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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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陽姜氏 |
영어음역 | Jinnyang Gangssi |
영어의미역 | Jinnyang Gang Clan |
이칭/별칭 | 진주 강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 |
집필자 | 송기동 |
입향 | 162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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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경상남도 진주시 |
입향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운남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 강평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연명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운남리 종상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흥평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옥율리 |
성씨 시조 | 강민첨 |
입향 시조 | 강설 |
[정의]
강민첨(姜民瞻)을 시조로 하고 강설(姜渫)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진양강씨의 시조는 고려 현종 때 강감찬과 함께 거란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은열공 강민첨이다. 중시조인 강감찬의 출생지가 진주인 관계로 진주의 옛 이름인 진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 경위]
진양강씨 학사공파로부터 분파된 16세(世) 찰방공 강설이 광해군의 폭정과 부정으로 얼룩진 과거 행태를 비판하였다. 1628년(인조 6) “영남은 이름난 인재를 배출하는 추로(鄒魯)라 칭하니 어찌 가서 살지 않으리오”라 하여 가솔을 거느리고 처향(妻鄕)인 김산군 기를[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로 이거했다. 찰방공파를 제외한 여타 분파의 정확한 입향 시기는 고증할 길이 없다.
[현황]
1999년 발행된 『김천시사』에 의하면 김천 지역의 진양강씨는 6세에서 분파된 학사공파(學士公派)와 14세에서 분파된 찰방공파 후손들이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 강평마을과 농소면 연명리, 남면 운남리 종상마을, 구성면 흥평리에 집성을 이루고, 6세에서 분파된 사평공파(司評公派)의 후손들이 어모면 옥율리에 집성을 이루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0년 현재 남면 운남리 종상마을에는 62가구에 150여 명이, 조마면 강곡리 강평마을에는 30가구에 80여 명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김천 지역의 진양강씨와 관련된 유적은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에 있는 자동서원(紫東書院)과 감천면 용호리 복호마을에 있는 모원재(慕遠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