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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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정 왕후가 아들 명종의 쾌유와 세자 탄생을 빌기 위해 만들어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 봉안한 불화. 1565년(명종 20) 불화의 화기(畵記)에 의하면 문정 왕후는 명종의 장수와 선정(善政), 왕자의 다산(多産), 왕비의 회임(懷妊)과 훌륭한 세자의 탄신을 기원하기 위하여 석가, 미륵, 아미타, 약사여래의 화상(畵像)을 각기 금화(金畵)와 채화(彩畵)로 50점씩, 모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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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8일과 4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경기도 양주는 의병의 전통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주민들의 역사적 인식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특히 추교시장[현 가래비시장]은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통 시장으로 많은 사람이 운집하고 각종 문물이 집결하는 곳이다. 따라서 점차 격렬하게 확산되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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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진주(晉州). 본명은 강기주(姜基周). 아버지는 강준복(姜俊福)이다. 강기동(姜基東)[1884~1911]은 서울 명동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군 기병부위(騎兵副尉)로 있다가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군을 규합하여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그 뒤 일본 헌병대를 찾아가 위장 귀순하여 경기도 장단(長湍) 고랑포(古浪浦)에서 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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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기도 양주시와 관련하여 양주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898년 부터이다. 양주와 함께 이미 견주(見州)도 이때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고려 시대의 양주를 편의상 건국 후 정종(靖宗) 대까지를 초기, 문종(文宗) 대부터 원종(元宗) 대까지를 중기, 충렬왕(忠烈王) 대부터 고려 말까지의 후기로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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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에 있는 자연 마을. 고릉말은 옛날에 능이 있던 마을 혹은 능 자리로 적합한 지역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양주군지』[1992]와 『양주 땅이름의 역사』[2001]에 따르면 1895년 일본이 제작한 군사 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에 처음으로 고릉리(古陵里)로 소개되어 있으며, 이후 고릉말로 불리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도로명주소 등 표기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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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양주 지역의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 시대 무덤의 일종이다. 고인돌이라는 명칭은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의미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이러한 고인돌에 대해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석붕(石棚)·대석개묘(大石蓋墓)라 하며, 유럽에서는 거석 기념물 또는 돌멘(Dolmen)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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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입암리에 있는 화학섬유 직물 제조업체. 광일섬유는 의류, 산업, 완구에 쓰이는 트리코트 직물을 생산, 공급, 판매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4년 장태일이 편직기 10대와 정경기(整經機) 3대로 광일섬유를 창업하였다. 1999년 10월부터 2005년까지 콤파운드 3 Bar, 정경기 등 30여 대의 기계를 추가로 도입하는 등 6차례 공장을 증설하였다. 주요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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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자연 마을. 지명 유래에 몇 가지 설이 있다. 만석지기 아홉 명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며 마을이 흡사 거북이의 머리, 등, 꼬리와 같은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에선 일제가 원래의 이름을 한자로 옮기면서 발음을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구만리라는 지명은 이미 19세기 말에 제작된 일본 군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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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가 23부, 336군으로 개편되었다. 신관제(新官制)에 의한 23부제가 1895년 6월 23일에 시행됨에 따라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었다. 한성부에 소속된 군은 양주 이외에 한성·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 등 11개 군이 더 있었다. 23부제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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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출신의 정치인. 김덕열(金德烈)[1910~?]은 1910년 9월 2일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현 양주시 유양동]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법학과와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청 관재처 감찰관과 양주군 주내면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국회 의원 선거에서 양주군 갑구에 출마하여 초대 제헌국회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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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연성(金演性)이 아들이다. 김병기(金秉氣)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의병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투쟁을 전개해 한말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려고 애썼다. 1910년(순종 4)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투쟁을 멈추지 않고 1913년 9월 의병장 임병찬(林炳瓚)·이인순(李寅淳)·전용규(田瑢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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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문신. 김병시(金炳始)[1832~1898]는 문호 개방과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이후 1895년 을미사변 등 우리나라 근대의 격동기에 정부의 중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온건과 보수의 길에 서서 개량주의를 지향하는 정치가로 일관하였다. 특히 갑신정변을 주도한 혁명 세력은 물론 온건 개화 세력 등과도 정치적으로 대립한 보수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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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정치인. 김종규(金宗奎)[1904~?]는 1904년 10월 21일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났다. 함흥고등보통학교 부설 사범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과를 중퇴하였다. 김종규는 일제 강점기 포천공립보통학교와 서울 효창공립보통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양주군수, 경기도 학무국 서무, 조사기획 과장과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 전무 이사와 한국인쇄주식회사 부사장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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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남일성(南一成)은 경기도 양주군 어등산면 사리[2003년 10월 19일 이전, 회천읍]에서 태어났다. 1908년 남일성은 정용대(鄭用大)의 휘하에 들어가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정용대는 스스로 창의좌군장(倡義左軍將)이라 칭하고, 경기도 적성·양주·풍덕·교하·통진 등지에서 수백여 명의 의병 부대를 통솔하여 일본군과 수차례에 걸쳐 전투를 이끌었던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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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시 봉양동 내촌마을에 있었던 야학당. ‘인재 양성과 농촌 계몽 운동의 실천’이라는 목표 아래 양주군 회천면 일대의 청년들을 교육하였다. 1929년 늦가을 남진희의 제의로 정귀현의 집에 개설된 야학방에 뜻 있는 동네 사람들이 후원하여 설립하게 되었다. 이후 1931년 5월 서울기독교청년회 총무인 버나드와 농촌 계몽 지도자 홍병선·김기창·황영수 등의 후원으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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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 지역에서 서화담(徐花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도술로 중을 제압한 서화담」은 도술로 유명한 서화담이 일본에서 온 중과 겨루는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완전히 제압했다는 신이담이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서경덕(徐敬德)[1489~1546]은 별호인 서화담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서화담은 황진이(黃眞伊),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로 불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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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는 도심지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개발 제한 구역[그린벨트]에 묶여 자연이 많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지역적 요인과 지역 경제 활성화와 농가 소득 확대를 위한 양주시의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양주 지역 농민들 스스로가 활로 개척에 대한 의지가 강해 농촌 체험 마을 사업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지방 자치 단체 중 한 곳이다. 그 결과 경기도 양주시에는 농촌 체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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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경기도 양주 출신 인물들. 1910년 불법적 한일 강제 합방이 이루어지고, 1910년에서 1920년대에 걸쳐 점차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이 잇따르면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조직화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이는 3·1 만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후에도 국내 및 국외에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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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 있는 회원제 골프장.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 주한 미군 가운데 일부가 시설이 좋지 않은 한국 골프장의 이용을 꺼려하면서 일본에 가서 골프를 치는 일이 많아지자 당시 주한 미군 부대가 있던 양주군 권역에 골프장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1969년 7월 1일 골프장 사업 승인이 이루어졌으며, 1972년 5월 1일 수려한 천보산 자락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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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는, 1919년 3·1 운동 때 만세 시위가 벌어졌던 터. 만세배미는 1919년 3·1 운동 당시 만세 시위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19년 3월 18일과 4월 3일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일제의 폭압적 탄압에 항거하는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만세 시위를 주도한 백남식(白南式), 이용화(李龍和), 김진성(金辰成)이 일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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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매곡리(梅谷里)는 매골·맹골·매곡이라고도 불리며, 땅 이름의 유래에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째, 높은 산 밑에 자리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둘째, 마을이 ‘매화가 떨어지는 모습[매화락지형(梅花落地形)]’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셋째, 마을이 매의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혹은 마을 북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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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에 있는 자연 마을. 마을 주위의 조그만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상이므로 뭍의 안쪽이라고 부르다가 뭇태안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서 계절풍을 막기 위해 마을 앞쪽으로 흙을 쌓고 그 위에 바람막이 나무를 심어서 방축(防築)이라고도 불리었다. 뭇태안이라는 이름은 1895년 일본이 제작한 군사 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에 처음 나오며, 일제 초기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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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7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미군이 경기도 양주를 포함하여 남한을 통치한 시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항복하면서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이 분할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38도선 이남에 대해서는 태평양 미육군총사령부 총사령관 맥아더가 1945년 9월 7일 ‘조선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사령부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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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무덤이 있는 대중 가수. 본명은 배신웅(裵信雄), 호적상 이름은 배만금. 예명이 배호(裵湖)이다. 아버지는 광복군 출신의 배국민이고, 어머니는 김금순(金錦順)이다. 여동생은 배명신(裵明信)이다. 외가 쪽이 음악가 집안으로, 둘째 외삼촌 김광옥은 일본 무사시노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윤이상과 함께 음악 활동을 하였으며, 북경심포니교향악단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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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일과 28일에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현 백석읍]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백석면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것은 구장인 안종규였다. 만세 운동이 농촌으로 확산되면서 구장[이장]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일제는 1914년 면제를 개편하면서 식민지행정 말단 기구로서 면제를 확립하였으나, 리 단위의 향촌 사회는 전통의 면리제의 질서를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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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보존 또는 증식의 가치가 있어 보호하고 있는 나무. 공식적으로 지정한 보호수는 번식이나 풍치 보존이나 학술 참고를 위해서 보호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즉 노목(老木)·거목(巨木)·희귀목(稀貴木) 중 보존 및 증식의 가치가 있는 명목(名木)·보목(寶木)·당산목(堂山木)·정자목(亭子木)·호안목(護岸木)·기형목(畸型木)·풍치목(風致木) 등을 보호수로 보고 있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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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과 산북동, 백석읍 방성리 일대에 있는 산. 불곡산(佛谷山)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서부터 등장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에는 불국산(佛國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는 불국산과 불곡산이라는 이름을 혼용하는데, 역사성이 있는 이름은 불국산일 것 같다. 불국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을 부처가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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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봉양동에 있는 자연 마을. 사괴(四槐)라는 지명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느티나무 네 그루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괴목(槐木), 즉 홰나무가 서식하는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옛날에 이곳에서 창호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창호지를 의미하는 사괴지(四塊紙)에서 따온 말이라는 설도 있다. 동두천지동(紙洞), 양주군 회천면 봉양리조휘동[종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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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행하고 있는 사진 촬영 활동 및 관련 예술. 사진은 19세기 초 프랑스 화가인 루이 쟈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진이 더욱 활성화된 것은 영국의 화학자 존 프레더릭 고더드에 의해서였다. 취급이 더욱 간편해지면서 사진은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사업으로 번창하게 되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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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플라스틱 필름 및 가방 전문 제조업체인 삼성플라스틱의 공장. 삼성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소재의 쇼핑백 및 폴리백을 전문으로 생산해 온 회사이다. 삼성플라스틱 양주공장은 플라스틱 제품 공정의 철저한 전문화와 끊임없는 신소재 개발로 최고 품질의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여 플라스틱 포장 문화에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인간 존중의 플라스틱 제품 문화 창조와 함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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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양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 지역민의 동조와 호응 속에서 무장 의병 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고장이다. 특히 임진강과 한남정맥의 전략적 지세와 활발한 의병 활동으로 1907년 전국의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13도 창의대진소를 결성하고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을 때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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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본관은 이천. 호는 월파(月坡). 아버지는 서화일(徐和日)이고, 어머니는 경주 이씨(慶州李氏)이다. 서민호(徐珉濠)[1903~1974]는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다. 1919년 반도목탁지(半島木鐸誌) 사건으로 6개월간 투옥되었으며, 보성중학교 3학년 때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일본에서 1923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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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목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 증조할아버지는 서종옥(徐宗玉)이고 할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내고 『고사신서(攷事新書)』를 쓴 서명응(徐命膺)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내고 『해동농서(海東農書)』를 쓴 서호수(徐浩修)이다. 외할아버지는 김덕균(金德均)이다. 부인은 송익상(宋翼庠)의 딸이다. 형은 서유본(徐有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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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석현리(石峴里)라는 땅 이름은 석현, 즉 돌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170년 전 이 마을의 문인들이 돌고개 근처에 앉아 마을의 이름을 정하고자 의논하였다. 이때 나무를 기준으로 삼자는 측과 돌을 기준으로 삼자는 측으로 나뉘어 논란이 있었다. 결국 돌이 나무보다 수명이 길다고 하여 돌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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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문자 기록이 없던 태초부터 발생하여, 문자 기술에는 의존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옛날이야기로, 신화(神話)와 전설(傳說), 민담(民譚)으로 분류된다. 신화는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로, 우주의 기원, 신이나 영웅의 사적(事績), 민족의 태고 때의 역사가 주된 내용이다. 전설은 민간에서 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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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송창근(宋昌根)[1888~?]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덕도리[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서 태어났으며, 묵은면 삼패상리[현 동두천시]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본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송창근이 23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88년으로 추측된다. 송창근은 양주군 묵은면 내묵은리의 한승교에게서 군자금 20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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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기산리에 있는 유스호스텔. 유스호스텔은 국제유스호스텔연맹(International Youth Hostel Federation)의 규약과 정신에 입각하여 설립된 청소년 수련 시설로 객실과 대강당 등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종합 연수 시설이다. 우리나라의 유스호스텔은 「민법」 제32조에 의거 1967년 4월 17일 사단법인 한국유스호스텔협회가 발족됨으로써 시작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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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민들이 이룩해 온 먹을거리의 형태와 특징. 한국의 식생활은 일반적으로 밥·국·김치가 기본 식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지역별 차이가 나타난다. 지역별로 생산되는 산물이 다르고, 지방색에 따라 조리법이나 종류가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양주 지역의 식생활은 지리적 특성상 서울·경기 지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바다와 멀리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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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신상학(愼相學)[1885~?]은 충청남도 면천군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현내면 곡촌에 이주하여 살았다. 일본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11년 당시 27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8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상학은 1910년 음력 2월 의병장 홍원유(洪元裕) 휘하에 들어가 총기로 무장하고 양주군·포천군·적성군 등지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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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감악산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절터. 양주시·파주시·연천군에 걸쳐 있는 감악산은 개성 송악산, 가평 화악산,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과 함께 경기 오악으로 꼽히는 높이 675m의 명산이다. 감색 바위산이라 감악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봉우리로는 임꺽정봉·장군봉 등이 있으며, 신암사(神岩寺)를 비롯하여 감악사(紺嶽寺)·운계사·범륜사·운림사 등이 있었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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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전후 및 6·25 전쟁 이후 발생하여 경기도 양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종교. 신종교는 기존의 역사가 오랜 제도 종교인 불교, 유교, 기독교 등과 달리 성립 시기가 오래지 않은 종교로서, 우리나라에서는 1900년 전후, 일제 강점기, 6·25 전쟁 후 등 주로 사회의 격변기에 발생되었다. 양주 지역에는 천도교, 원불교,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세계통일가정연합[통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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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정동에 있는 배관 제품 제조업체. 아세아유니온은 1965년부터 황동 배관 이음쇠류인 CM 어댑터, CF 어댑터, 티, 엘보, CM 유니온, CF 유니온 등 내구 수명 50년이 넘는 우수한 품질의 황동 이음쇠 제품을 생산·판매·수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8년 창업자인 박병우 회장이 기술 보국의 창업 이념으로 경성공업사를 세워 출발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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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석천(石泉). 일명 안관오(安冠五). 안중근(安重根)의 사촌 동생이다. 안경근(安敬根)[1896~1978]은 황해도 신천(信川) 출신으로 해삼위(海蔘威)[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박은식(朴殷植)·안정근(安定根)·신채호(申采浩)·이범윤(李範允) 등 애국지사들과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해삼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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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안배언(安拜言)은 1907년 10월 25일부터 박내병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면서 박내병의 지휘 아래 대일 무력 항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경기도 양주와 가평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벌인 두 차례 교전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08년 11월 12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을 선고 받고 고초를 겪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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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들이 조선 독립을 선언하자,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 구장(區長)이었던 안종규(安鍾奎)는 양주군 백석면에서도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안종규는 다수의 지역 주민들을 규합하여 3월 27일 형인 안종태(安鍾泰)와 함께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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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안종태(安鍾台)[1883~1920]는 서울 출신으로, 1919년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 살면서 동생인 이장 안종규(安鍾奎)와 함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7일 밤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기 위해 연곡리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일제로부터 독립해야만 살 수 있다”고 연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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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 있는 관광농원. 체험 농장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도시화의 급진전에 따른 자급자족적 먹거리 확보, 가족 나들이와 휴식, 생태 체험 등을 위해 설립이 늘어났다. 양명농원은 특히 양주시를 중심으로 청소년들의 생태 체험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양명농원은 약용 식물, 물, 환경 등을 주요 테마로 한 농촌 체험 활동과 자연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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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간행된 경기도 양주시의 근대사 관련 자료를 모아 놓은 단행본. 『양주 근대사 자료집』은 양주향토자료총서 제6집으로 발간된 양주 관련 근대사 자료집이다. 양주에서 일어난 의병 항쟁과 3·1 운동 등 민족 운동의 역사 및 양주의 근대사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2003년 1월 1일부터 2004년 6월까지 총 1년 6개월에 걸쳐 양주시와 양주시의회의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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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막걸리. 막걸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술로, 지역마다 나름의 특색을 지니며 다양한 종류로 생산되고 있다. 막걸리의 명칭은 농주(農酒), 탁주(濁酒), 제주(祭酒), 희주(喜酒) 등 다양하다. 옛날 가정에서는 고두밥에 누룩을 섞어 빚은 술을 오지 그릇 위에 걸고 채로 걸러 뿌옇고 텁텁하게 만들었는데, 이렇게 거르기 전에 용수를 박아서 떠내면 청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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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방동에 있는 양주 시립 혼성 합창단. 2003년 양주시에서는 양주시 승격과 함께 본격적으로 양주시를 대표하는 남녀 혼성 합창단을 재구성하였다. 이에 따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어 왔던 합창단이 본격적으로 다양한 음악을 전문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합창단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즉, 2007년 단원 전체에 대한 재 오디션을 통하여 음악학부 졸업 이상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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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와 자매결연이나 우호 결연을 맺은 외국의 도시 또는 지방 자치 단체. 양주시는 2008년 9월 9일 미국 버지니아주 헨라이코 카운티(Henrico County)와 자매결연 했으며, 2009년 8월 24일에는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藤枝市]와, 2010년 10월 8일에는 중국 산둥성 동영시(東營市)와 각각 우호 결연하였다. 헨라이코 카운티는 미국 동부 대서양 연안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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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 있는 막걸리 양조장. 막걸리는 우리나라 고유 술의 하나이다. 보통 빛깔이 흐리고 맛이 텁텁한데 그 이유는 그대로 걸러 짜 맑은 술을 떠내지 않기 때문이다. 양주의 막걸리는 불곡산 막걸리가 명성이 높으며 생쌀 막걸리는 최고의 쌀과 최고의 발효 기술로 만들어 일본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그러한 막걸리를 생산하는 회사가 바로 양주탁주약주제조로 구양주권인 의정부, 동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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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방동에 있는 양주시 관할 행정 기관. 2011년 현재 양주시는 매력적인 자족 도시를 비전(vision)으로 선포하고 교육 도시, 기업 도시, 문화 복지 도시를 전략 목표로 설정하였으며 ‘공무원의 생각이 바뀌어야 양주시가 변화한다’를 시정 방침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양주시의 상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도시 브랜드인 ‘아름다운 변화 양주’는 양주시의 미래 비전과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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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어둔동(於屯洞)이라는 땅 이름은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호명산(虎鳴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해지는 시각이 빨라 쉽게 어두워지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이 주둔했던 곳이라 하여 애둔지·왜둔치·왜벌이라고도 하며, 조선 시대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하여 와평동(瓦坪洞)·와평·왓벌이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어둔동의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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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어봉선(魚鳳善)[1891~?]은 경기도 양주군 석적면 덕도리[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본 측의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0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91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봉선은 1909년부터 의병장 윤인순(尹仁淳)·강기동(姜基東)·전성서(全聖西) 등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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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驛)과 관청에 지급된 토지. 교통의 중심지에 설치된 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지급된 전답을 역토(驛土), 지방이나 중앙 관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 관청에 지급된 토지를 관둔전(官屯田)이라 하며 이를 합하여 역둔토(驛屯土)라 한다. 『양주정간책(楊州井間冊)』에 의하면 조선 시대 양주에는 6개의 역토와 14개의 둔토(屯土)가 있었다. 양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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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헝겊에 콩이나 모래를 넣어 만든 오재미를 가지고 즐기는 놀이. 오재미는 콩이나 모래를 헝겊에 싸고 꿰맨 주머니로서 크기는 어린아이 주먹만 하였다. 오재미를 ‘콩주머니’ 혹은 ‘모래주머니’라고도 하였다. 주로 여자 아이들이 모여서 즐기는 오재미놀이는 혼자 혹은 두서너 명이 방안에서 할 수 있고, 야외에서 편을 짜서 할 수도 있다. 야외의 경우 오재미 던져 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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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명은 왕영종(王榮鍾)이며, 경기도 연천 출신이다. 왕회종(王會鍾)은 1905년 일제의 책동에 의하여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통분함을 금치 못하며 1906년 연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김진묵(金溱默)을 부장으로 50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적군과 유격전을 전개해 북으로 진격하여 혜산진(惠山鎭)까지 올라갔다. 1907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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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봉양동에 있는 혼합 석재 가로(街路) 시설물 및 레미콘 생산업체. 1960년대 초까지 전봇대는 대체로 벌목한 나무를 가공하여 세웠다. 전봇대용 목재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연환경을 파괴해야만 하였고, 이에 대신할 소재를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1964년에 설립된 삼원산업이 그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바로 콘크리트 전봇대의 개발이었으며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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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유재만(柳在萬)[1882~1964]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907년 9월 김연성(金演性) 의병 부대에 들어가 총검으로 무장한 40여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양주·연천 등지에서 적에 대항하여 싸우던 중 일본 헌병에 체포되었다. 1908년 10월 2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유형 3년형을 선고 받고 유배 생활을 하였다. 1964년 2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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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가묘와 송공비가 있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유종현(劉鍾鉉)[1897~1948]은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유종현은 1919년 3월 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편강렬(片康烈)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각 면의 동지들과 연락하여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고, 김각배(金珏培)·김경태(金景泰)·김영빈(金永彬)·김학원(金學源)·현건식(玄建植) 등과 함께 독립 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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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병구(尹炳球)[1880~1949]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윤병구는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며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교포들 간의 친목 단결과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기울어 가는 나라를 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1903년 8월 예수교 감리교도인 홍승하·박윤섭(朴允燮)·문홍섭·임치성·임형주·김정극·안정수·이교담 등과 함께 하와이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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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인 독립운동가. 윤원세(尹元世)[1890~1939]는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양주군 자둔면 금오리[현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에 거주하면서 천도교 양주교구장으로 이곳의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6년부터 천도교 의정부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천도교당 내에 야학당을 설치하여 생도들에게 일본 배척 사상을 고취시켰고 농촌 청소년과 부녀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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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관료이자 애국지사. 본관은 파평. 호는 운정(雲庭). 아버지는 윤희섭(尹熙燮)이다. 윤응섭(尹應燮)에게 입양되었다. 개항기 종합 잡지인 『조양보(朝陽報)』의 편집 겸 발행인인 심의성(沈宜性)은 사촌누이의 아들이고, 딸 윤정원(尹貞媛)은 한국 최초의 유럽 여자 유학생이다. 윤효정(尹孝定)[1858~1939]은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현 양주시 은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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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윷가락을 매개로 하여 말을 움직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 윷놀이는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 그것이 나타내는 형상을 통해 일정한 행로를 통과하도록 말[馬]을 놓아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척사(擲柶)놀이, 사희(柶戱), 척사희(擲柶戱) 등이라고도 한다. 4개의 윷가락을 던져 도, 개, 걸, 윷, 모 등이 나오면 그에 따라 29개로 구성된 말판 위 말을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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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음식을 조리 및 가공하여 파는 업체. 최근 양주시를 문화관광도시로 육성하면서 음식점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양주 지역의 음식점의 종류는 한식부터 일식, 중식, 양식 등 다양하고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한식점이 많다. 양주의 특산품이 한우이므로 한우 음식점이 대다수를 이룬다. 이중 양주 특산품인 양주골 한우 판매 지정 업체는 12군데이다. 또 다른 특산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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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경기도 양주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일으킨 국권 회복 운동. 의병 운동은 1894년 발발한 갑오 농민 운동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봉기한 이후 20여 년간 전개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과 투쟁의 강도가 강화되었다. 군대 해산 이전에는 이인영(李麟榮)·최익현(崔益鉉) 등 지방의 명망 있는 유생 의병장이 의병 운동을 주도하면서 반일 항전을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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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공산주의 운동가이자 정치가. 이강국(李康國)[1906~1955]은 경기도 양주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서울로 이주하였지만 집안이 몰락하여 충청남도 예산 등지의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하였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보성중학교에 특대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며, 1925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당시 『동아일보』에 그의 사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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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낙주(李洛周)[1896~1923]는 경기도 양주군 남면 신산리[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서 태어나서 1919년 당시 연천군 미산면 석장리[현 백학면 석장리]에 살았다. 1919년 3월 21일 장날에 모인 군중과 함께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장터에서 조우식(趙愚植)·정현수(鄭賢秀) 등과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이낙주는 면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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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의 국권을 침탈하면서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요하여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음을 절감한 이덕현(李德鉉)은 국권 회복 운동을 하고자 결심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헤이그 밀사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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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사범(李士範)[?~1943]은 1919년 3월 27일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에서 인근 주민 다수를 규합하여 김대현(金大鉉)·안종태(安鍾台)·안종규(安鍾奎)·조필선(趙弼善)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튿날인 3월 28일에도 안종규의 주도로 6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양주군 백석면 오산리 들판에 모여 백석면사무소까지 독립 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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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정치가·청년운동가·종교운동가.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계호(季皜), 호는 월남(月南). 아버지는 이희택(李羲宅)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1864년(고종 1) 강릉 유씨(江陵劉氏)와 결혼하였다. 이상재(李商在)[1850~1927]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는 전통 교육을 받았다. 1881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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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 고조할아버지는 모양군(牟陽君) 이직(李稙), 증조할아버지는 선사정(仙槎正) 이승손(李承孫), 할아버지는 신당령(神堂令) 이정(李禎)이며,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희검(李希儉)이다. 어머니는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아들은 이성구(李聖求)와 이민구(李敏求)이다. 이수광(李睟光)[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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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순승(李順承)[190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923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던 조용원(趙鏞元)과 결혼한 후 남편을 내조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군자금 모집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인천(仁川)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0일간 구류되었다. 1940년 6월 17일 한국 여성에게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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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이순재(李淳載)[1894~1944]는 1919년 당시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던 봉선사(奉先寺)의 승려였다. 1919년 3월 29일 김석로(金錫魯)·김성암(金星岩) 등과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조선독립단 임시 사무소 명의로 독립 시위에 대한 격문(檄文) 200여 매를 인쇄, 인근 주민들에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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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출신의 법조인. 본관은 전의. 아버지는 이상익이고 동생은 이웅섭이다. 아버지 이상익은 남면사무소에서 초대 남면장을 지냈다. 부인은 평택국민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권태옥(權泰玉)이며,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다. 이영섭(李英燮)[1919~2000]은 1919년 11월 5일 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아버지 이상익이 광주법원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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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양주목사를 지낸 문신. 이유인(李裕寅)은 1889년(고종 26) 12월부터 1891년(고종 28) 11월까지 양주목사를 지냈다. 1890년(고종 27) 익종[순조의 아들]의 비였던 신정왕후(神貞王后)가 승하하여 수릉(綏陵)[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소재]에 합장할 때 공사를 잘 마무리한 공으로 품계가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올라갔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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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이은찬(李殷贊)·이언찬(李諺瓚)·이헌찬(李憲瓚)이라고도 한다. 종실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석하이고 동생은 이은호이다. 이은찬(李殷瓚)[1878~1909]은 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현 원주시 판부면]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을 공부하던 유생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경상북도 문경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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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혁(李載赫)은 경기도 양주[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밤 이달용이 주도한 양주군 화도면의 마석모루[磨石隅][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재혁은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마석모루에 있는 헌병 주재소 앞에서 같은 날 아침 체포된 이승보(李承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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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기도 양주 출신의 여성 교육자.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해석(李海石)이고, 오빠는 죽산군수를 역임한 이원상(李源商)이다. 이정숙(李貞淑)[1858~1935]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471번지[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서 태어났다.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16세 때 신정왕후(神貞王后)의 조카인 조영하(趙寧夏)와 혼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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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목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약(仲約), 호는 각리(角里). 정종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경직(李景稷)이고, 할아버지는 이정영(李正英)이며, 아버지는 이대성(李大成)이다. 어머니는 홍만용(洪萬容)의 딸이다. 형은 이진유(李眞儒)이다. 아들은 서예로 이름을 떨친 이광사(李匡師)이다. 증조할아버지 이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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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덕정동에 있는 음향 및 영상 관련 전자 제품 제조업체. 현대 사회에서 음향, 영상, 통신은 컴퓨터, 인터넷, 어쿠스틱 음향 등이 발달하면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한 하나의 제품만이 아니라 이를 시스템화하고 설비를 갖춰 가장 좋은 소리와 영상을 전달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터엠은 바로 이러한 음향, 영상, 통신 관련 제품과 시스템 설비를 집중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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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풍천(豊川). 호는 추정(秋汀). 부인은 본관이 제안(濟安). 호는 추계(秋溪). 황석청(黃錫淸)의 딸로, 경성가정여숙(京城家庭女塾)[현 중앙여자중학교·중앙여자고등학교]을 설립한 황신덕(黃信德)[1898~1984]이다. 황신덕은 1962년 문화 훈장 대통령장을 수훈하였다. 자녀는 1남 1녀를 두었다. 임봉순(任鳳淳)[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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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 크게 동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일본과의 교역을 단절하여 임진왜란 직전에는 양국간의 교섭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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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7년 동안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전쟁을 가리킨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를 포함시켜 말한다. 우리 민족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던 임진왜란이라 하면, 단연 이순신(李舜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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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복합 예술 문화 공간. 1984년 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으로 설립된 토탈미술관이 2002년 12월 예술가 국제 레지던스 운영을 목표로 지하 1층, 지상 10층의 토탈스튜디오시티(Total Studio City)의 조성을 추진하던 중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05년 4월 가나아트센터의 토탈미술관 사업권을 아트파크가 넘겨받아 별도 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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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8일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경기도 양주 지역은 의병 운동의 전통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국권 회복을 위한 주민들의 역사적 인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점차 격렬하게 확산되고 있던 서울의 3·1 운동 소식이 전해지고,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1919년 3·1 운동 초기부터 만세 운동에 대한 사발통문이 나도는 등 독립 만세의 기운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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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사회운동가이자 정치가. 본관은 상주(尙州). 호는 우촌(牛村). 아버지는 전경준(錢京俊)이고, 어머니는 박성악(朴城岳)이다. 전진한(錢鎭漢)[1901~1972]은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1915년 고향에서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월반하여 1917년 4학년 때 서울로 올라갔다. 하숙집 사환과 학교 급사 등의 일을 하고, 김성수(金性洙)와 송진우(宋鎭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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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범(重凡), 호는 의암(毅庵). 양촌공파(陽村公派) 21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의병 정인태(鄭寅泰)이며, 아버지는 정두환(鄭斗煥)이다. 어머니는 풍천 임씨(豊川任氏)이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정용대(鄭用大)[1882~1910]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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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구암리에 있는 동관 이음쇠 제조업체. 1979년 2월 부광금속으로 설립되어 1983년 3월 정우금속공업사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86년 12월 다시 정우금속공업으로 법인을 전환했으며, 1987년 4월에 정우센터를 흡수·합병하였다. 1998년 1월 수출 라인의 공장 증축 및 기계 시설을 완공했으며, 2008년 11월 경기도 양주시 남면으로 공장 확장 이전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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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정치사상가.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조용은(趙鏞殷), 자는 경중(敬仲), 호는 소앙(素昻), 별호는 아은(亞隱)·소해(嘯海)·한살임(韓薩任)·아나가위후인(阿那伽餧後人).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 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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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순옥(趙順玉)[1923~1973]은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광복군 총사령부가 창립되자 오광심(吳光心)·김정숙(金貞淑)·지복영(池復榮) 등과 함께 여군으로 입대하여, 1940년 10월부터 1942년 3월까지 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에서 복무하였다. 1942년 4월에는 광복군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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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조용원(趙鏞元), 호는 호일(胡逸).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조용한(趙鏞漢)이고, 누나는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시원(趙時元)[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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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1420~1489]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이고, 남동생은 조용한(趙鏞漢)·조용원(趙鏞元)이며,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용주(趙鏞周)[1889~1937]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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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구심(求心).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남동생은 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조용한(趙鏞漢)·조용원(趙鏞元)이고,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용하(趙鏞夏)[1882~1937]는 경기도 양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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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이고 남동생은 조용원(趙鏞元),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용한(趙鏞漢)[1894~1935]은 경기도 양주군 남면 황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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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조선인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개되었다. 3월 27일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서도 안종규(安鍾奎)·안종태(安鍾台)·김대현(金大鉉)·이사범(李士範) 등이 주도한 만세 시위가 일어났는데, 당시 농사를 짓던 조필선(趙弼善)도 함께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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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한명(趙漢明)[1892~?]은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182번지에서 태어났다. 1920년 8월 상해 임시 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회원인 허병률(許秉律), 박용선(朴容善) 및 조선식산은행 서기로 근무하는 이동찬(李東粲) 등과 상해 임시 정부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기로 하고, 권총과 탄환을 휴대하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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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종교인.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중(子中), 호는 월당(月塘). 아버지는 행연서도찰방(行延曙都察謗) 최영오(崔永五)이며, 친아버지는 행용양위부사과(行龍驤衛副司果) 최영칠(崔永七)이다. 부인 김씨는 일찍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이름을 ‘주신을 믿는다’는 의미의 김주신(金主信)으로 바꿨다고 한다. 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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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추삼만(秋三萬)[1880~1910]은 경기도 양주군 회암면[현 양주시 회암동] 출신으로, 이담면 하봉암리[현 동두천시 하봉암동]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요하여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분노한 추삼만은 같은 해 8월 황재호(黃在浩) 의병 부대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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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맹(趙孟)을 시조로 하고 양주의 옛 지명인 풍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풍양(豊壤)은 경기도 양주[현 남양주시]의 옛 지명이다. 풍양 조씨의 시조는 조맹으로, 고려의 개국 공신이고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냈다. 조맹은 『풍양조씨세보(豊壤趙氏世譜)』에 따르면 원래 이름이 조암(趙巖)인데, 후삼국 시대에 한양부 풍양현[남양주시 진건면 송능리] 사람으로 천마산 아래에서 은거하다가 왕건(王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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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경기도 양주 해유령에서 왜적을 상대로 벌인 전투. 16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 크게 동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일본과의 교역을 단절하여 임진왜란 직전에는 양국 간의 교섭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일본은 오랜 내란을 끝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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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형(季馨), 호는 왕산(旺山).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4형제 중 막내로, 형은 허훈(許薰)[1990년 애국장 추서]·허신(許藎)·허겸(許兼)[1991년 애국장 추서]이다. 자녀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허학·허영·허준·허국이다. 허위(許蔿)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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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사회주의 운동가·정치가. 호는 한산(韓山)·일강(一剛)·일광(一光)·소앙(笑仰). 일명 유포심(劉怖深)·진덕삼(陳德三)·이극화(李克和)·김지강(金志綱)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유생 홍순석이다. 홍남표(洪南杓)[1888~1950]는 경기도 양주의 빈농가에서 태어났다. 1907년 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하자 아버지 홍순석은 망국의 한을 품고 음독자살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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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에 있는 자연 마을. 홍복(洪福)은 큰 복을 받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95년 일본이 제작한 군사 지도[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에 홍북(弘北)이라고 나와 있으나, 일제 초기의 문헌인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에는 백석면의 홍복리(弘福里)로 소개되어 있다. 홍복이라는 명칭은 2011년 현재도 사용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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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호는 양송(楊松). 아버지는 홍재선(洪在宣)이다. 홍종헌(洪鍾憲)[1867~1919]은 천도교인으로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출신이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1905년 이후 동학에 들어가 양주 접주로 활동하였다. 이때를 전후하여 의병이 되어 항일 의병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낙향한 후에는 의병 지원 사업을 전개하여 화승총과 화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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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생산되는 화훼. 경기도 양주시에는 양주화훼단지를 비롯해 양주화원, 늘봄화원 등 대략 100여 개가 넘는 화훼 업체가 있다. 양주 지역에서 재배되는 화훼는 시설 재배지의 환경을 개선하여 작목에 맞는 최적의 환경에서 꽃을 재배하여 꽃 색깔이 밝고 진하며, 잎과 줄기가 튼튼하여 병충해가 적다는 특징이 있다. 주로 생산되는 작물은 장미, 시클라멘, 심비디움, 호접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