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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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Zelkova[tree] |
이칭/별칭 | 괴목(槐木),규목(槻木),궤목(樻木),거(欅) |
분야 | 지리/동식물 |
유형 | 식물/보호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승균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439년경 - 느티나무[외암리 느티나무, 수령 5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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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식재 시기/일시 | 1489년경 - 느티나무[마곡리 느티나무, 수령 53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509년경 - 느티나무[수철리 느티나무, 수령 51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509년경 - 느티나무[강장리 느티나무, 수령 51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519년경 - 느티나무[구괴정 느티나무, 수령 50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639년경 - 느티나무[공세리성당 느티나무, 수령 38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669년경 - 느티나무[신달리 느티나무, 수령 35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689년경 - 느티나무[동천리 느티나무, 수령 33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720년경 - 느티나무[영괴대 느티나무, 수령 30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729년경 - 느티나무[오목리 느티나무, 수령 29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739년경 - 느티나무[역촌리 느티나무, 수령 28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749년경 - 느티나무[아산리 느티나무, 수령 270년] |
소재지 | 영괴대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대로 1459[온천동 242-10] |
소재지 | 공세리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공세리 194-1] |
소재지 | 동천리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234-2 |
소재지 | 오목리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오목리 108-1 |
소재지 | 역촌리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송악로 792[역촌리 43] |
소재지 | 외암리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9번길 13-2[외암리 203] |
소재지 | 마곡리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마곡리 543 |
소재지 | 신달리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달리 489-2 |
소재지 | 수철리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수철리 1055 |
소재지 | 구괴정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5[중리 300] 맹씨행단 |
소재지 | 아산리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429 |
소재지 | 강장리 느티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장리 산 64 |
학명 | Zelkova serrata |
생물학적 분류 | 식물계〉속씨식물문〉쌍떡잎식물강〉쐐기풀목〉느릅나뭇과 |
[정의]
느릅나뭇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충청남도 아산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수종.
[형태]
느티나무는 잎이 넓으며, 잎끝은 뾰족한 타원형이다. 큰키나무로 평균 26m 정도로 곧고 굵게 자라며, 가지가 위와 옆으로 뻗어 위쪽이 넓고 둥글게 이루어지는 형태이다.
[역사/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수목으로 꼽히며, 전 지역에 걸쳐 분포하는 나무이다. 느티나무는 커다란 수관을 형성하면서 환경에 강해 대표적인 정자목으로 활용되며, 목재로도 활용도가 매우 높다. 생육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강인하며 어느 수종보다도 장수하여 수령이 천 년이 넘는 나무도 많다.
마을 입구에서 정자목, 당산목의 형태로 쉼터의 역할과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을 해왔기 때문에 느티나무는 지역의 산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황]
충청남도 아산시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많이 분포하는데, 공식 지정된 보호수 중에서 절반이 넘는 숫자를 점유하여 현재 60그루가 선정되어 있다.
1. 영괴대 느티나무[수령 300년]
아산 시내의 온천동 지역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역대 임금이 온천 휴양을 왔던 온양행궁 터에 있는 나무이다. 영조의 온행에 함께 왔던 사도세자가 활 연습을 하던 곳인데, 아홉 발이 명중한 것을 기념하여 느티나무 세 그루를 품(品) 자 형태로 심었다. 그중 사도세자가 직접 심은 나무도 있는데 현재 한 그루가 남아 있다. 훗날 이 내용을 보고받은 정조가 ‘영괴대’라는 글을 내려 비석과 비각을 세워 부정(父情)을 그리워하고 추모하던 현장이다.
2. 공세리성당 느티나무[수령 380년]
인주면 공세리의 천주교 성지 공세리성당 내에 있는 느티나무이다. 예전에는 부둣가였던 공세리에서 해난 무사고를 기원하던 기도처가 있던 장소이나, 약 100년 전 공세리성당의 본당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약 3m 정도 지반을 낮추는 대공사를 하였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좌우 비례하여 건강하게 자라서 유서 깊은 나무이다.
3. 동천리 느티나무[수령 330년]
음봉면 동천리의 주막거리에 있는 느티나무이다. 구한말 천주교 박해에 즈음하여 순교자들이 압송되고 참형을 하러 가는 과정에서 잠시 기도하고 휴식을 취했던 장소이다. 순교자들이 기도했던 바위는 ‘오성바위’라 명명되어 서울시 마포의 절두산성지에 옮겨졌지만,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지켜보았고 현재까지도 무성한 가지를 펼친 느티나무이다.
4. 오목리 느티나무[수령 290년]
신창면 오목리의 느티나무로, 조선 영조 때 인물 이한징이 아들의 출생 기념으로 식수한 내용이 전하는 나무이다. 모두 삼남을 두었는데 장남에 느티나무, 차남에 팽나무, 삼남에 은행나무를 심어 주어 아들들의 건강과 훌륭한 재목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하며 심었다. 오늘날까지 그 유지를 이어서 건강하게 잘 자라는 나무는 장남을 기념했던 느티나무이다.
5. 역촌리 느티나무[수령 280년]
송악면 역촌리의 느티나무이다. 나무가 있는 자리는 과거 시흥역(時興驛)이 있던 장소이며 장이 섰던 곳이라서 늘 사람이 많아 정보를 교류하고 만남의 장소가 되었던 정자나무이다. 이 나무는 일제강점기 근대 소설가로 명성이 높았던 문인 방인근의 장편 소설 『마도의 향불』에 등장함으로써 더욱 유명해진 나무인데, 소설에서는 이 나무 근처에서 일어난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6. 외암리 느티나무[수령 580년]
송악면의 외암민속마을에 있는 당산목이다. 외암리에 입향조가 들어온 시기가 약 470년이기 때문에 그보다 100년 전부터 마을의 한복판에서 자리 잡고 있어 외암민속마을의 터줏대감 같은 느티나무이다. 매년 정월 보름에 목신제를 지내어 마을 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을 갖는다.
7. 마곡리 느티나무[수령 530년]
송악면 마곡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찾아와 선박을 만드는 용도로 강제 공출을 시도하였다. 마곡리 느티나무는 마을의 오래된 당산나무임을 설득하여 겨우 한 그루 남긴 나무이다. 이제는 오랜 세월에 가지가 병이 들어 모습이 위축되었지만, 또 다른 느티나무를 후계목으로 심어 놓았다. 인근 외암2리에서도 소총의 개머리판을 만들겠다며 공출을 시도하였는데 한 그루 남긴 사례가 있어 일제의 만행을 증명하고 있다.
8. 신달리 느티나무[수령 350년]
신창면 신달리에는 느티나무 네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외견상으로는 수령에 비해 가지도 부러지고 크지도 않지만, 이곳은 1979년 삽교천방조제가 조성되기 전까지도 배가 드나들던 나루터였기 때문에 느티나무는 배를 묶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강한 재질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느티나무는 해안가에서는 또 다른 쓰임새가 되었다. 선장면 홍곳리의 느티나무 보호수나 염치읍 석정리의 느티나무도 이처럼 선박을 매어두는 역할을 하였다.
9. 수철리 느티나무[수령 510년]
배방읍 수철리에 있는 느티나무는 ‘일헌수’라고도 부른다. 이 나무가 있는 터는 과거 돌미륵불이 있어서 마을에서 불당제를 지냈는데, 현재는 그 자리에 정자를 조성해 놓았다. 마을의 구심점이 되었던 동제 의식이 멈추자 온 마을 사람들은 ‘일헌수’라 명명한 노거수 느티나무에 비석을 세우고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나무’라는 내용을 새겨 놓음으로써 연연한 수철리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과 한 가족으로 대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 구괴정 느티나무[수령 500년]
배방읍 중리의 아산 맹씨행단 뒤뜰에 있는 느티나무이다. 맹씨행단은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고불(古佛) 맹사성의 고향으로, 훗날 관직을 마친 후에는 학동들을 가르치며 노년을 보낸 곳이다. 좌의정 맹사성은 영의정 황희와 우의정 허조와 더불어 산자락과 들녘이 보이는 정자에서 국정을 논하였는데, 한 사람당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어 이를 기념하였기에 ‘구괴정’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지금은 한 그루만 표피가 남아 겨우 생을 유지하고 있지만, 유서 깊은 삼정승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무이다.
11. 아산리 느티나무[수령 270년]
영인면 아산리의 느티나무는 옛 아산현의 관아와 우체국 자리에 있는 나무이다. 영인 지역은 구한말 청일전쟁의 격전지였던 역사적 장소이다. 이 느티나무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청군을 묶고 고문하던 나무이다. 조선을 두고 쟁패를 벌이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의 현장이라서 관아나 우체국은 없어졌지만, 오래된 나무는 모든 현장을 지켜보며 오늘까지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12. 강장리 느티나무[수령 510년]
송악면 강장리의 느티나무는 창녕성씨의 재실과 묘역이 있는 곳에 있다. 묘소 옆에는 전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남성성을 상징한다. 묘를 기준으로 양 측면에 있는 느티나무는 대체로 여성성을 상징하는데, 넓게 퍼진 수관이나 많은 열매로 인해 다산성을 의미하는 나무로 여겨서 음양의 조합으로 대변된다. 약 510년의 수령으로 추정되는 강장리 느티나무는 묘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자리한 나무이므로, 느티나무를 기준으로 묘역을 조성한 흔적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