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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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宗敎 |
영어공식명칭 | Religion |
분야 | 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맹주완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신앙 행위의 총칭.
[유교]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으로 본다. 우리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 사상 체계로서의 유교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에는 태학을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쳤고, 백제의 왕인(王仁)은 일본으로 건너가 태자를 가르쳤다. 유교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에 이르는 동안 정치 이념이자 생활 규범으로 작용하여 종교적인 측면보다는 전통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유교의 근간은 고려 말에 도입된 성리학이며, 최고 전성기였던 조선시대에 성리학자들[권근, 이황, 이이, 주세붕, 정약용 등]에 의해 사상적·학문적인 업적이 쌓였으며, 국가 의례와 민간 의례에 대한 유교적 전통이 생겨났다. 유교의 가르침대로 선현의 덕을 기리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향교와 서원이 세워졌는데, 현재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는 3개 향교[아산향교, 온양향교, 신창향교]가 있고, 유교 조직으로 유도회 아산시지부가 있다. 향교에는 대표자인 전교(典校)를 중심으로 장의(掌議)들이 향교를 운영하고 있다. 서원은 배방읍 중리의 정퇴서원[1634], 염치읍 서원리의 인산서원[1610], 도고면 도산리의 도산서원[1670], 송악면 강당리의 외암서원[1707] 등이 있었지만,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현재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 아산 지역과 관련된 성리학자로는 조선 초기에 맹사성(孟思誠)[1360~1438]과 고려가 망하자 아산의 도고산에 낙향한 김질(金秩)[1422~1478]이 있으며, 조선 중기 성리학의 한 축을 이룬 인물로는 이지함(李之菡)[1517~1578], 홍가신(洪可臣)[1541~1615], 이순신(李舜臣)[1545~1598], 박지계(朴知誡)[1573~1635], 조익(趙翼)[1579~1655] 등이 있다. 특히, 송악면 외암리 출신의 이간(李柬)[1677~1727]은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화두였던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에서 동론(同論)을 주장한 핵심 인물이었다.
[불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372년(소수림왕 2) 고구려는 중국 진(秦)나라의 순도(順道)라는 승려를 통해 불상과 경문을 받아들였고, 백제는 384년(침류왕 1)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였다. 백제 지역이었던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현존하는 일부 고찰들은 삼국시대에 창건되었지만, 정확한 연대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이는 사찰이 중수되고,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경내에 있는 석탑이나 불상 등으로 그 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은 고려시대에 창건한 신창면 읍내리에 있는 인취사(仁翠寺)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백제시대에 창건한 세심사(洗心寺)는 염치읍 산양리에 있다. 불교가 크게 융성하였던 통일신라시대 아산 지역에는 봉곡사(鳳谷寺)가 창건되었다. 불교를 억압하였던 조선시대에 아산 지역에서 새롭게 건립된 사찰의 기록이나 절터는 없다. 1911년 일제강점기에 사찰령이 공표되어 아산 지역의 사찰들은 공주 마곡사의 관할이 되었다. 해방 이후 불교계는 대한불교조계종과 한국불교태고종으로 나뉘었고, 그 밖에도 많은 불교 종단이 생겨났다. 아산 지역에는 다양한 종단에 소속된 77개의 사찰[오봉암[현 오봉사], 용담사, 관음사, 강당사, 용화사, 송암사, 동심사, 옥련암 등]이 있다. 그리고 송악면[종곡리, 동화리 등], 배방읍[회룡리, 윤정리 등], 도고면[오암리, 덕암리 등], 신창면[황산리], 탕정면[매곡리], 음봉면[산동리, 월랑리 등], 선장면[삼봉암, 신동리 등], 둔포면[송용리, 신항리], 영인면[동림사지, 관음사지 등], 인주면[금성리, 운정암 등], 염치읍[동정리, 수암사지 등]에 많은 절터가 있다. 불교 문화재로는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관음사 석조여래불입상, 영인신현리미륵불, 온천리 석불, 읍내동 당간지주, 염치읍 산양리의 세심사다층탑, 영인면 아산리의 관음사석탑, 신창면 읍내리의 인취사석탑, 영인면 아산리의 영인오층석탑, 송악면 유곡리의 봉곡사 불화, 봉곡사 대웅전 및 고방 등이 있다. 그 외에도 현존하지는 않지만 다수의 사찰이 존재했었고 조선시대 이전 세가 상당했다.
[천주교]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천주교는 중국 북경을 왕래하던 사절단들을 통해 한문으로 번역된 천주교 서적들이 유입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서양 문물에 대한 학문적 관심에서 천주교 서적을 읽었던 것이 차츰 신앙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이승훈,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등이 신앙에 심취하였고, 이승훈은 1784년 북경에서 첫 세례를 받고 돌아왔다. 이승훈이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약 100년간의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 등으로 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하였다. 박해 시기에 아산 지역에도 박의서, 박원서, 박익서, 김중백 등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1895년 8월 아산 지역을 담당하게 된 에밀 피에르 드비즈(Emile P. Devise) 신부가 인주면 공세리로 부임해오면서 공세리성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공세리성당은 충청남도 최초의 본당으로, 당시 아산군, 천안군, 공주군, 충청북도 진천군 등을 관할 지역으로 하였다가 차츰 분리해 나가면서 1901년부터는 아산 지역만 관할하게 되었다. 2018년 기준 아산 지역은 대전교구에 속해 있으며, 공세리성당[1895], 온양성당[1920], 도고성당[1974], 둔포성당[1976], 모산성당[1985], 온양 용화동성당[1985], 온양 신정동성당[2004], 배방성당[2008], 장재성당[2010], 온양 모종동성당[2011], 온양 풍기성당[2011]으로 총 11개의 성당이 있다. 아산 지역은 내포 천주교회의 순교 신앙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아 신앙의 뿌리가 깊고 성직자와 수도자를 많이 배출하는 확고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기독교]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기독교 교파로는 감리교, 장로교, 성공회, 침례교, 성결교, 나사렛성결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순복음교회] 등 여러 교단이 있다. 아산 지역 최초 교회는 1901년 최봉현 전도사가 염치읍에 세운 백암감리교회이다. 이어서 1904년 온양군 읍내면에 감리회 소속 온양교회가 설립되었고, 1905년에는 도고면에 도산교회가 세워지는 등 지역 곳곳에 교회가 들어섰다. 최초의 장로교회는 1946년 이제하 집사가 설립한 온양제일교회이다.
아산 지역의 주요 교단과 역사가 있는 교회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대한감리교회[백암교회, 둔포교회, 배방교회, 온양교회, 온천중앙교회 등], 대한예수교장로교[온양삼일교회, 온양제일교회, 산양교회, 풍기교회, 성안교회 등], 한국기독교장로회[온양장로교회 등], 침례교 및 기타[신창침례교회, 궁화침례교회, 매곡성결교회, 온양성결교회, 성공회온양교회, 구세군창용교회 등]이다. 아산시에는 기독교 단체[아산시 기독교연합회, 아산YMCA 등]도 활동하고 있으며, 개신교계 학교로는 온양한올중·고등학교, 호서대학교가 있다. 2018년 기준 아산 지역의 개신교 교회는 350여 개[장로교단 108개, 감리교단 101개, 성결교단 37개, 침례교단 10개, 순복음교단 21개, 한국기독교장로회 6개, 성공회 3개, 구세군 5개]에 달한다.
[신종교 및 기타]
우리나라 신종교의 시작은 동학이 창도된 1860년 이후를 기점으로 하며, 한국에서 생겨난 종교를 민족종교라고 한다. 아산 지역의 신종교로는 천도교(天道敎)와 원불교(圓佛敎),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가 있다. 천도교는 최제우(崔濟愚)가 창도한 동학을 모태로 한 종교이다. 전국적으로 200여 개 교구가 있으며, 신도 수는 10만 명 미만으로 추정되며, 아산 지역에는 권곡동에 천도교 아산교구가 있다. 원불교는 1916년 석가모니 부처님과 비슷하게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 박중빈(朴重彬)이 창시하였다. 1943년 ‘원불교’라는 교단 명칭이 부여되었으며, 아산시 권곡동에 1980년 설립된 원불교 온양교당이 있다. 대순진리회는 하늘의 구천상제(九天上帝)가 인간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온 존재가 강일순(姜一淳)이라고 믿고 따르는 종교이다. 용화동에 대순진리회 용화회관이 있고, 온영2동에 용암수도장이 있다. 기독교 계열의 신종교들로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여호와의 증인,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경을 경전으로 하지만, 예수 재림에 대한 믿음과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 등이 다른 개신교와 차이를 보인다. 아산시 둔포면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둔포교회와 신창면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창교회가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독교인 대부분이 믿는 삼위일체설, 영혼불멸설, 지옥에 대한 개념 등을 거부하며 예수도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고 보는 종교이다. 신창면, 염치읍, 영인면, 배방읍, 도고면에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이 있다. 종교 시설은 아니지만, 역시 성경을 경전으로 하는 문선명이 창시한 통일교가 운영하는 선문대학교가 아산에 있다.
[민속신앙]
민속신앙은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특히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동제는 마을 주민들의 신앙심으로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지낸다. 마을에서 올리는 동제의 주신에는 산신, 성황신, 수구신 등이 있고, 보조 신에는 해신, 성주, 토지지신, 용왕, 오방지신(五方地神)[집터의 동·서·남·북·중앙에서 집터의 안전과 보호를 주관하는 신], 목신 등이다. 아산 지역의 경우 주신과 보조 신을 크게 구별하지 않으며, 섬기는 신격에 따라 산신제, 서낭제, 당제, 노신제, 장승제, 나무 고사, 용왕제, 미륵제 등으로 구분한다. 빈도수로 보면 마을이 산을 배경으로 형성되었기에 산신제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토지와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제를 많이 올린다. 마을로 드나드는 길에서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주는 노신제를 드리는데, 노신의 신체로 장승[송악면 종곡리]이 되기도 하고,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점량동]나 바위[희안마을]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민속신앙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주민들의 생업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신앙의 약화는 물론 쇠락하고 있다. 이 밖에도 부정기적이며 일시적인 신앙 행위를 특징으로 하는 무속인들의 굿이나 점을 치는 행위 등도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