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78 |
---|---|
한자 | 佛像 |
영어공식명칭 | Statue of the Buddha |
이칭/별칭 | 보살상,천왕상,명왕상,나한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영주 지역에서 불교 교리에 따라 예배 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조형물.
[개설]
불상(佛像)은 석가여래의 모습을 조형적인 형상으로 표현한 상(像)을 의미하나 넓은 의미에서는 부처의 상은 물론 보살상(菩薩像)·천왕상(天王像)·명왕상(明王像)·나한상(羅漢像) 등을 모두 포함한다. 불상은 기원전 2세기경에 인도의 간다라 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져,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주 지역에서 불상이 처음 조성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이다.
불상의 종류는 조각(彫刻)으로 만든 조소상(彫塑像)과 그림을 그린 화상(畫像)의 두 가지가 있다. 조소상에는 금속으로 만든 주상(鑄像), 나무로 조각한 목상(木像), 돌로 조각한 석상(石像)이 있는데, 석상에는 큰 바위벽에 새긴 마애불상(磨崖佛像)도 있다. 주상에는 쓰인 재료에 따라 금상(金像)·은상(銀像)·금동상(金銅像)·철상(鐵像) 등이 있으며, 목상에는 통나무로 조각한 일목조(一木造)와 여러 부분을 조각하여 짜 맞춘 합목조(合木造)가 있다.
또한, 불상은 자세에 따라 입상(立像)·좌상(坐像)·와상(臥像)·반가상(半跏像) 등으로, 만드는 재료에 따라 석불(石佛)·목불(木佛)·철불(鐵佛)·금동불(金銅佛)·건칠불(乾漆佛)·토불(土佛) 등으로 구분된다. 화상에는 비단이나 종이에 그린 불화상(佛畫像), 벽에 그린 벽화(壁畫), 수를 놓은 자수상(刺繡像)이 있다. 영주 지역의 불상들은 재료 면에서 보면 석불·마애불·목불·토불 형태이며, 자세 면에서는 좌상과 입상 모양의 불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영주 지역의 불상 현황]
영주 지역에 처음으로 불상이 조성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이다. 현재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불상 21점 가운데 부석사(浮石寺) 자인당(慈忍堂)의 협시불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榮州北枝里石造如來坐像)을 비롯하여 16점이 이 시기에 조성되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불상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본존불상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榮州浮石寺塑造如來坐像)을 비롯하여 4점이며, 조선 전기에 조성된 불상은 흑석사 극락전에 봉안된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榮州黑石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 1점이다.
현재는 주조기술이 발달하여 철불을 많이 조성하는 편이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석재를 사용하는 석불과 마애불상을 많이 조성하였다. 석불은 부석사 자인당 본존불인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榮州浮石寺石造釋迦如來坐像)을 비롯하여 12점인데,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다. 마애불상은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榮州可興洞磨崖如來三尊像-如來坐像)과 더불어 7점이 조성되었는데 그 가운데 4점은 통일신라시대, 3점은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 그 외 소조상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과 목불상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각각 1점씩 조성되었다.
대부분 불상이 사찰의 불전에 봉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영주 지역에는 사찰에 봉안된 불상은 11점이고, 사찰 외에 봉안된 것이 10점이다. 특히 마애불상의 경우는 지리적·환경적 특성이 반영되어, 흑석사 마애삼존불상(黑石寺磨崖三尊佛像)을 제외하고 6점은 모두 야산에 조성되어 있다.
[영주 지역의 불상 문화재]
영주 지역에서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불상은 국보 2점, 보물 8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점, 문화재자료 8점이다.
국보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과 조선 전기에 조성된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82호] 등 2점이다. 보물로 지정된 불상보다 조성 시기가 늦음에도 불구하고 국보로 지정된 것은 재료가 소조와 목조이면서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기 때문이라 추정된다. 보물 8점은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2점은 마애불상이다.
보물은 영주 영주동 석조여래입상(榮州榮州洞石造如來立像)[보물 제60호],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榮州石橋里石造如來立像)[보물 제116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제221호],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榮州新岩里磨崖如來三尊像)[보물 제680호],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榮州黑石寺石造如來坐像)[보물 제681호], 영주 비로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및 석조비로자나불좌상(榮州毘盧寺石造阿彌陀如來坐像-石造毘盧遮那佛坐像)[보물 제996호],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1636호] 등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는 3점으로 영주 읍내리 석불입상(榮州邑內里石佛立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영주 영전사 석조여래입상(榮州靈田寺石造如來立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4호], 영주 성혈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榮州聖穴寺石造毘盧遮那佛坐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2호] 등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는 모두 8점으로, 영주 읍내리 석조여래좌상(榮州邑內里石造如來坐像)[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8호], 영풍 두월리 약사여래석불(榮豊斗月里藥師如來石佛)[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3호], 영풍 월호리 마애석불좌상(榮豊月呼里磨崖石佛坐像)[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3호], 영주 상망동 석불좌상(榮州上望洞石佛坐像)[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7호], 백룡사 석조여래좌상(白龍寺石造如來坐像)[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2호] 흑석사 마애삼존불상(黑石寺磨崖三尊佛像)[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5호], 영주 강동리 마애보살입상(榮州江東里磨崖菩薩立像)[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4호], 영주 휴천동 마애여래좌상(榮州休川洞磨崖如來坐像)[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04호] 등으로 마애불상이 5점, 석불상이 3점이다.
[영주 지역 불상의 특징]
영주 지역의 불상은 사찰의 주존불로서 통일신라시대부터 봉안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현재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불상 21점 가운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불상만 16점이고 고려시대 4점, 조선 전기 1점이다. 조선시대의 억불정책, 일제강점기의 문화재 수탈, 6.25전쟁을 거치면서도 보존이 잘 되어, 영주 지역에는 국보로 지정된 불상이 2점, 보물 8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점, 문화재자료 8점이 전한다. 불상의 형태는 좌상과 입상이고 재료 면에서는 석불상·마애불상·소조불상·목조불상 등 다양하다.
영주 지역은 통일신라시대 수도인 경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불상이 지방적인 특성을 보인다. 특히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의 마애불은 통일신라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이러한 형태의 마애불이 지방에서 제작된 예는 영주 지역과 봉화 지역밖에 없다. 따라서 불상은 영주 지역 불교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