는 3·1 만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후에도 국내 및 국외에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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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군에 있었던 공립 소학교. 1896년(고종 33) 9월 20일 고종의 칙령 제145호와 소학교령 제17조 ‘각 부·군은 관내의 학령 아동을 취학시킬 공립 소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규정에 의거하여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설립된 50개의 관립 소학교 중 경기도 내에 설립된 학교는 9개교로 확인된다. 그중 양주 지역에는 1899년(고종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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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보(金元寶)를 시조로 하고 경기도 양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양주 김씨의 시조는 김원보로, 신라 56대 왕 경순왕(敬順王)의 4남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이다. 김원보는 고려 고종 때 예부 상서와 영돈녕 판추밀원사를 지내고 양주백(楊州伯)에 봉해졌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양주에 세거했고, 경주 김씨(慶州金氏)로부터 떨어져 나와 양주를 본관으로 삼아 양주 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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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조선 후기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愼氏)의 능묘. 양주 온릉(楊州溫陵)은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이자 원비인 단경왕후 신씨[1487~1557]의 능이다. 단경왕후 신씨의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아버지는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 신수근(愼守勤)이다. 1499년(연산군 5) 중종이 진성대군(晉城大君)으로 있을 때 혼인하여 부부인(府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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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연원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나 찾아볼 수 있다. 왕건이 전국의 군·현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 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는 성씨가 왕실 및 일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주의 토착 성씨는 조선 전기 사회 상황을 전하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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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관료이자 애국지사. 본관은 파평. 호는 운정(雲庭). 아버지는 윤희섭(尹熙燮)이다. 윤응섭(尹應燮)에게 입양되었다. 개항기 종합 잡지인 『조양보(朝陽報)』의 편집 겸 발행인인 심의성(沈宜性)은 사촌누이의 아들이고, 딸 윤정원(尹貞媛)은 한국 최초의 유럽 여자 유학생이다. 윤효정(尹孝定)[1858~1939]은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현 양주시 은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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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윤희섭(尹喜燮)[188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희섭은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 회복 운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어서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丁未7條約)이 체결되는 등 충격적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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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의 국권을 침탈하면서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요하여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한 이덕현(李德鉉)은 국권 회복 운동을 하고자 결심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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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정치가·청년운동가·종교운동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계호(季皜), 호는 월남(月南). 아버지는 이희택(李羲宅)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1864년(고종 1) 강릉 유씨(江陵劉氏)와 결혼하였다. 이상재(李商在)[1850~1927]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는 전통 교육을 받았다. 1881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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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관료.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여(允汝), 호는 춘사(春史). 아버지는 이해석(李海錫)이고, 교육가이자 명신여학교 초대 교장인 이정숙(李貞淑)이 여동생이다. 이원상(李源商)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효계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한 이원상은 후에 양구군수·천안군수·안산군수·죽산군수를 역임하였다. 이원상은 1907년 의병을 일으킨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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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양주목사를 지낸 문신. 이유인(李裕寅)은 1889년(고종 26) 12월부터 1891년(고종 28) 11월까지 양주목사를 지냈다. 1890년(고종 27) 익종[순조의 아들]의 비였던 신정왕후(神貞王后)가 승하하여 수릉(綏陵)[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소재]에 합장할 때 공사를 잘 마무리한 공으로 품계가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올라갔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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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전주. 자는 성집(聖執), 호는 미석(渼石). 고종의 종척(宗戚)이다. 이재윤(李載允)[1849~1911]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877년(고종 14)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우승지(右承旨)에 이르렀으나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매국 역적들을 참하자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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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기도 양주 출신의 여성 교육자.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해석(李海石)이고, 오빠는 죽산군수를 역임한 이원상(李源商)이다. 이정숙(李貞淑)[1858~1935]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471번지[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16세 때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조카인 조영하(趙寧夏)와 혼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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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양주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풍양. 자는 작농(芍農), 호는 월파거사(月坡居士). 아버지는 참정대신에 증직된 조동석(趙東奭)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딸이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조정구(趙鼎九)[1862~1926]는 20세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동부승지, 홍문관 부제학, 대사성, 이조 참의, 규장각 직제학, 예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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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여윤(汝胤), 호는 가곡(嘉谷). 아버지는 효자 최혁(崔爀)이다. 최규석(崔圭錫)[1811~1893]은 최익현(崔益鉉), 유중교(柳重敎)와 교유하였다.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할머니와 부모의 병중에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연명케 하여 고을의 뭇사람을 감동시켰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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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추삼만(秋三萬)[1880~1910]은 경기도 양주군 회암면[현 양주시 회암동] 출신으로, 이담면 하봉암리[현 동두천시 하봉암동]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요하여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분노한 추삼만은 같은 해 8월 황재호(黃在浩) 의병 부대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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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옥정동에 있는 해평윤씨 집성촌. 해평(海平)은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이다. 해평윤씨의 시조는 윤군정(尹君正)으로, 고려 고종 및 원종 때에 수사공 상서 좌복야 판공부사를 지냈다. 윤군정의 손자인 윤석(尹碩)이 충숙왕 때에 충근 절의 동덕 찬화 보정 공신에 책록되고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해평윤씨가 시작되었다. 파는 문영공파(文英公派), 충간공파(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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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형(季馨), 호는 왕산(旺山).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4형제 중 막내로, 형은 허훈(許薰)[1990년 애국장 추서]·허신(許藎)·허겸(許兼)[1991년 애국장 추서]이다. 자녀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허학·허영·허준·허국이다. 허위(許蔿)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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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애국지사. 1907년 당시 홍태순(洪太順)은 기독교를 전도하는 목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1907년 7월 20일 일제가 헤이그 밀사 사건을 구실로 사실상 고종 황제를 강제 폐위시키자, 이에 분함을 금치 못한 홍태순은 7월 22일 오후 4시 서울 덕수궁의 대한문(大漢門) 앞에서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로 국민들의 여론이 분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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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 출신이거나 양주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에서는 넓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좁게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가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자 관계를 지배하는 행위 규범은 효(孝) 또는 효도로 집약될 수 있다. 효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유교의 도리 중 하나로 삼국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