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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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녹도에서 만선의 기쁨을 부른 노래. 배치기 소리는 만선의 기쁨을 표현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어업 노동요보다는 흥겹다. 배치기 소리를 다른 용어로 봉죽타령·봉지·봉기[풍어 시 매다는 봉죽, 봉기라는 깃발에서 연유], 에밀양·이물양[배의 앞머리인 이물에 가득 실은 고기의 양]이라고도 한다. 「녹도배치기」에서는 귀향길에 만선(滿船)을 알리는 봉기를 꽂고, 연화(蓮花)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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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과 주산면 경계에 있는 석불과 관련되어 전승되는 이야기. 「미륵 모퉁이」는 석불의 유래담이다. 옛 보령군 웅천면 경계 국도변에 석불이 하나 서 있는데, 석불이 서 있는 이 모퉁이를 ‘미륵 모퉁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미륵(彌勒) 신앙이 민간 신앙으로 토착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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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양기리에 있는 벼락바위와 관련된 이야기. 「벼락바위와 산막」은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양기리에 있는 벼락바위 유래담으로, 산신령이 꿈을 통해 예언자로 등장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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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에 편찬된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연헉·인문지리 등이 기록된 읍지. 『보령읍지』는 18~19세기 충청도 지역의 읍지를 총 51책으로 펴낸 『충청도읍지』 중 46책에 해당하는 것으로, 1901년(고종 38)에 다시 정리해서 편찬한 읍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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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이경전의 시문집. 『석루유고(石樓遺稿)』는 조선 시대 홍문관정자, 사헌부집의, 영의정 등을 지낸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아들인 문신 이경전(李慶全)[1567~1644]의 시문집이다. 『석루집(石樓集)』이라고도 한다.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있는 이산해의 사당에 『석루집(石樓集)』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모두 63장으로 2009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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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16세기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및 동방정교회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성립한 종교이다. 전통적인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의 교리와 제도에 항의한다[Protest]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말한 데서 연유한다. 개신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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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에 있는 예전의 마량진성으로 충청도 남부 해안의 왜구를 방어하고 조운선의 안내와 보호를 담당한 조선 전기 진성. 구마량진성(舊馬粱鎭城)은 조선 전기 충청수영 휘하의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의 주둔지이며, 장항의 서천포영을 관할하면서 왜구로부터 충청도 남부 해안을 방어하고, 조운선(漕運船)의 안내와 보호를 담당한 곳이다. 하지만 포구의 수심이 낮아 군선(軍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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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한 주권 수호 운동으로, 서상돈 등의 제안으로 일본에서 빌린 1,300만 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보령 지역에서 일어났던 애국 운동.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는 182명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때 모금된 의연금은 243원 61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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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과 의의. 기독교는 영어로 크리스트교(Christian religion)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고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믿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세계 인구 약 70억 명 중 모든 교파를 합쳐 24억 명의 신자를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로마 후기에 그리스정교회와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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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개국 공신으로 충청남도 보령에 묻힌 문신. 김생려는 태종(太宗)[재위: 1400~1418] 대의 문신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어 백성들과 형제같이 지내는 등 선정(善政)을 배풀어 김종서 장군의 6진 개척에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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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석원(金錫元)[1862~?]은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의평리 출신으로 충청도 일대에서 1907년부터 1908년까지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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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왜구를 격퇴하고, 보령에 정착한 광산 김씨의 입향조. 김성우(金成雨)[1327~1392]는 고려 말 전라우도 도만호(都萬戶)로, 보령을 황폐화시킨 왜구를 소탕하고 보령에 정착하였으나 조선 건국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신념으로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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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 있었던 방어용 군사 기지. 남포진(藍浦鎭)은 고려 시대 우왕(禑王)[재위: 1374~1388] 때 왜구의 침입으로 황폐화된 남포현(藍浦縣)을 정비하고 방어하기 위해 1390년(공양왕 2)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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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의 녹도에 있는 조선 후기 권설봉수대의 하나. 충청남도 보령에 자리한 충청수영으로 연결된 조선 후기 봉수대(烽燧臺)이다. 봉수대는 2중의 구조로 동서 7.6m, 남북 9.6m, 둘레 27m 정도의 원형이고, 잔존 높이는 1.8m이다. 봉수대로 들어가는 출입 시설은 북동쪽에 나 있는데 폭은 1.2m이다. 중심부는 지름 2.2m가 흙으로 되어 있고, 밖으로 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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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보령 지역의 보령현과 남포현에서 동학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혁명. 충청남도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내포’라고 불리는 서남부 지역, 천안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역, 보령을 비롯하여 서천, 부여, 청양 일대를 아우르는 서남부 지역, 논산과 금산을 포괄하는 동남부 지역, 우금치 전투가 일어난 공주 지역으로 나뉘어 활동상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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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서식하는 메깃과의 민물고기. 충청남도 보령시에 서식하는 메기가 속하는 메깃과의 종류는 국내에 대표적으로 2종이 있다. 국내 거의 모든 담수역(湛水域)[하천 등에서 흐르는 물이 댐이나 둑 등의 인공적인 구조물에 의하여 멈추어 있는 수역]에 분포하는 메기는 우리나라 내수면 양식업의 주요 어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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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선림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선림사(禪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사찰의 주 법당인 대웅전에는 조선 후기 제작된 보령 선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保寧 禪林寺 木造釋迦如來坐像)과 보령 선림사 목조관음보살좌상(保寧 禪林寺木造觀音菩薩坐像)이 봉안되어 있다. 목조석가여래좌상의 높이는 49.4㎝이며, 목조관음보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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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서 음력 2월 14~15일에 풍어와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 외연도는 보령시의 가장 서북쪽에 위치한 섬으로, 200호에 5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외연도는 조선 중기 이후 본격적으로 주민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주민의 안녕과 마을의 평안, 풍어 등을 기원하는 제사를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보령 외연도 당제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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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인 1593년 6월 21일부터 29일까지 보령현감, 남포현감 등 충청도 병력이 참전한 2차 진주성전투. 경상도 진주성에서 의병장 김천일(金千鎰)[1537~1593], 경상우병마절도사(慶尙右兵馬節度使) 최경회(崔慶會)[1532~1593]를 비롯한 경상도 병력과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 황진(黃進)[1550~1593], 보령현감 이의정(李義精)[1555~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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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학성리에 있는 공룡발자국이 새겨진 화석. 보령 학성리 공룡발자국화석은 2015년 4월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30㎝ 안팎의 원형 공룡발자국 10여 개가 남아 있다. 보령 학성리 공룡발자국화석은 남한 전체 지역이 백악기 공룡들의 서식처라는 유용한 근거 자료가 되고 있음은 물론, 충청도 지역의 자연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높은 학술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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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조선 시대에 창건된 사찰. 선림사(禪林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선림사는 보령 충청수영성(保寧 忠淸水營城)이 있는 오천항에서 동쪽으로 약 2.4㎞ 정도 떨어져 있으며, 사찰 주변은 높이 100~200m 내외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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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공신. 안대진(安大進)[1561~1605]은 조선 후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군 접대와 승문원(承文院) 외교 문서 작성에 공을 세우고,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들어온 명나라 구원군의 접대를 위해 계금장군청덕비(季金將軍淸德碑)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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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도서 및 해안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다양한 고기잡이 방식과 생활. 보령시의 어업은 연안 어업, 근해 어업, 구획 어업 등 다양한 어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획되는 어종은 1960년대에는 노래미, 갈치, 조기, 서대[박대], 강달어, 반지, 숭어, 가자미, 홍어, 병어, 전갱이 순이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는 멸치, 키조개, 대구, 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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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보령시의 역사. 보령은 원삼국 시대 만로국(萬盧國), 또는 소위건국(素謂乾國)이 자리했을 것으로 비정(比定)되지만 그 실체는 분명하지 못하다. 백제 시대에는 사비기(泗沘期)를 전후하여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실시됨에 따라 설림군[서천]의 영현(領縣)인 사포현과 결기군[결성]의 영현인 신촌현으로 편제되었다. 고려 시대에 양광도로 편제된 보령은 보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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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갈매못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의 천주교 선교사. 오메트르(Pierre Aumaitre)[1837~1866]는 프랑스 에젝 태생의 천주교 사제로, 세례명은 베드로, 한국명은 오(吳) 베드로이다. 오메트르는 1862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1863년 조선에 입국하여 전교 활동을 벌이다가 1866년에 체포되어 다블뤼(Marie 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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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잔미산에 있는 조선 후기의 봉수대. 조선 전기의 기록에는 옥미봉 봉수대가 없고, 18세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옥미봉 봉수대가 나타난다. 옥미봉 봉수대는 18세기에 신설된 봉수대이다. 옥미봉 봉수대는 순천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충청남도의 내륙을 거쳐 한양까지 연결되었던 제5거 중 옥구(沃溝)에서 갈라져 서천~비인~남포~보령~흥양~결성~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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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있는 조선 후기 봉수대.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보령 충청수영성으로 연결된 조선 후기 봉수대(烽燧臺)이다. 외연도 봉수대는 전라북도 어청도에서 받아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녹도 봉수대에 전해 주었다. 어청대 봉수대와는 16㎞, 녹도 봉수대와는 16.25㎞ 떨어져 있다. 조선 후기의 기록에 나타나므로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외연도 봉수대는 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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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에 있는 해수욕장. 해안사빈 중 모래가 고우면서 길고 넓게 펼쳐져 있고, 경사가 완만하고, 그리고 배후의 해안사구에 해송이 심어져 있는 등 풍치가 아름답고, 바닷물 수온이 적당한 경우 대개 해수욕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에도 육지와 섬의 해안 곳곳에 해안사빈들이 잘 발달하였고, 그 중의 거의 대부분에 해수욕장이 들어서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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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의 오봉산 산정에 있는 조선 후기 봉수대.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의 원산도 오봉산 정상에 있는 원산도 봉수대는 보령 충청수영성으로 연결된 조선 후기 봉수대(烽燧臺)이다. 원산도 봉수대는 16.9㎞ 떨어진 녹도 봉수대에서 받아 12.15㎞ 떨어진 망해정 봉수대로 연결된다. 원산도 봉수대 동쪽 산 아래에는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진촌(鎭村)마을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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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활동하고 갈매못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의 선교사. 위앵(Martin Luc Huin)[1836~1866]은 프랑스 기용벨 태생의 천주교 사제로, 세례명은 마르티노 루가, 한국명은 민(閔) 마르티노 루가이다. 위앵은 1861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1865년 조선에 입국하여 전교 활동을 벌이다가 1866년에 체포되어 다블뤼(Marie Nico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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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이후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일어난 반침략·반외세 운동. 위정척사운동은 위정척사 사상을 기반으로 성리학적 세계관과 지배체제를 강화하여 일본과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응한 반침략·반외세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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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으로 후손들이 보령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인조반정의 공신. 유순익(柳舜翼)[1559~1632]은 기호학파의 거유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제자로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반정군이 들어오는 시간에 분병조참의(分兵曹參議)로 궁궐의 문을 여는 임무를 수행하여 공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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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한 조선 후기의 무신. 윤직[1619~1681]은 병자호란에 활약하고, 후에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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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재(李景在)[1800~1873]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충청남도 보령 한산 이씨 입향조인 이치(李穉)의 형인 이질(李秩)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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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경전(李慶全)[1567~1644]은 조선 후기 전라도관찰사, 좌참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장가로, 아들 이무(李袤)가 남긴 글을 모아 엮은 문집 『석루유고(石樓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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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은거한 조선 후기의 문신. 이무(李袤)[1600~1684]는 붕당정치 속에서 남인 관료로 활동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권이 바뀌자 충청남도 보령에 은거하였다. 유배 후에 보령에 돌아와 사망하였으며, 후손이 보령에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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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현대 소설가. 소설가 이문구(李文求)[1941~2003]는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과 무분별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해체된 농촌 사회의 아픈 세태를 충청남도 지역의 토속적 방언으로 형상화한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 『관촌수필』[1977]과 『우리동네』[1981] 연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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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의병장. 이산겸(李山謙)[?~1594]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지휘하여 충청 지역을 지켜내는 데 큰 공을 세운 의병장이었으나, 송유진의 반역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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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명나라에서 귀화하여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정착한 무인. 이성룡(李成龍)[1600~1653]은 조선 후기 명에서 귀화한 무인으로 명과 후금의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명군이 패하자 조선으로 피신하여 보령에서 혼인하고 정착하였다. 이성룡의 후손들이 보령에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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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전후에 활약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세거한 연안 이씨의 입향조. 이시방(李時昉)[1594~1660]은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신이며 충청남도 보령과 홍주 지역에 세거한 연안 이씨 입향조이다. 강화도를 방비하고 청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힘썼으며 남도에 대동법을 주장하는 등 병자호란 전후에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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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충청도 보령 지역 연해에 나타난 우리 배와 모습이 다른 외국 선박의 출몰. 이양선(異樣船)은 조선 시대 연해에 나타난 서양의 배들을 말한다. 서양의 배의 모양이 우리 배의 모습과 다르다는 뜻으로 ‘이양선’이라고 하였으며, 이단선(異團船)·황당선(荒唐船)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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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시기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군인. 이응주(李應疇)[1878~1957]는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 출신의 군인으로, 1900년 육군무관학교[1회]를 졸업한 인물이다. 육군무관학교는 대한제국에서 신식 군대의 장교를 교육하던 기괸이다. 상해임시정부에도 같은 이름의 ‘육군무관학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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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충청남도 보령시 인구의 주요 내역은 인구 추이(推移)와 인구 개황(槪況)을 중심으로 개관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인구 추이는 인구수의 시계열적 변화를 조선 시대와 근대 이후로 구분하여 파악하고, 인구 개황은 2020년 12월 말 기준의 세대 및 인구의 추이, 성비(性比), 읍면동별 인구 분포, 인구 동태(動態), 인구 이동, 총인구 중 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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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2차에 걸쳐서 침략하여 보령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는 명(明)을 공격하기 위해 길을 비켜 달라는 구실로 1592년(선조 25) 조선을 침략하였다. 조선은 수도인 한양이 함락당했으나 국왕 선조(宣祖)[재위: 1567~1608]가 의주로 피난하였고, 명의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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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한국계 러시아 여인 정길당이 보령 지역을 비롯한 충청도 일대에서 러시아정교회인 희랍교 선교사를 사칭하였던 사건. 정길당의 아버지 고씨는 러시아로 넘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국적을 얻었는데, 이후 가족들 중 정길당만이 조선으로 되돌아왔다. 정길당 사건은 아관파천(俄館播遷)[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친러 세력에 의하여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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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은거한 조선 후기의 문신. 조계원(趙啓遠)[1592~167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후 심양(瀋陽)에서 소현세자(昭顯世子)[1612~1645]를 보좌하고, 소현세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묘책을 내어 세자를 구하였다. 말년에 보령 탑동에 머물며 조정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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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보령에 은거하며 유교 문풍을 진작하고 후학 양성에 전념한 문인. 조병덕(趙秉悳)[1800~1870]은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이 있었음에도 모두 사양하고, 충청도 남포[현 보령시 미산면]에 입향하여 지역 사림들의 공론을 주도하는 산림(山林)[학식과 덕이 높으나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숨어 지내는 선비]의 역할에 충실하였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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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수군의 군영. 조선 시대 수영(水營)은 오늘날의 해군에 해당하는 지방 군사조직이다. 수영은 도(道)별로 설치하였으며,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주재하였다. 충청수영(忠淸水營)은 충청도 해안 방어의 본영으로 중서부 서해안의 왜구 침탈 및 조운선(漕運船) 등의 보호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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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보령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인 보령현(保寧縣)과 남포현(藍浦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보령현과 남포현은 서로 다른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보령현은 “본래 백제의 신촌현(新村縣) 이었는데, 신라 때에 신읍(新邑)이라 고쳐 결성군(潔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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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 현상.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종교는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대표적이다. 보령시는 지리적으로 해안가에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수도에서 외진 곳에 있어 종교의 유입이 비교적 늦었다. 이러한 지역적 여건 위에 전통적인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신흥 종교의 기반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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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7일에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있는 주렴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항일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도 유호근(柳浩根)[1853~1925], 윤석봉(尹錫鳳)[1842~1910] 등이 의병에 격려문 발송 등의 활동을 하였다. 윤석봉은 1906년 1월 19일 최익현을 접견하고 보령으로 돌아와 지방 유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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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일대에서 양식하는 굴 특산물. 충청남도 보령시 북쪽 끝가락에 자리한 천북면 일대는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자연산 굴 생산이 많았다. 천북면의 해안가 갯벌에서는 예로부터 맛이 좋은 굴이 생산되었으며, 1980년대부터 일찍이 양식 굴을 생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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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가톨릭교회.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천주교가 조선에 널리 수용되기 시작한 18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나 18~19세기 충청남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천주교 교세는 크지 않았다. 보령 지역은 충청남도 일대에서 가장 늦은 1962년에 이르러서야 대천성당이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대천성당이 본당으로 설립되면서 보령 지역에서도 천주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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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과 주포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항일의병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도 유호근(柳浩根)[1853~1925], 윤석봉(尹錫鳳)[1842~1910] 등이 의병에 격려문 발송 등의 활동을 하였다. 윤석봉은 1906년 1월 19일 최익현을 접견하고 보령으로 돌아와 지방 유생들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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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관산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보령의 역참. 청연역(靑淵驛)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광시역(光時驛)·세천역(世川驛)·용곡역(龍谷驛)·급천역(汲泉驛)·순성역(順成驛)·흥세역(興世驛)·풍전역(豐田驛)·하천역(下川驛)·몽웅역(夢熊驛)·해문역(海門驛)과 함께 금정도(金井道)[조선 시대 충청도 청양의 금정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에 편제되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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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보령, 홍성, 광천, 청양, 대흥, 결성 등 6개 군에 속한 보부상단이 상권을 관할하고 구호 역할을 하던 장소. 조선 후기 전국에는 1,000여 개의 5일장이 열려,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팔았다. 5일장을 찾아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부상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조선 시대 지방 시장의 발달을 촉진시킨 사람들이다. 보부상들은 상호간의 협력 필요성 때문에 ‘상무사(商務社)’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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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있는 조선 시대 충청도의 해양 방어를 총괄하였던 성곽. 조선 시대 정3품의 충청도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가 주재하는 수영(水營)으로 성곽은 1510년(중종 5)에 석성으로 쌓았다. 이후 충청도 해역에 대한 방비, 조운선 호송 등을 담당하다가 1895년(고종 32) 폐영(閉營)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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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7월 15일 보령 충청수영 소속의 충청수군이 원균의 지휘 아래 칠천량에서 싸운 전투. 임진왜란 중 명(明)과 일본의 화의(和議)가 결렬되자 일본은 1597년(선조 30) 1월 다시 조선을 침범하였다[정유재란]. 당시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모함으로 하옥되었고, 원균(元均)[1540~1597]이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로 있었다. 원균이 충청도·경상도·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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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양반 전통 가옥. 편무성가옥(片戊成家屋)은 조선 후기의 전통 가옥으로 안채만 남아 있다. ‘영월영감님댁’으로 불렸으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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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입었던 복식. 보령 지역의 평상복은 도심과 농어촌 지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대천과 그 인접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서양식 복장을 평상복으로 입었지만, 전통적인 농어촌 지역에서는 1990년대까지 한복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평상복을 많이 입었다. 이들 지역은 조선 후기 충청도 서부의 주요 모시 생산지인 저산팔읍(苧山八邑)의 생활권으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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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한양 조씨(漢陽 趙氏)는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고 조필(趙弼)[?~?]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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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충청남도 보령 지역 및 충청도 전역 출신 학생들이 서울에서 결성한 친목회. 학생 단체와 학생운동 단체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학생 단체가 일정한 목적을 갖고 단체를 기반으로 학생운동 단체로 발전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우선 친목회 같은 학생 단체가 발달하여 학생 간에 지성적 광장이 조직화되면서 학생운동 단체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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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의병. 황재현(黃載顯)[1848~1903]은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창암리 출신으로 구한말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정의를 지키고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가톨릭과 서양의 문물을 반대한 19세기 중엽 구한말의 사상 조류]을 펼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