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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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敎 |
영어의미역 | Buddhism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집필자 | 이효걸 |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개설]
불교라는 말은 석가모니인 부처가 설한 교법이라는 뜻과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교·이슬람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인 불교는 석가 생전에 이미 교단(敎團)이 조직되어 포교가 시작되었으나 교세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은 이후이다. 기원 전후로 인도와 스리랑카 등지로 전파되었으며 서역(西域)과 중국을 거쳐 한국에도 전파되었다.
한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당시 고구려가 받아들인 불교는 주로 전진(前秦)을 비롯한 북방 중국의 불교였으며, 백제가 받아들인 불교는 주로 동진(東晉)을 비롯한 중국 남방의 불교였다. 그리고 신라의 경우는 처음에는 고구려로부터, 그 이후로는 백제와 중국의 남조·수나라·당나라 등지에서도 전래되었다. 이렇게 수용된 불교는 한국의 고대 신앙이나 고유 습속 등 전래의 문화와 잘 융화되어 민족문화의 훌륭한 모체 역할을 담당하였다. 안동 지역의 불교를 역사적인 전개 과정과 함께 주요 불교문화재와 전통사찰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변천]
구한말 이전까지 안동 지역 불교의 역사적 전개 과정은 삼국시대인 5~6세기의 유입 경로상의 안동불교, 6세기~9세기의 화엄종 토착화 시기의 안동불교, 나말여초시기인 10~11세기의 미륵신앙 토착화 시기의 안동불교, 고려 중기~조선 초기인 12~15세기의 고려 화엄종 영향 아래의 안동불교, 성리학 중심지 시기인 16~20세기의 위축된 안동불교 등 대략 다섯 시기로 대별하여 살펴볼 수 있다.
1. 유입 경로상의 안동불교(5~6세기 전반)
삼국시대인 5~6세기 안동 지역은 고구려 문화가 신라로 전파되는 경로 상에 있기 때문에 신라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전에 미약한 형태로나마 불교가 먼저 알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 문화가 신라로 유입되는 경로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신라의 공인 이전에 안동 지역에 불교가 먼저 전해진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으나 실제로 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5세기 후반 혹은 6세기 초반에 이미 이 지역에 상당한 수준의 불교가 전해진 것으로 짐작된다.
2. 화엄종 토착화 시기의 안동불교(7~9세기)
6세기 전반 불교를 공인한 신라가 6세기 후반에 이르러 한강 유역과 원산만 일대까지 세력을 확장하게 되면서 안동 지역은 신라의 변방이 아닌 신라의 수도인 경주 문화의 확실한 영향권 아래 들어오게 된다. 이 시기부터 어느 정도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지역의 지배 세력도 신라의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에 편입되어 중앙문화의 안동 지역 전파에 첨병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 나타나는 불교유물은 지역적 특수성이 약화되어 있으며 예술성과 기술 수준도 지역의 독자적 능력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당시 안동 지역이 경주 문화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7세기 중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8세기를 전후하여 안동 지역은 당나라의 최신 불교문화와 사상이 토착화되는 단계를 거치면서 독특한 불교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안동 지역의 불교를 말할 때 매우 중요한 사실은 8세기를 전후하여 당나라의 최신 문화와 사상이 이 지역에서 토착화되는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최신 불교사상인 화엄종에 기반한 의상의 신불교운동이 영주 부석사를 중심으로 안동 지역의 봉정사, 법흥사, 법림사, 법상사, 법룡사 등으로 직접 확산되면서 새로운 불교문화로 정착되었던 것이다. 특히 당시에 조성된 대부분의 사찰에 전탑이 있는 것도 당나라 초기에 거의 일반화된 양식인 전탑이 의상에 의해 수입되어 이 지역에서 실험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의상이 그 당시로서는 최신 사상인 화엄종을 수도인 경주가 아닌 영주 부석사를 구심점으로 자리잡게 됨으로써 당나라의 신불교사상 및 문화도 이 지역으로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 및 문화가 가감 없이 그대로 수용된 것이 아니라 의상에 의해 정토신앙과 융합한한국적 변용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갔기 때문에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의상 화엄종은 그 구심점인 영주 부석사에서 비롯되어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인근의 안동 지역이 확산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안동의 법흥사, 법립사, 법룡사, 법상사 등은 그때의 화엄종 사찰로 창건되었다.
3. 나말여초 미륵신앙 토착화 시기의 안동불교(10~11세기)
신라 붕괴와 고려 건국 과정에서 안동은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지역이 되었다. 즉 고려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의 안동전투에서 안동 지역 호족들의 지원을 받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후삼국의 통일전쟁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계기를 안동 지역이 마련해준 것이다. 이와 같이 안동 지역이 고려의 건국에 일익을 담당하면서 지역적으로는 고려의 변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문화에서 고려문화로의 불교문화의 변화를 선도하는 중요한 과도기적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이 될 수 있었다.
당시 안동 지역이 그러한 문화 변화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한 흔적들은 거의 없어졌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제비원 미륵불을 들 수 있다. 대략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제비원 미륵불은 신라문화에서 고려문화로 넘어가는 과도기 불교문화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자연거석을 그대로 불타의 모습으로 보고자 하는 고려 미륵신앙의 특징을 잘 드러내주면서도 입체상으로 표현된 모습은 신라예술의 조형적 완성도가 여전히 살아 있어 신라의 예술 기법과 고려의 표현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또한 제비원 미륵불은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신앙 계층의 변화도 내포하고 있다.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 사이의 정치적 변동과 맞물려 미륵신앙을 주도하는 계층이 소수 지배 계층에서 다수 민중 계층으로 넘어오게 됨에 따라 미륵신앙도 점차로 토착신앙과 결합되면서 토착화되기 시작하였다.
신라 말기에 이르러 지배층의 와해와 더불어 화엄종을 위주로 한 교종 세력도 약화되면서 고려 건국의 주체 세력이 된 새로운 지배층은 교종에 갈음하여 선종을 배경으로 그들의 입지를 굳혀갔다. 그러나 하층민들의 경우 개인적 각성을 중요시하는 선종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종교성이 강한 미륵신앙에 새로운 희망을 걸었으며 그에 부응하여 당시의 미륵신앙도 토착화되어 나갔던 것이다.
이와 같이 10세기 경 고려 건국의 복잡한 정세를 타고 변모하는 안동 지역의 불교를 반영하는 제비원 미륵불은토착적 민중불교의 성격을 가지는 고려시대의 미륵신앙을 형성하는 이정표 역할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4. 고려 중기~조선 초기 고려 화엄종 영향 아래의 안동불교(12~15세기)
고려 중기에서 조선 초까지 안동 지역의 불교에서는 뚜렷한 특색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지역의 지배 세력이 고려 왕실의 지지 세력이었다는 점과 전통적으로 화엄종 근거지였다는 사실을 통해 안동 지역 불교의 일반적 흐름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즉 안동 지역의 유력자들이 고려 왕실의 지방 지지 세력이었으므로 고려의 왕실불교 혹은 귀족불교가 많이 유포되었을 것이라는 점과 안동 지역이 전통적으로 화엄종 근거지였다는 사실이 민중불교의 토착화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하게 진전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중기에 부석사가 고려 화엄종의 본산 역할을 수행하였고 따라서 인근의 안동 지역 역시 고려 화엄종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려 화엄종은 이전의 의상의 화엄종과는 달리 보조 사상의 기치 아래 선종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보조의 교선일치에 들어있는 교(敎)의 정점이 바로 화엄종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 안동불교의 성격은 교선일치를 추구하는 불교사상 이었고 결국 당시의 안동 지역은 고려 화엄종의 경향을 좇는 불교 세력의 중요한 활동 근거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후반기 무신정권의 붕괴와 더불어 고려가 원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자 고려불교도 원나라의 불교인 라마불교의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 당시 라마불교의 요소는 매우 이질적인 것이었지만 고려의 불탑이나 불상 등 고려의 불교예술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안동불교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안동 지역이 고려 화엄종의 주 활동무대였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실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안동 지역의 불교유적에서 원나라 라마불교의 요소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11세기에 한국에 소개되고 13세기 경에 널리 퍼진 밀교 계통의 『대승장엄경』의 육자진언과 성음구제사상이 대웅전 내단청에 충실히 반영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통일 초기 의상의 정토론적 화엄종과 다른 밀교적 화엄사상이 고려 말기에 이 지역에도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말 원의 지배가 종식될 무렵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안동에 머무르다 가게 되면서 안동 지역의 불교는 많은 특별 지원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로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극락전을 비롯한 봉정사 유적은 그때 보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부석사 무량수전의 현판이 공민왕 친필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은 당시 공민왕이 부석사를 비롯한 이 지역의 불교에 많은 지원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5. 성리학 중심지 시기의 위축된 안동불교(16~20세기)
조선시대 중반 이후 안동 지역은 유교사회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유학적 이상주의자들을 끊임없이 배출했으며 이들이 자신의 이념을 다지고 확대 재생산하는 조선 유학정신의 고향이자 성리학 근본주의자들의 본거지였다. 따라서 당시 성리학 근본주의의 중심지가 된 안동 지역에서는 다른 사상이 더 이상 발을 붙일 여지가 없어지게 되면서 안동 지역의 불교도 자연 약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던 안동불교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폄하되기에 이르렀다.
[현황]
1. 주요 불교문화재
안동 지역의 주요 불교문화재로는 봉정사 극락전(鳳停寺 極樂殿, 국보 제15호), 봉정사 대웅전(보물 제55호), 봉정사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봉정사 고금당(鳳停寺古今堂, 보물 제449호), 개목사 원통전(開目寺 圓通殿, 보물 제242호),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新世洞 七層塼塔, 국보 제16호),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보물 제56호), 안동 옥동 삼층석탑(보물 제114호), 안동 이천동 삼층석탑, 안기동 석불좌상(보물 제58호), 안동 이천동 석불상(보물 제115호),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옥산사지 마애불좌상, 마애석조비로자나불좌상, 안동 조탑동 오층전탑(보물 제57호), 안동 대사동 모전석탑, 나소동 삼층석탑, 임하동 십이지 삼층석탑, 안동 하리동 모전삼층석탑 등을 들 수 있다.
2. 주요 전통사찰
안동 지역의 주요 전통사찰로는 봉정사, 개목사, 광흥사, 용담사, 일출사, 연미사, 서악사, 석수암, 영봉사, 유하사, 봉서사, 석탑사, 모운사, 선찰사, 옥산사 등을 들 수 있으며 이중 태고종 옥산사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