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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체육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358
한자 金泉市體育會
영어공식명칭 The Gimcheon City Sports Council
영어음역 Gimcheonsi Cheyukhoe
분야 문화·교육/체육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운동장길 1[삼락동 51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문재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1936년 5월 29일연표보기
개칭 1946년 6월 5일연표보기
설립 1949년연표보기
개칭 1949년 8월 15일연표보기
관련 사항 1995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운동장길 1[삼락동 511] 지도보기
성격 체육 단체
설립자 심문
전화 054-435-7676
홈페이지 김천시체육회(http://www.gcsports.kr)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 있는 체육 단체.

[개설]

김천에 근대적인 체육 단체에 관한 기록은 1922년 금릉청년회가 조직되고 산하에 체육부를 두었다는 것이 최초이다. 또한 1926년에 철육회(鐵育會)라는 체육 단체가 시민체육운동회를 열려고 김천경찰서에 대회 개최를 신청 했다가 불허되자 일본인으로 구성된 김천청년회가 1921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남조선육상경기대회와의 형평성을 예로 들어 항의했다는 기록도 등장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김천 지역 체육 단체인 철육회는 금릉청년회 산하의 체육 단체로 보이며 일제 강점기하에서 일본인 체육 단체와 경쟁하며 지역 체육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설립 목적]

김천시 체육회는 김천 지역의 학교 및 사회 체육 진흥 통한 시민 체력 향상, 가맹 경기 단체 통합 지원, 엘리트 체육인 육성, 각종 대회 출전 및 개최를 통한 지역의 체육 발전과 주민 통합, 건강한 시민 사회 조성 등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공식적인 체육 단체로서 김천체육협회가 조직된 것은 1936년 5월 29일이며 회장은 알려지지 않고 한국인 평의원 고덕환, 박완, 김성문, 심상민 등과 일본인 평의원 타카다, 아베, 마쓰모토 등을 합쳐 모두 39명이 참가하였다. 광복 후에 김천 지역에 많은 체육 관련 단체의 등장으로 혼란이 발생하여 통합 여론이 일어나자 1946년 6월 5일 김호건, 백태진, 홍윤식, 박성기 등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천군청 회의실에서 군수 심문과 회동하였다.

이어 군소 체육 단체를 통괄하는 김천체육회 결성대회를 열어 회장에 심문, 부회장에 김은배·김종만, 이사장에 홍윤식, 총무부장에 백태진을 각각 선출하여 산하에 각부를 두고 부에는 부장, 차장, 감독, 주장의 직책을 두는 한편 위원제로 운영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1949년 8월 15일 김천시 승격으로 각 부를 연맹제로 개편하고 회장에 김천시장 류석영, 부회장에 김천경찰서장 전득수와 김은배, 이사장에 백태진, 상무이사에 김호건·고찬·한세동·김홍석·김계호·최수열·박휘창·최석호, 감사에 박성기·정관용·정환출을 선임하는 한편 김천시 체육회를 경북체육회의 산하 단체로 가입시켰다.

6·25전쟁 후는 김천시장 권중효가 회장이 되었다가 시의 자치제 실시로 민선 시장 이병관이 회장이 되고 부회장에 박성기·홍윤식·강중구, 이사장에 백태진, 총무에 김호건·백만수, 감사에 백승규가 선임되었다. 1957년 4월에는 김천시 체육회를 민간 주도로 개편하고 회장에 문화원장 강중구, 부회장에 조필호·백태진·홍윤식·박성기·김호건, 이사장에 백태진·김호건이 선임되었다.

1962년 3월에는 강영구가 회장에 선임되고 뒤를 이어 조종옥·서칠봉·변순권·박영진이 차례로 선임되었으며 배대근·허재옥 등이 전무이사를, 오해부·배대근이 총무부장을 차례로 맡았다. 그리고 김천시 체육회 산하에는 육상, 축구, 배구, 탁구, 야구, 농구, 정구, 핸드볼, 씨름, 유도, 궁도, 체조 등의 각 연맹을 두었다.

1968년 대한체육회와 학도체육회가 통합되자 민간단체인 김천시 체육회를 반관 반민 단체로 개편하고 체육회장을 시장이 겸임하도록 하여 시장 김한엽이 회장에 취임하고 부회장에 강영구·차무진·성옥환, 사무국장에 전수면, 총무에 오해부를 선임하였다. 1995년 김천시와 금릉군의 행정 통합에 따라 회장에 김천시장 박팔용, 부회장에 김종섭·위성소·권계동·이연창·정용현·이명철·김두성·서태운·한시종, 사무국장에 이인우, 감사에 권시태·김정배·김원기가 선임되었다.

한편 1949년 김천시 승격으로 금릉군 체육회가 별도로 발족하여 김천시와 금릉군 두 체육회가 병행하게 되었다. 금릉군 체육회는 1989년 금릉군수 김덕배 회장이 9개 연맹을 만들고 1991년에는 이인우가 사무국장에 취임했으며, 1993년에는 임원진을 개편하여 회장에 군수, 부회장에 교육장·농협지부장·부군수·이대진·정용현, 이사에 김갑부 등 26명, 사무국장 이황후로 선임했다가 1995년 김천시 체육회로 통합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김천시 체육회의 활동 목표는 시민들의 체력 증진을 위한 체육 기반 지원과 체육 활동을 통한 건강한 지역 사회 분위기 조성에 맞추고 있다. 또 각 산하 각 연맹에 대한 지원과 관리를 통해 우수 체육 자원 발굴과 선수 관리, 경기력 향상에 중점을 두고 관련 대회 유치 및 개최, 시민 체육 대회 개최, 지역 체육 시설에 대한 연구와 지역 체육 시설의 설치 및 관리, 학교 체육 지원 등 김천 지역 체육 진흥을 위한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63년 김천시 체육회가 제1회 경북도민체육대회에 350명의 선수를 파견하여 29개 시·군 중에서 3위를 차지하자 각 연맹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구기 종목의 향상을 위하여 학교·직장 대항 경기와 육상, 축구, 농구, 배구, 탁구, 정구, 핸드볼 등 종합 구기 체육대회를 매년 9월에 열기로 하였다.

1964년에는 임원을 개선하면서 회장에 강영구, 부회장에 이완재·전수면, 전무이사에 안중호, 총무에 오해부가 선임되고 운영위원회를 두어 위원장에 김정일, 부위원장에 손인배·김호건이 선임되었다. 개선된 임원진은 중단되었던 김천 씨름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감천백사장에서 전국남녀씨름장사대회를 개최했으며 전국의 장사들이 4일간 겨룬 끝에 김천 출신 김기수가 1위를 차지하였다.

1974년 4월 김천시 체육회를 중심으로 공설운동장 건립추진위원회가 조직되었으며1978년 9월에 종합공설운동장이 준공되었다. 이후 김천시 체육회는 매년 종합구기대회, 전국씨름대회, 시민체육대회, 도민체육대회 참가 등과 관련된 사업을 주도했으며 1996년에는 제1회 통합 김천시민체육대회를 개최하였다.

[현황]

2021년 10월 현재 서정희 김천시장이 회장을, 김동열이 상임부회장을, 석성대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산하에 김천시 육상연맹, 김천시 수영연맹, 김천시 축구협회, 김천시 테니스협회, 김천시 정구연맹, 김천시 농구협회, 김천시 배구협회, 김천시 탁구협회, 김천시 핸드볼협회, 김천시 아마추어복싱연맹, 김천시 레슬링협회, 김천시 씨름협회, 김천시 유도회, 김천시 검도회, 김천시 궁도협회, 김천시 사격연맹, 김천시 배드민턴협회, 김천시 태권도협회, 김천시 볼링협회, 김천시 로울러연맹, 김천시 골프협회, 김천시 보디빌딩협회, 김천시 야구협회, 김천시 사이클경기연맹 등 24개 연맹을 두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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