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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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시민의 단합을 목적으로 만든 합창 가요. 「양주 시민의 노래」는 1980년 말 제정에 착수하여 1981년 초에 완성되었다. 이 시기는 구리읍, 미금읍, 진접면 등 8개 읍면이 남양주군으로 분리[1980. 4. 1]되고 동두천시의 분리[1981. 7. 1]가 추진되던 때였다. 양주가 분리되기 이전에는 남양주, 동두천이 양주의 관할 구역이었기 때문에 “북으로 소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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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는 청동기 및 삼국 시대의 유물 산포지. 가납리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 도락산 보루가 있는 해발 327m 봉우리 주변에 있다. 가납리 유물 산포지는 양주군의 요청에 따라 1997년 12월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의 발굴 조사 사업에서 발굴되었다. 1998년 9월 30일 조사가 완료된 후 『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간행하였다. 가납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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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8일과 4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경기도 양주는 의병의 전통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주민들의 역사적 인식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특히 추교시장[현 가래비시장]은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통 시장으로 많은 사람이 운집하고 각종 문물이 집결하는 곳이다. 따라서 점차 격렬하게 확산되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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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는 가래비 3·1 만세 운동 기념비. 가래비 3·1운동기념비는 1919년 3월 28일 만세배미에서 일어난 가래비 3·1 만세 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986년 3·1절 기념식 시위에 동참하였던 당시 양주군 광적면 출신 백인현의 발의로 기념비 건립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고, 조태훈이 위원장을 맡았다. 기념비 건립 추진 과정에서는 광적면장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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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한산리에 있는 정보화마을. 2001년부터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농림부, 정보통신부 등과 함께 정보화마을 조성 사업을 추진하였다. 정보화마을 조성 사업은 농촌, 어촌, 산촌 등 정보화 시대에 소외된 지역에 인터넷 이용 환경을 조성하고 전자 상거래 등 정보 콘텐츠를 구축하여 정보 생활화를 유도하는 동시에 실질적인 수익 창출 구조를 만들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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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의 시화(市花). 풍요와 영광을 지향하는 개나리는 새 양주의 기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벌레도 별로 없이 수수하게 잘 자란다. 개나리가 언제부터 양주시의 시화로 지정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서울·부산·대구 등의 대도회지에서 1970~1972년에 시화를 지정한 것으로 유추하면 양주시에서도 1970년대에 지정하였으리라 추정된다.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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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하는 고려 시대의 행정 구역. 본래 고구려의 매성군(買省郡)이었던 견주(見州)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대 내소군(來蘇郡)으로 편제되었다가 898년 전후에 견주로 불리게 되었다. 이때 왕건(王建)이 양주와 견주를 쳐서 복속시켰기 때문이다. 고려 건국 후 견주는 개경 인근이자 양주 경계 내에 있던 곳으로, 정치·경제적인 중요성을 띤 행정 구역으로 편제되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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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양주군에 있던 내수사(內需司)의 장토 현황을 기록한 토지 대장. 「경기도 양주군 소재 내수사 장토 사검 개타 양안(京畿道楊州郡所在內需司庄土査檢改打量案)」은 1905년(고종 42) 2월 경기도 양주군에서 백석면·광석면 등에 있는 내수사의 장토(庄土)를 측량해 중앙에 보고한 토지 대장이다. 보고자는 양주군수인 홍태윤(洪泰潤)이고, 검사자는 현상국(玄相國)이었다. 현재 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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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양주시에는 2011년 6월 현재 남면 신산리에 위치한 남문고등학교, 고암동에 위치한 덕정고등학교, 덕계동에 위치한 덕계고등학교, 백석읍 오산리에 위치한 양주백석고등학교, 삼숭동에 위치한 삼숭고등학교, 만송동에 위치한 덕현고등학교 등 총 6개 고등학교가 있다. 1999년 덕정고등학교가 개교하기 전까지 양주시 지역의 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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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3동에 속하는 법정동. 고암동(古岩洞)이라는 땅 이름은 고장리(高障里)에서 ‘고’자와 옹암동(甕岩洞)에서 ‘암’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장리는 고장산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옹암동은 독바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고암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공교롭게도 이 마을의 대표적인 두 산봉우리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고암동의 옛 명칭은 고암리였다. 고암리라는 땅 이름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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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고암동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고암동 주원들마을을 지나는 도로변 경작지 일대에 있다. 고암동 유물 산포지 관련 조사는 1997년 12월 양주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시행한 발굴 조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1998년 9월 30일까지 발굴 조사를 마쳤으며, 조사 보고서인 『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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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2동에 속하는 법정동. 고읍동(古邑洞)이라는 이름은 조선 초기에 양주의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고읍(古邑)·구읍(舊邑)·고읍내(古邑內)·구읍내(舊邑內)라고도 하였다. 고읍동의 옛이름은 고읍리였다. 고려 시대에는 견주(見州)라는 독립적인 행정 구역의 치소가 있었으며, 1397년(태조 6)에는 양주의 부치(府治)가 동촌 대동리[현 서울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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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1397년(태조 6) 수도 한양이 만들어지면서 원래 한양[옛 명칭 양주]에 살던 사람들을 동촌 대동리로 이주시켰다가, 다시 대동리에서 지금의 양주시 고읍동에 있었던 고려 시대 견주의 읍치로 이전되면서 주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연산군 때 양주목이 폐치되었다가 1506년(중종 1) 양주목의 읍치가 지금의 양주시 유양동으로 이전되면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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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군 구리읍 교문3리[현 구리시 교문3동]에서 곰보를 소재로 하여 부르는 유희요. 「곰보 타령」은 옛 양주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경기민요 중 휘모리 잡가의 하나로서 곰보 얼굴을 한 중의 모습을 과장하여 해학적으로 비유한 가사로 되어 있는 가창 유희요이다. 휘모리 잡가는 서울, 경기 지방의 소리꾼들이 12잡가와 선소리를 부르고 나서 부르던 빠른 장단의 노래로, 해학적인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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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의 공적 이익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 공공 기관은 공공 행정을 담당하거나 공공 서비스 또는 공공 재화의 생산을 담당하는 공조직으로, 관공서로 통칭되는 국가 기관이나 지방 자치 단체, 공법인으로 분류되는 정부 투자 기관, 특수 법인, 그리고 각 급 학교를 포함한다. 「공공 기관의 개인 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공공 기관은 국가 행정 기관, 지방 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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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2동에 속하는 법정동. 광사동(廣沙洞)이라는 땅 이름은 광암리(廣岩里)에서 ‘광’자와 삽사동(揷沙洞)에서 ‘사’자를 따서 합한 이름이다. 광암리는 넓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삽사동은 마을 곳곳마다 모래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사동의 옛 명칭은 광사리였다. 광사리라는 땅 이름은 일제 초기에 처음 사용되었다. 이곳은 고주내면 광암리·삽사동·고읍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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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광석면(廣石面)은 너른 들판이라는 뜻의 ‘너븐들’을 그대로 한자로 써서 ‘넓다’는 뜻의 ‘광(廣)’자와 들판을 뜻하는 들의 와전인 돌의 한자어 ‘석(石)’자를 합하여 광석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광석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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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식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양주 지역의 교육을 주요 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의 근대와 해방 이후의 현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식 한학 교육을 지양하고 계몽 교육을 추구한 양주 지역의 근대 교육 기관으로는 강습소, 야학, 공립 보통학교 등이 있었으며, 이들 기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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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자연 마을. 지명 유래에 몇 가지 설이 있다. 만석지기 아홉 명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며 마을이 흡사 거북이의 머리, 등, 꼬리와 같은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한편에선 일제가 원래의 이름을 한자로 옮기면서 발음을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구만리라는 지명은 이미 19세기 말에 제작된 일본 군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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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가 23부, 336군으로 개편되었다. 신관제(新官制)에 의한 23부제가 1895년 6월 23일에 시행됨에 따라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었다. 한성부에 소속된 군은 양주 이외에 한성·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 등 11개 군이 더 있었다. 23부제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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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실시되었던 근대식 교육. 구식 한학 교육을 지양하고 근대 계몽 교육을 추구한 양주 지역의 근대 교육 기관으로는 강습소·야학·공립 보통학교 등이 있었으며, 양주 지역 각 면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1920년대 일제 식민지 정책이 기만적인 문화 통치로 방향을 선회한 뒤 지방 유림들은 향교를 중심으로 하여 강습소를 설립한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고조된 민족 교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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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기산리(基山里)는 기곡리(基谷里), 내고령리(內古靈里), 중산리(中山里)가 합해지면서 기곡리의 ‘기’자와 중산리의 ‘산’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기곡리는 사람들이 산속 골짜기에 들어와 터를 잡았다는 뜻의 터골에서 유래하였고, 중산리는 산속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산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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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호는 노은(蘆隱). 서도(瑞道)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김영선(金永先)이다. 김규식(金奎植)[1882~1931]은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1907년 당시에는 경성부 동서 돈암현[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 살았다. 대한제국 시위대부교(侍衛隊副校)·육군연성학교(陸軍硏成學校)의 조교로 있었다. 1907년 6월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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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출신의 정치인. 김덕열(金德烈)[1910~?]은 1910년 9월 2일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현 양주시 유양동]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법학과와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청 관재처 감찰관과 양주군 주내면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국회 의원 선거에서 양주군 갑구에 출마하여 초대 제헌국회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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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의 시조(市鳥)로, 참새목 까마귓과 까치속에 속하는 새. 까치는 예부터 행운과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새로 전해져 왔다. 1970년대 양주군은 시민의 화합과 안정 속에서 활기차게 번영을 위해 약진하자는 의미에서 까치를 군조로 지정하였고, 2003년 10월 19일 양주시로 승격된 이후에도 까치를 시조로 지정하였다. 원래 까치는 낮은 평지의 도시와 시골 주변에 서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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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뒷들 동쪽에 있는 자연 마을. 나리골은 산기슭에 날아갈 것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마을의 양쪽에 나지막한 산자락이 펼쳐져 있어 마치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펼쳐 감싸 안은 모습이라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여겨진다. 한자로는 비동(飛洞)이라 한다. 이밖에 등골에서 내려다보여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과 옛날에 벼슬한 나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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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행정면이자 법정면. 남면(南面)이라는 땅 이름은 감악산 남쪽에 있는 지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남면의 출발은 파주 적성군에서 시작하였으므로 남면이라는 땅 이름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양주로 편입된 이후에는 양주 지역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남면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외부 사람들은 양주시에서 북쪽에 위치하는데도 남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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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는 남면 관할 행정 기관. 남면사무소는 경기도 양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백석읍], 4개 면[은현면·남면·광적면·장흥면], 6개 동[양주1동·양주2동·회천1동·회천2동·회천3동·회천4동] 중 남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남면사무소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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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법정동. 남방동(南坊洞)이라는 땅 이름은 읍내면에서 남쪽 끝에 위치한 마을로 방축, 즉 산성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신성(新城)에서 남방의 침략을 방어하던 곳이라 하여 원래 남방리(南防里)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남방리(南坊里)로 와전된 것이라고도 한다. 남방동의 옛 이름은 남방리였다. 남방리라는 이름은 18세기 후반의 문헌인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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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에 있는 자연 마을. 냅대란 땅 이름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가 주변에 대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이곳에서 싸우다가 냅다 도망쳤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흐르는 냇물을 뜻하는 ‘천(川)’자와 대나무 ‘죽(竹)’자를 합쳐서 천죽이라고도 부른다. 일제 초기의 문헌인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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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자연 마을. 당챙이는 ‘당청(堂廳)’의 발음이 변한 것으로, 당청리(唐淸里), 당청이, 당청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에 관리, 특히 내관(內官)이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서 대대로 큰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일설에는 당청(唐淸), 즉 당(唐)나라 사람을 초빙해 궁술을 연마하던 곳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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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불곡산 자락 남향에 위치하는 유양동(維楊洞) 일대가 정치 행정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조선 중종 때부터이다. 그 이전 양주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은 지금의 천보산(天寶山) 자락을 배경으로 한 고읍동 일대였다. 이는 조선 중기 양주의 중심지가 바뀌는 사태가 벌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런 선택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연산군 시대가 있었다. 연산군은 왕실 공식 수렵장으로서 강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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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두곡리에 있는 자연 마을. 대추말은 대추나무가 많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슷한 이름인 대춘말이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으며 남면 두곡리의 대추말과 낮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접해 있다. 이 일대에 대추나무가 많이 서식함을 알 수 있다. 한자로 대조동(大棗洞)이라고도 한다. 대추말의 형성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 적성군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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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2동에 속하는 법정동. 덕계동(德溪洞)이라는 땅 이름은 도덕리(道德里)에서 ‘덕’자와 돈계리(遯溪里)에서 ‘계’자를 따서 만들었다. 도덕리는 도덕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돈계리는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박율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덕계동의 옛 명칭은 덕계리였다. 덕계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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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유물 산포지. 덕계동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덕계동에 있는 고장산 정상부 보루 주변에 있다. 1997년 12월 양주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작하였고, 1998년 9월 30일까지 조사를 마쳤다. 덕계동 유물 산포지에서는 삼국 시대 격자문이 타날된 토기 조각 및 회색 경질 토기 조각 등이 수습되었다. 덕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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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도리(德道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로부터 도덕을 잘 지키고 이웃 간에 우애가 깊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점미산 뒤쪽이므로 덕뒤·덕디라 하다가 덕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덕도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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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 산포지. 덕도리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광적면 덕도리에 있는 해발 257m의 점미산 정상부 동쪽 사면에 있다. 덕도리 유물 산포지는 1997년 12월 양주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작하였고, 1998년 9월 30일까지 조사를 마쳤다. 덕도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적갈색 무문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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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덕정동에 있는 시립 도서관. 덕정도서관은 1994년 개관하여 대표적 지식정보센터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체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양주시 최초의 공공 도서관이다. 덕정도서관은 21세기 지식 정보 사회에 부응하여 도서관의 기본 기능인 인쇄 자료 수집, 정리, 보존, 열람 뿐 아니라 고품질 디지털 콘텐츠 열람 환경 구축을 통한 다양한 지식·정보·문화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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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1동과 회천3동에 속하는 법정동. 다른 지역들의 땅 이름이 대개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당시에 만들어진 것에 반해, 덕정동(德亭洞)이라는 땅 이름은 유래가 오래되었다. 덕정동이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째, 옛 천천면 덕정리 언덕에 정자나무가 있어서 덕정이·덕쟁이·덕정동이라 불렸는데, 이것이 그대로 덕정리가 되었다는 설이다.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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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덕정동에 있는 고려 및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덕정동 유물 산포지는 모두 네 곳에 분포되어 있다. 첫 번째는 덕정초등학교 오른쪽 뒷터골 곡부(曲部) 지역 북쪽의 구릉성 산지 남사면, 두 번째는 덕정중학교 동쪽 은골 곡부 지역의 구릉성 산지 남사면, 세 번째는 두 번째에서 남서쪽으로 100m가량 떨어진 경작지 일대, 네 번째는 덕정동 돌모루마을에서 남동쪽 곡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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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비교적 넓고 큰 길. 2011년 현재 양주시의 도로 연장은 492.5㎞이고, 이중 338㎞[68.6%]가 포장도로이다. 2009년에는 도로 연장이 386.2㎞이었으며, 이중 포장도로가 284.3㎞로 포장률이 73.6%에 달하였다. 전체 도로 중 비포장도로는 8.8㎞이었고 미 개통 도로가 93㎞이었다. 2009년 도로 종류별 연장은 고속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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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하리(道下里)라는 땅 이름은 도락산(道樂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락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하리라는 땅 이름은 일제 초기에 처음 문헌에 나온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석적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석적면 항동리·행동리·대야지리의 3개 리에서 일부 지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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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경기도 양주 출신 인물들. 1910년 불법적 한일 강제 합방이 이루어지고, 1910년에서 1920년대에 걸쳐 점차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이 잇따르면서 조선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조직화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이는 3·1 만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후에도 국내 및 국외에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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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에 있는 자연 마을. 독재동(篤才洞)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독재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화성군에도 같은 지명이 보이며, 마찬가지로 마을에 재주 있는 사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독재동의 형성 시기는 알 수 없다. 일설에는 난리나 조정의 모함을 피해 온 사람들이 만든 피난지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에는 양주군 장흥면 삼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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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두곡리(杜谷里)라는 땅 이름은 마을이 사방으로 막혀 있는 두메골짜기라 하여 두일 혹은 두곡리라고 불렸던 데서 유래한다. 두곡리에 있는 자연 마을 가운데 두일이 이 명칭과 관련이 있다. 두곡리라는 땅 이름은 적어도 대한 제국 시기부터 사용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시 다른 지역과 달리 통폐합 과정을 겪지 않았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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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덕계동에 있는 자연 마을. 도락산(道樂山)[440m]에서 발원하여 이곳 비암산(鼻巖山) 자락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시내가 1㎞ 지점에서 남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급하게 돌린다. 따라서 밖에서 시내를 볼 때 상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숨어 있는 시내’라 하여 둔계(遯溪)라 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됭계로 불리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전라북도 부안군 남하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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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 있는 회원제 골프장.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 주한 미군 가운데 일부가 시설이 좋지 않은 한국 골프장의 이용을 꺼려하면서 일본에 가서 골프를 치는 일이 많아지자 당시 주한 미군 부대가 있던 양주군 권역에 골프장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1969년 7월 1일 골프장 사업 승인이 이루어졌으며, 1972년 5월 1일 수려한 천보산 자락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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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옥정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마라니라는 이름의 유래에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 천마산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역마(驛馬)를 탔을 때 말이 땀을 많이 흘려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도읍을 정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다니다가 이 마을을 지나게 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타고 있던 말이 땀을 많이 흘린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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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법정동. 마전동(麻田洞)이라는 땅 이름은 옛날부터 삼밭이 많아서 삼밭굴·삼밭 또는 마전(麻田)이라 불리다가 정착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마포(麻圃)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마을 이름이 산삼 및 삼베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마전동의 옛 이름은 마전리이다. 마전리라는 이름은 18세기 후반의 문헌인 『호구총수(戶口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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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2동에 속하는 법정동. 만송동(晩松洞)이라는 땅 이름은 회만리(回晩里)의 ‘만’자와 송랑리(松浪里)의 ‘송’자를 합해서 나왔다. 회만리는 회만이를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으로, 마을 중앙에 야산이 자리하고 있어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를 갈 때 돌아서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신라와 당나라의 싸움이 벌어진 매초성 전투에서 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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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만송동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만송동 오리골마을의 북쪽 구릉 사면의 평탄한 경작지에 있다. 1997년 12월 양주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작하여 1998년 9월 30일까지 조사를 마쳤으며, 조사 보고서인 『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간행하였다. 이때 고려 및 조선 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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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고개. 1506년(중종 1) 고주내면 고읍리에 있었던 양주군의 치소(治所)가 유양리[현 유양동]로 이전된 이래 유양리는 조선 시대 양주군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원님이 거주하는 읍치(邑治)가 있었다. 신임 원님이 부임해 올 때 이 고개를 넘어왔으며 이 지역 사람들이 그 광경을 바라보던 고개[망현(望峴)]라 하여 망째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망째고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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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매곡리(梅谷里)는 매골·맹골·매곡이라고도 불리며, 땅 이름의 유래에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째, 높은 산 밑에 자리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둘째, 마을이 ‘매화가 떨어지는 모습[매화락지형(梅花落地形)]’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셋째, 마을이 매의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혹은 마을 북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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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에 있는 자연 마을. 매내미라는 명칭은 춘향의 어머니인 월매(月梅)에서 비롯된다고 전해진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에 소설 『춘향전(春香傳)』의 주인공인 춘향의 산소가 있었는데, 이수광(李睟光)[1563~1628]의 후손이 이곳에 살면서 춘향의 산소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숨기려고 일부러 춘향의 어머니인 월매의 ‘매’자와 남원(南原)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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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매곡리에 있는 정보화마을. 2001년부터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농림부, 정보통신부 등과 함께 정보화마을 조성 사업을 추진하였다. 정보화마을 조성 사업은 농촌, 어촌, 산촌 등 정보화 시대에 소외된 지역에 인터넷 이용 환경을 조성하고 전자 상거래 등 정보 콘텐츠를 구축하여 정보 생활화를 유도하는 동시에 실질적인 수익 창출 구조를 만들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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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에 있는 자연 마을. 예전에 산속에 논이 있었는데 가뭄에 벼농사를 지을 수 없어 묵혀 놓은 논이 많아 ‘묵은 논’이라 불리다가 묵은동(默隱洞)이 되었다. 이외에 묵은논이·진답(陳畓)이라 불렸으며, 옛 묵은[진답]면사무소가 있었던 관계로 일패라고도 하였다. 묵은동이 속한 용암리라는 땅 이름은 약대산[일명 악대산]에 있는 전체 둘레 15m, 폭 6m,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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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묵은면(默隱面)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인 민무질(閔無疾)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여흥 민씨 집안에서 이 지역을 사패지(賜牌地)로 하사 받은 후, 어느 누구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가운데 외부에 가려 있고 황무지가 많은 척박한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후기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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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속하는 법정리. 방성리(防城里)는 방축리(防築里)에서 ‘방’자와 산성리(山城里)에서 ‘성’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방축리라는 땅 이름은 마을 앞에 북서 계절풍을 막기 위해 흙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은 방축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산성리는 근방에 양주의 외성인 산성[옛 양주 대모산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방성리라는 땅 이름은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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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유물 산포지. 방성리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대모산성 서문지 능선 하단부 대성사(大盛寺) 주변의 경작지와 구릉 하단 사면 말단부에 있다. 1997년 12월 양주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작하여 1998년 9월 30일까지 조사를 마쳤으며, 같은 달 조사 보고서인 『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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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에 있는 삼거리 도로. 백석삼거리는 양주시청에서 양주시 광적면으로 가는 도로와 백석읍 오산리로 가는 삼거리 도로로, 백석읍 방성리 544-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에 있는 삼거리라 하여 백석삼거리로 불리게 되었다. 왕복 4차선 도로이다. 일제 강점기에 현재의 양주시 광적면에서 양주시청으로 나가는 도로와 백석읍 오산리에서 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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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백석(白石)’은 조선 시대부터 사용되는 용어로 전국 어디에나 존재한다. ‘백석’이라는 땅 이름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지역을 보면 흰 돌이라는 자연물을 그대로 한자로 옮겨 ‘백석(白石)’이라고 했다기보다는 큰 들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한돌’이 변하여 ‘한돌 → 흔돌 → 흰돌 → 백석’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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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일과 28일에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현 백석읍]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백석면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것은 구장인 안종규였다. 만세 운동이 농촌으로 확산되면서 구장[이장]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일제는 1914년 면제를 개편하면서 식민지행정 말단 기구로서 면제를 확립하였으나, 리 단위의 향촌 사회는 전통의 면리제의 질서를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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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행정읍이자 법정읍. ‘백석(白石)’이라는 땅 이름은 백석읍 방성리와 양주읍 유양리·어둔리에 걸쳐 있는 양주산성[구 양주 대모산성]에 흰 돌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양주산성에는 흰 돌이 없고, 다만 방성리에 소재한 양주소놀이굿전수회관 부근의 배나무 과수원에 흰 돌이 있어 이를 ‘백석’의 기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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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유희요. 「뱃노래」는 양주 지방에 전승되는 일반 민요로 뱃놀이를 즐기자는 내용과 함께 임에 대한 사랑이 그려져 있는 가창 유희요이다. 「뱃노래」는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지역에 따라 약간씩 사설이 달라지는 통속 민요이다. 1978년 양주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다. 「뱃노래」는 당시 양주군 주민으로부터 채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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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속하는 법정리. 복지리(福地里)라는 땅 이름은 홍복리(弘福里)에서 ‘복’자와 신지리(莘池里)에서 ‘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홍복리라는 땅 이름은 장흥면과 경계를 이루고 우뚝 서 있으며 역사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홍복산에서 유래하였으며, 신지리라는 땅 이름은 마을 한가운데 신지라는 저수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복지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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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봉암리(鳳岩里)라는 땅 이름은 봉암, 즉 봉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봉내미고개[봉데미고개]를 비롯하여 봉암리 일대에 바위가 많았다. 봉암리 지역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항상 물이 많고 좋았으며, 산에는 소나무와 밤나무가 숲을 이루어 왜가리·황새 등이 항상 날아와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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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1동에 속하는 법정동. 봉양동(鳳陽洞)이라는 땅 이름은 봉명조양(鳳鳴朝陽)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봉명조양이란 봉황새가 산의 동쪽에서 운다는 뜻으로 천하가 태평할 조짐을 이르거나 진귀하고 뛰어난 행위를 칭찬하는 말이다. 봉양동의 옛 이름은 봉양리이다. 봉양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 대부분이 어등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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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봉양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봉양동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봉양동 사귀마을의 구릉 및 곡부(曲部) 지역을 지나는 도로변 경작지에 있다. 1997년 12월 양주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작하여 1998년 9월 30일까지 조사를 마쳤으며, 같은 달 조사 보고서인 『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간행하였다. 이때 양주시 봉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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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덕정동에 있는 자연 마을. 봉우재는 근처에 봉화(烽火)를 피우던 산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봉우재’라는 이름은 봉수대(烽燧臺)를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도 같은 지명이 보인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전국에 봉우재라는 이름이 150여 군데에 달한다. 봉우재는 최소한 18세기 후반부터 양주군 천천면 덕정리에 속해 있었다. 일제의 지방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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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곡리(釜谷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두 가지의 설이 있다. 첫째, 이곳이 가마골 혹은 교동(轎洞)으로 불려왔다고 한다. 이름난 인물들의 묘가 많아 성묘하는 사람들이 가마를 타고 들어오므로 이와 같은 땅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둘째, 그릇을 굽는 가마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부곡’이 가마 ‘부(釜)’자와 골짜기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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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에 있는 농촌 체험 마을. 비암리라는 땅 이름은 이 지역에 있는 견준바위 즉, 비암(比巖)에서 유래하였다. 예로부터 양주골 백성들이 삶의 기초인 소금과 음식의 기본인 새우젓 등을 얻기 위해 임진강 나루터 사이에 있는 길목으로 많이 왕래하여 주막거리가 형성되었다. 그 길에 있는 큰 바위산에 특이한 구멍이 뚫려 있어 지나치는 백성이 나무를 꺾어 그 구멍에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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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비암리(比岩里)라는 땅 이름은 이 지역에 있는 견준바위, 즉 비암(比岩)에서 유래하였다. 지금은 도로 확장 과정에서 거의 파손되었지만 옛사람들은 이 바위를 막대기로 견주면서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고 전한다. 비암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광석면 사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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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봉양동에 있는 자연 마을. 사괴(四槐)라는 지명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느티나무 네 그루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괴목(槐木), 즉 홰나무가 서식하는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옛날에 이곳에서 창호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창호지를 의미하는 사괴지(四塊紙)에서 따온 말이라는 설도 있다. 동두천지동(紙洞), 양주군 회천면 봉양리조휘동[종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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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는 여성 단체들의 협의회. 사단법인 양주시 여성단체협의회는 양주시의 여성 단체장들이 결성한 협의회로, 여성 단체의 활동을 도우면서 조직적으로 사회적 사업을 시행 및 관리하고 있는 여성 단체이다. 사단법인 양주시 여성단체협의회는 남녀평등의 촉진,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 및 복지 증진을 도모하며 양주시 여성 단체들의 네트워킹을 통해 활발한 지역 사회 발전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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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시민을 중심으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전개하는 운동. 양주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사회 운동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이다. 1920년대 청년 운동이 전국으로 불길처럼 번져갈 때 양주 지역에서도 양주청년회와 금오청년회가 조직되었다. 1930년대에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김용기(金容基) 목사는 봉안마을의 ‘이상촌 운동’을 벌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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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법정동. 산북동(山北洞)이라는 땅 이름은 양주의 주산(主山)인 불곡산(佛谷山) 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뒤·산디·산대(山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지역은 꽃벼루우물이 있어 고려 시대부터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샘내[천천(泉川)]로 불린다. 또는 배양동(培養洞)이라고도 하는데 발음이 변하여 뱀굴로도 불린다. 산북동의 옛 이름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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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산을 소재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산타령」은 양주 지방에 전승되는 일반 민요로 유명한 산과 고개, 재 등을 읊은 가창 유희요이다. 1978년 양주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다. 「산타령」은 당시 양주군 주민으로부터 채록하였지만, 자세한 제보자 정보는 빠져 있어 알 수 없다. 「산타령」은 2가행의 정행 형식을 가지고 있다. 사설은 전반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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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상리(三上里)라는 땅 이름은 삼패상리의 준말이다. 원래 패(牌)는 ‘어울려 이룬 사람들의 동아리’를 뜻하며 나라에서 각 지방의 마을을 나눌 때 흔히 쓰던 기준이다. 양주시의 각 면에 속한 리(里)의 이름이 최초로 기록되어 있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의하면, 마을 이름이 확실하지 않은 곳을 일패리·이패리·삼패리·사패리 등으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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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2동에 속하는 법정동. 삼숭동(三崇洞)이라는 땅 이름은 삼가대리(三佳垈里)의 ‘삼’자와 광숭리(光崇里)의 ‘숭’자를 합한 이름이다. 삼가대리는 삼거리에 있는 마을 혹은 세 성씨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숭리는 넓은 벌판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지 주민들은 상삼동(上三洞)·하삼동(下三洞)·광숭동(光崇洞)·야촌동(野村洞) 등을 합쳐 옛날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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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양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 지역민의 동조와 호응 속에서 무장 의병 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고장이다. 특히 임진강과 한남정맥의 전략적 지세와 활발한 의병 활동으로 1907년 전국의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13도 창의대진소를 결성하고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을 때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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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삼하리(三下里)라는 땅 이름은 삼패하리의 준말이다. 원래 패(牌)라는 말은 ‘어울려 이룬 사람들의 동아리’를 뜻하며 나라에서 각 지방의 마을을 나눌 때 흔히 쓰던 기준이다. 양주시의 각 면에 속한 리(里)의 이름이 최초로 기록되어 있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의하면, 마을 이름이 확실하지 않은 곳은 일패리·이패리·삼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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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남녀 간의 상사를 소재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상사요」는 양주 지방에 전승되는 일반 민요로 떠나겠다는 임을 향해 지난 애정을 노래하며 이별에 대한 고통과 슬픔을 부각하는 가창 유희요이다. 1978년 양주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다. 「상사요」는 당시 양주군 주민으로부터 채록하였지만, 자세한 제보자 정보는 누락되어 있어 알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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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수’라는 땅 이름은 원래 양주 백석과 감악산에서 내려오는 두 물줄기가 합쳐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상수(相水)]인데, 이곳에 상수리나무가 많이 서식하므로 또 다른 의미가 발생하였다[상수(橡樹)]. 일설에는 고려 말의 유신(遺臣)으로 조선 왕조에 관리로 나아간 홍지(洪智)와 관련된 땅 이름이라고도 한다. 즉 홍지가 태조 때 죽으니, 태조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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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경기도 양주를 포함한 전국에서 실시된 범국민적 지역 사회 개발 운동. 새마을 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의 제창으로 행해진 지역 사회 개발 운동으로, 근면·자조·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하고 그 실천을 범국민적·범국가적으로 추진하여 총체적인 국가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양주 지역은 시범 실시 지역으로 선정되었고, 많은 예산이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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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던 산. 또는 그 산이 있던 자연 마을. 서산(西山)은 조선 시대에 한양[서울]에서 볼 때 서북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부곡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는 일영봉·제일봉·종래봉·매봉 등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산을 가리키는 것인지, 네 개의 산 전체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서산은 서산골짜기라고도 불렀으며, 장흥면 전체를 가리키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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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서석적면(西石積面)은 양주목의 서부에 있으며, 들판이 거듭 계속되고 있다는 뜻에서 들의 와전인 돌의 한자어 ‘석(石)’자와 ‘거듭된다’는 뜻의 ‘적(積)’자를 합하여 서석적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서석적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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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우리(石隅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우리에 흐르는 하천인 석우천의 모퉁이에 있던 돌문에서 ‘돌모루 또는 ‘석우’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땅 이름 유래와 관련된 돌문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이곳에 와 시주를 청하였으나 동네 사람들이 ‘쇠똥도 없다’고 하며 내쫓았다고 한다. 이에 스님이 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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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석현리(石峴里)라는 땅 이름은 석현, 즉 돌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170년 전 이 마을의 문인들이 돌고개 근처에 앉아 마을의 이름을 정하고자 의논하였다. 이때 나무를 기준으로 삼자는 측과 돌을 기준으로 삼자는 측으로 나뉘어 논란이 있었다. 결국 돌이 나무보다 수명이 길다고 하여 돌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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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할 사람을 투표로 선출하는 일.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요 공직 선거로는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권의 수반이 되는 최고의 통치권자인 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국회의 구성원이 되는 국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국회 의원 선거, 「지방 자치법」에 따라 지방 의회 의원 및 지방 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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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암리(仙岩里)는 이 지역에 선돌바위가 있어 붙여진 땅 이름으로, 입석동(立石洞)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신천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선돌은 신선바위·선녀바위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신천의 수량이 많이 줄어 선돌의 모습이 예전보다 많이 노출되어 있다. 선암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묵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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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에 있는 자연 마을. 섬말은 마을 전체가 물로 둘러싸여서 섬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율량천과 봇물이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또한 들 한 가운데에 섬처럼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양주시 백석읍에도 같은 지명이 있으며, 홀로 떨어져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유래도 같다. 한자로는 도촌(島村)이라고 한다. 섬말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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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유교 단체. 1945년 8·15 해방 직후 김창숙(金昌淑)을 중심으로 하는 유림(儒林)이 일제 강점기에 성균관을 점유했던 ‘친일 유림’을 축출하고 과거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하는 새로운 중앙 집권적 유림 기구를 설립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1945년 11월에 성균관 비천당 앞 광장에서 전국 유림 대표 200여 명이 성균관유도회(成均館儒道會) 창립회를 열고 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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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교리에 따른 예식이 행해지는 건물. 성당(聖堂)은 본당을 말하며, 가톨릭의 경신례를 위해 모든 신자들이 이용하도록 지정된 거룩한 건물이다. 성당은 주임 신부가 상주하며, 공소(公所)는 신부가 방문해야만 미사가 집전될 수 있는 성당보다는 작은 교회의 단위이다. 주교 관구의 중심 교회로서 주교가 직위에 있고 미사를 집전하는 경우 주교좌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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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의 시목(市木). 소나무의 높고 굳은 절개를 표상하여 양주시 시민의 진취적 기상을 상징하고, 바위틈에서도 살아나는 자생력을 표상하여 시민의 강인함을 상징하고자 소나무를 양주시의 시목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시목의 지정 일자는 정확하지 않은데, 타 시·군의 사례와 같이 시화[개나리] 지정 일자와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시화와 시목은 1970년대에 지정된 것으로 추정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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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에 있는 자연 마을. 송추골은 소나무[松]와 가래나무[楸]가 많아 원래 송추(松楸)라고 불리었다. 한자로 ‘송추동(松湫洞)’이라고 쓰면서 가래나무 ‘추(楸)’자 대신 못 ‘추(湫)’자를 사용하였으며 이는 사계절 내내 맑고 시원한 물이 계곡에 흘렀기 때문이다.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송추골의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한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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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부터 1980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수동면(水洞面)은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고 맑은 물이 굽이쳐 흘러 물골안이라고 하였으며, ‘수동’은 이 물골안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수동면은 1963년 1월 1일 양주군에 신설된 면으로, 가평군 외서면 입석리·외방리·내방리의 3개 리와 양주군 진접면의 수산리 및 양주군 화도면의 지둔리·운수리·송천리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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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의정부시 가능동 지역에서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부르는 유희요. 「시집살이요」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전승되는 일반 민요로, 옛 시집살이를 고되게 겪었던 며느리들의 입장에서 시댁 식구들의 야박한 태도에 대한 불만어린 한탄과 멀리 떨어져 자주 찾아보지 못하는 친정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드러나 있는 가창 유희요이다. 1978년 양주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양주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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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산리(莘山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중국 은나라의 재상인 이윤(伊尹)이 낙향하면서 들에 개나리꽃이 만발하였다는 ‘신유야화(莘有野花)’[신야(莘野)는 이윤이 농사를 지었다는 곳]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둘째, 이 마을의 이름을 정할 때 지청말에 귀신바위, 일명 곳갈바위가 있으므로 귀신 ‘신(神)’자를 써서 신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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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신상학(愼相學)[1885~?]은 충청남도 면천군 출신으로 경기도 양주군 현내면 곡촌에 이주하여 살았다. 일본에서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1911년 당시 27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출생 연도는 188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상학은 1910년 음력 2월 의병장 홍원유(洪元裕) 휘하에 들어가 총기로 무장하고 양주군·포천군·적성군 등지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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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암리(神岩里)라는 땅 이름은 이 마을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감악산 바로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유래에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째, 조선 시대에 신을 모신 바위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둘째, 이곳에 남선굴(南仙窟)로 불리는 신선바위가 있었으며, 여기에서 신선바윗골·신암골·신앙골·신암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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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정동에 있는 양주시 관할 치안 행정 기관. 양주경찰서는 시민 생명·신체 및 재산 보호, 범죄 예방·진압 및 수사, 치안 정보 수집, 교통 단속 등을 통해 경기도 양주 지역의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일제 강점기 지금의 양주 관아지에 양주군의 주재소가 설치되었다. 1921년 양주군 청사가 의정부로 이전되면서 양주군 주재소도 의정부로 이전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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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간행된 경기도 양주시의 지명에 대한 유래를 수록한 단행본. 『양주 땅이름의 역사』는 양주향토자료총서 제4집으로 발간된 양주 지역의 지명 유래집으로, 양주군 각 읍면의 지명, 즉 땅 이름을 각종 역사 자료와 사전, 현지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연구, 설명하였다. 1999년 1월 양주문화원 향토사연구소에서 양주 땅이름의 역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2001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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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양주목[현 경기도 양주시]을 관할하던 최고위 관직. 조선 초기 양주는 양주군, 양주도호부를 거쳐 1466년(세조 12)에 양주목으로 승격되었다. 수도 한성부를 보좌하는 기보(畿輔) 지역으로서의 특성을 감안하여 중요 지방 행정 구역인 목(牧)이 된 것이다. 양주목은 연산군 때 잠시 폐지되었다가 중종 때 다시 부활하여 1895년(고종 32) 전국의 지방 행정 구역을 정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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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는 양주 지역의 향토 문화 창달을 위해 설립된 지역 문화예술 진흥 기관. 양주문화원은 설립 이래 지속적으로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를 조사·연구하고 사료를 수집·보존해 왔으며 나아가 향토사연구소를 설치하고 문화학교, 평생학습관, 역사문화대학을 운영하는 등 지역 주민을 위한 사회 교육 활동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며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지역 역사 문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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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오산리에 있는 「양주 상여·회다지 소리」 전수 회관. 「양주 상여·회다지 소리」는 경기도 양주 지방에 전해오는 장례 문화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소리이다. 전체적으로는 발인 단계에서부터 봉분을 만드는 데까지 장례 절차마다 부르는 선소리와 「긴 달고 소리」, 「꽃방아 타령」, 「어러러 소리」 등이 있다. 이를 합쳐 ‘회다지 소리’라 한다. 「양주 상여·회다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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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 소재 총융청(摠戎廳) 소속 둔전의 도전(賭錢)을 파악해 정리한 책. 「양주 소재 총둔 도전 수봉책(楊州所在摠屯賭錢收捧冊)」은 1898년(고종 35) 11월 양주목에서 동목에 있는 총둔(摠屯), 즉 총융청 소유 둔전(屯田)에서 거두어들인 도전의 수입을 파악해 경리원(經理院)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도전이란 도지(賭地)라고도 하는데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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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가 제정·제시하고 있는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양주 시민의 주요 덕목을 담은 헌장. 양주 시민 헌장은 2003년 10월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하면서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주요 덕목을 담은 새로운 시민 헌장을 통해, 양주 시민에게 시민 의식의 향상과 함께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양주 시민 헌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양주고을은 유구한 역사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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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19일 양주시 승격을 기념하여 지정한 기념일.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며 10월 19일을 양주시민의 날로 지정하였다. 시민의 친목과 단합을 도모하며 전래의 미풍양속을 숭상하고 애향심을 고취시키고자 양주시민의 날에 기념식과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매년 10월 19일에 양주시민의 날 기념식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국악 공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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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덕정동에 있는 시민 봉사 및 친목 단체. 양주시민회는 양주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노인 및 탈북자 등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며 지역 주민이 행한 선행을 표창하는 등 향토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 단체이다. 양주시민회는 양주 지역 주민인 회원들의 애향심 고취 및 회원들 상호간의 친선과 유대 강화, 지역 인재 발굴 육성 등을 통하여 지역 발전에 기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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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농촌진흥운동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한 농촌 관제 단체. 농촌진흥회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 관료-유지 지배 체제의 형성과 함께 식민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발전시킨 주요 기구 중 하나이다. 양주진흥회도 일본인과 조선인 대지주의 가혹한 수탈에 대항하는 기구로서가 아니라 단지 지주와 소작인 간의 상호 부조와 농민의 자력갱생 등을 요구하는 기구로서 만들어졌다. 일제는 강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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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단체. 3·1 운동 이후 무력만으로는 한국을 지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일제는 그때까지의 무단 통치 방식을 변경하였다. 조선 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齊藤實]는 ‘문화의 발달과 민력(民力)의 충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른바 문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한편, 1920년대 초반 한국은 노동 운동, 농민 운동의 이념과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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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동군 소재 초촌(草村)의 화전(火田)에서 거둔 조세를 기록한 책. 화전은 원래 세금을 면제받아야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매년 가을 경작 현황을 조사해 경작지에 한해 세금을 거두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화전이 세금 면제와 부역 회피의 대상으로 전락해 정부가 한 때 화전 경작을 금지하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발생하는 수입은 관청의 경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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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 유학한 학생들의 친목 단체. 양주학생친목회는 매년 하계 방학을 이용하여 양주군 각지를 순회하는 강연회 개최를 통해 지역 청년들을 계몽하고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1922년 경기도 양주군 출신으로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던 안학수와 최범주의 발기로 창립되었으며 회장으로 장연채(張然采)가 선출되었다. 당시 회원은 80여 명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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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간행된 경기도 양주시의 항일 운동에 대한 자료를 모은 단행본. 『양주 항일민족운동사』는 양주군과 양주군의회의 후원 아래 양주문화원에서 편찬한 단행본 책자로, 양주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 운동과 3·1 운동, 그리고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에 대한 논문과 항일 운동 연표 및 항일 운동가의 묘비문을 정리한 책이다. 2001년 1월 양주군의회 김완수 의장의 제안에 따라 양주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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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200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1466년(세조 12) 이래 양주목(楊州牧)이었던 양주 지역은 1895년(고종 35) 23부제 실시에 따라 한성부 소속의 양주군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따라 지방 제도가 변화되면서 양주목은 한성부 소속 3등군(三等郡)인 양주군으로 변경되었다. 1896년 8도제로 변경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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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능(陵)·원(園)·묘(墓)의 수리비 및 특별히 감면된 둔토(屯土)의 세금을 기록한 책. 「양주군 각 능원묘 수리비 급 특감미 대전 소수 실수 구별 성책(楊州郡各陵園墓修理費及特減米代錢所受實數區別成冊)」은 1895년(고종 32) 양주군에 있는 능·원·묘의 수리비 및 특별히 감면된 둔토의 세금을 정리해 정부의 재정 담당 부서인 탁지부(度支部)에 올린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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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역둔토의 도조 현황과 도조의 납부·미납부 실태를 기록한 책. 「양주군 각 역 도조 실수 급 각 둔 기경 양년 조납 미납 구별 병시직 성책(楊州郡各驛賭租實數及各屯己庚兩年條納未納區別幷時直成冊)」은 1900년(고종 37) 12월 경기도에서 양주군에 있는 역둔토의 도조(賭租)[고정된 소작료] 현황과 1899~1900년 그 실태를 조사해 기록한 책이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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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둔토(屯土)의 현황을 기록한 책. 「양주군 소재 각 둔토 두락 급 결복 구별 성책(楊州君所在各屯土斗落及結卜區別成冊)」은 1899년(고종 36) 5월 양주군에 있는 둔토의 두락(斗落)과 결부(結負)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1899~1906년에 경기도와 인천부에 있는 역둔토(驛屯土)의 현황을 기록한 『경리원역둔토성책(經理院驛屯土成冊)』[필사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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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둔토(屯土)의 실태를 기록한 책. 「양주군 소재 전 경리청 갑사 둔전답 두락 경수 결복 사검 성책(楊州君所在前經理廳甲士屯田沓斗落耕數結卜査檢成冊)」은 1897년(고종 34) 10월 경기도 양주군에서 전 경리청(經理廳)의 갑사(甲士)에게 제공되던 양주군 소재 둔전답(屯田畓)의 실태를 파악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경리청은 북한산성의 관리를 담당한 기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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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간행된 경기도 양주군의 역사, 민속, 고고 유적 및 문화재를 조사, 수록한 단행본. 『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은 『토지박물관 학술 조사 총서』 제1집으로 1998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과 양주군이 간행하였다. 양주군의 역사, 민속, 고고 유적 및 지정 문화재와 매장 문화재를 포함한 모든 부동산 문화재를 조사하여 그 내용을 수록하였다. 1997년 12월 19일부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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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경기도 양주군의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 산업, 민속, 문화, 인물 등을 총망라하여 수록한 향토지. 1989년 3월 양주문화원에서 양주군지편찬위원회가 구성되어 1991년 2월부터 본격적인 발간 작업이 시작되었다. 1992년 8월 책자가 발간되기까지 총 3년 6개월 여에 걸쳐 작업이 진행되었다. 1992년 당시 전임 양주군수 하영수, 현임 양주군수 우종오, 전임 군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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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는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치열한 쟁탈전의 현장으로서, 고려 시대에는 개성과 조선 시대에는 한양과 가까운 근기(近畿) 지방에 속함으로써 수많은 부침(浮沈)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부침 속에는 역사에 오롯이 이름 한 줄로 남았거나 혹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사연들이 녹아 있다.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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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부터 1942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1922년 10월 1일 양주군의 청사를 당시 주내면 유양리에서 시둔면 의정부리로 이전하면서 시둔면은 양주군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군청사가 위치한 시둔면을 양주면(楊州面)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삼한 시대 진한에 속하던 지역으로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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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6년부터 1895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지방 행정 제도에 의해 설정된 목(牧)·부(府)·군(郡)·현(縣) 중에서 양주는 가장 큰 규모의 행정 단위인 목에 해당하였으며, 해당 지방관의 명칭은 목사(牧使)였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었던 양주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1466년(세조 12) 양주도호부를 양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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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경기도 양주목에서 동목(同牧)의 환곡 현황을 기록한 책. 「양주목 환곡 성책(楊州牧還穀成冊)」은 1886년(고종 23) 5월 양주목에서 창고에 있던 환곡(還穀)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환곡이란 정부와 지방 관청에서 춘궁기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걷이 뒤에 돌려받는 것을 말한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奎16110]. 필사본 1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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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년부터 141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도읍을 한양, 즉 예전의 양주로 옮기면서 옛 양주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동촌(東村) 대동리(大洞里)로 강제로 이주시키고 양주를 양주군(楊州郡)으로 강등시켰다. 1395년(태조 4) 고려 시대 견주 지역으로 다시 한 번 이주시킨 후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하여 양주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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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시. 동쪽으로 포천군, 서쪽으로 파주시 및 고양시, 남쪽으로 서울특별시 및 의정부시, 북쪽으로 동두천시 및 연천군과 각각 접해 있으며, 동서의 거리는 20㎞, 남북의 거리는 30㎞이다. 대체로 산지가 많이 발달해 있으며, 평지는 적은 편이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수많은 전설이 깃들어 있어 영산이라고 일컬어지는 감악산(紺嶽山)[675m], 양주시의 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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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매년 5월 5일에 열리는 가족 축제. 1999년 양주군청 사회복지과는 양주 지역 어린이들을 위하여 제1회 양주 어린이 축제를 개최하였으며, 2003년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된 이후에도 매년 어린이날에 행사를 열고 있다. 2011년부터는 어린이는 물론 유아부터 노인과 다문화 가족 등이 함께 즐기고 어울릴 수 있는 축제로 탈바꿈하고자 양주 어린이 축제에서 양주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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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회 교역자와 평신도 대표들의 연합 단체. 1981년 12월 양주군 기독교교역자연합회로 발족하였으며, 제1대 회장은 민정웅 목사였다. 1989년 경기도 양주 지역 기독교 교역자와 평신도 대표를 포괄하여 양주군 기독교연합회로 출발하였으며, 2003년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양주시 기독교연합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9년 초에는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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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에 있는 농업 행정 및 기술 지원 기관. 양주시 농업기술센터는 변화하는 농업 환경에 적극 대응하는 과학 영농 기술 보급, 농업 경영 개선 지도, 농업 전문 인력의 체계적 육성 등을 통하여 양주 지역 농업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양주시 농업기술센터는 1957년 2월 양주군 농사교도소로 처음 설립되었으며 1962년 3월 양주군 농촌지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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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었던 경기도 생활체육회 산하 양주시 지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후 정부에서는 1989년 국민 생활 체육 진흥 종합 계획인 ‘호돌이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목적은 생활체육 진흥을 통한 국민 건강과 체력 증진, 국민의 건전한 여가 선용과 선진 체육 문화 창달, 세계 한민족의 동질성과 조국애 함양을 통한 통일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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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방동에 있는 양주시 관할 선거 관리 기관. 양주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양주 지역의 공정한 선거 관리와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여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양주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양주시가 군이었던 시절인 1963년에 발족되어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5명의 위원이 위촉되었다. 이어 양주군 일원 1읍 15개 면을 관할 구역으로 한 59개의 투표구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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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었던 경기도 체육회 산하 양주시 지부. 1920년 7월 13일 한국 체육의 모태가 되는 조선체육회가 ‘건민(健民)’과 ‘저항’을 이념으로 창립되었다. 이후 조선체육회는 1938년 7월 4일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으나 1945년 11월 26일 다시 조직되었다. 1954년 3월 16일 사단 법인 대한체육회가 결성되었으며, 1968년 체육 단체 일원화 시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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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방동에 있는 양주시 관할 행정 기관. 2011년 현재 양주시는 매력적인 자족 도시를 비전(vision)으로 선포하고 교육 도시, 기업 도시, 문화 복지 도시를 전략 목표로 설정하였으며 ‘공무원의 생각이 바뀌어야 양주시가 변화한다’를 시정 방침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양주시의 상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도시 브랜드인 ‘아름다운 변화 양주’는 양주시의 미래 비전과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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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200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양주읍이란 명칭은 옛 양주의 읍치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주목의 중심지로서, 동헌·사직단·여단[돌림병 예방을 위해 나라에서 외로운 혼령을 제사지내주던 제단]·객사 등 주요 시설이 밀집되어 있었다. 삼한 시대 마한에 속하던 지역으로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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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는 2003년 이전까지만 해도 농업 위주의 1차 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이었으나 2003년 시로 승격한 뒤, 산업 인프라 구축과 적극적 기업 유치를 통해 LCD 반도체 부품의 생산 기지와 섬유 소재의 가공과 유통 산업이 들어서면서 첨단 산업의 기틀을 확고히 다져 가고 있는 상태이다. 경기도 양주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농업과 축산업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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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어둔동(於屯洞)이라는 땅 이름은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호명산(虎鳴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해지는 시각이 빨라 쉽게 어두워지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이 주둔했던 곳이라 하여 애둔지·왜둔치·왜벌이라고도 하며, 조선 시대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하여 와평동(瓦坪洞)·와평·왓벌이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어둔동의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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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어등산면(於等山面)은 현재의 양주시와 동두천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칠봉산의 옛 이름인 어등산에서 유래되었다. 조선 전기 태조·태종·세종·세조 등 많은 임금이 강무(講武)와 사냥을 하기 위해 양주 지역을 방문하였는데, 칠봉산을 올라 해룡산 자락에서 강무를 즐겼다고 한다. 이후 임금이 오르는 산이라는 뜻에서 ‘어등산’이라는 이름이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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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驛)과 관청에 지급된 토지. 교통의 중심지에 설치된 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지급된 전답을 역토(驛土), 지방이나 중앙 관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 관청에 지급된 토지를 관둔전(官屯田)이라 하며 이를 합하여 역둔토(驛屯土)라 한다. 『양주정간책(楊州井間冊)』에 의하면 조선 시대 양주에는 6개의 역토와 14개의 둔토(屯土)가 있었다. 양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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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양주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역사적 중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더욱이 양주 지역의 남쪽과 북쪽을 흐르고 있는 한강과 임진강은 수로에 근거한 교통의 편리함, 풍부한 수자원, 광활한 평야라는 지리적 장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이를 둘러싼 군사적 쟁탈전이 빈번하였다. 이러한 한강과 임진강을 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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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속하는 법정리. 연곡리(蓮谷里)는 연평리(蓮坪里)와 난곡리(蘭谷里)에서 ‘연’자와 ‘곡’자를 따서 지었다. 연평리라는 땅 이름은 연못이 있는 들판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래하였고, 난곡리라는 땅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에 있었던 피난말에서 변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연곡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이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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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속하였던 의정부시 가능동 지역에서 애정을 표현한 유희요. 「연정요」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전승되는 일반 민요로 사랑하는 임을 한양으로 떠나보낸 후 원앙새의 쌍쌍이 어울리는 것이 부러워 임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가창 유희요이다. 1978년 양주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는데, 이는 당시 양주군[현재 양주시]에 소속되어 있던 의정부읍 가능리 주민 박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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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서 오병사의 집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오병사의 집터」는 뱀에게 먹힐 뻔했던 황새의 새끼들을 구해준 시은담(施恩談)이자 뱀에게 복수를 당해 집안이 망한 패망담이다. 「오병사의 집터」 이야기는 은혜를 베푸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다른 한편에서는 원수가 되는 일이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오병사는 좋은 뜻으로 뱀으로부터 황새 새끼들을 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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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속하는 법정리. 오산리(梧山里)라는 땅 이름은 홍복산의 큰 줄기에서 복지리를 거쳐 오산리까지 뻗은 둥근 산에서 나왔다. 이 산이 외롭게 떨어져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어 마을 사람들에게 외로운 산이라는 뜻의 ‘고뫼’라고 불리다가 점차 변하여 ‘고미’와 ‘오미’를 거쳐 오산이 되었다. 그 중 큰 것은 대오산, 작은 것은 소오산으로 불리었다. 오산리라는 땅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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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에 속하는 법정동. 옥정동(玉井洞)이라는 땅 이름은 통합 이전의 마을 이름인 옥동리(玉洞里)의 ‘옥’자와 냉정리(冷井里)의 ‘정’자를 합쳐 만든 것이다. 옥동리는 옥같이 아름다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냉정리는 맑고 찬 우물물이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정동의 옛 이름은 옥정리이다. 옥정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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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암리(龍岩里)라는 땅 이름은 악대산[일명 약대산]에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한 둘레 15m, 폭 6m, 높이 3m의 용바위가 있어 용바위·용암이라 불리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용암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묵은면 일패리와 일패하리를 병합하여 만들어졌다. 원래 묵은 논이 많아 묵은논이·진답(陳畓)·묵은동(默隱洞)이라 불렸으며, 옛 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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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행정리이자 법정리. 우고리(遇古里)라는 땅 이름은 여러 개의 골짜기가 이곳에서 만난다는 뜻의 우곡리(遇谷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광석면에 소재한 우곡리(牛谷里)라는 마을이 등장하는데, 이곳이 지금의 우고리를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일설에는 연산군의 폭정 당시 삼각산 북쪽 자락에서 약 100리에 이르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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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암리(雲岩里)라는 땅 이름은 발운리(發雲里)의 ‘운’자와 입암리(笠巖里)의 ‘암’자를 합해 만든 것이다. 혹은 구름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운암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양주군 묵은면·현내면 및 적성군 남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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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울대리(鬱垈里)라는 땅 이름의 유래에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째, 울대고개 밑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둘째, 오봉산이 이 마을의 뒤쪽을, 삼각산이 남쪽을, 일영산맥이 서쪽을 감싸 사방이 막혀 있어 답답한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셋째, 옛날부터 숲이 우거진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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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공자(孔子)의 정치 이념, 학문, 의례에 관한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했던 사상. 유교(儒敎)는 공자가 제창한 정치 이념, 도덕 수양의 방법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사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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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유양리에 있었던 기독교 청년 신앙 운동 단체. 엡윗청년회(Epworth League)는 1889년 미국에서 창설된 감리교의 청년 단체이다. ‘엡윗’은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고향 이름에서 따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897년(고종 34) 5월 5일 서울 정동교회에서 창립된 엡윗청년회[초대 회장 노병선]를 기점으로 하고 있다. 유양엡윗청년회는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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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법정동. 유양동(維楊洞)의 옛 이름은 유양리이다. 땅 이름 유래에 여러 설이 있다. 첫째, 양주에서 제일인 곳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둘째, 조선 초기 이 마을 출신 인물이 사신으로 가서 중국의 유양리에 들렀는데 그곳이 흡사 고향과 비슷하다고 느껴서 자신의 고향을 유양리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1922년까지는 이곳에 군청이 있어서 구읍(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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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에 속하는 법정동. 율정동(栗亭洞)이라는 땅 이름은 귀율리(貴栗里)의 ‘율’자와 모정리(茅亭里)의 ‘정’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귀율리는 밤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모정리는 마을 입구에 초모(草茅)로 만든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율정동의 옛 이름은 율정리이다. 율정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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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법정면.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기존의 묵은면(默隱面)과 현내면(縣內面)의 대부분 지역을 합치면서, 묵은면의 ‘은’자와 현내면의 ‘현’자를 따서 은현면(隱縣面)이라고 하였다. 은현면이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해도 묵은면과 현내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은현면은 삼국 시대부터 별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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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연산군 때 양주목이 폐치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설치될 때 읍치도 지금의 양주시 유양동에 새로 조성되었다. 이에 양주목의 읍치가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읍내면(邑內面)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읍내면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각종 지리지와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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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경기도 양주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일으킨 국권 회복 운동. 의병 운동은 1894년 발발한 갑오 농민 운동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봉기한 이후 20여 년간 전개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과 투쟁의 강도가 강화되었다. 군대 해산 이전에는 이인영(李麟榮)·최익현(崔益鉉) 등 지방의 명망 있는 유생 의병장이 의병 운동을 주도하면서 반일 항전을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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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를 관할하는 지방 검찰청. 의정부지방검찰청은 경기도 북부 지역의 6개 시[양주시, 의정부시, 포천시, 동두천시, 구리시, 남양주시]와 3개 군[강원도 철원군, 경기도 가평군, 경기도 연천군]의 검찰 사무를 수행하는 공공 기관이다. 의정부지방검찰청은 경기도 양주시 등 경기 북부 지역과 강원도 철원 지역이 법과 질서가 확립된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로 가꾸어지는 데 기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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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를 관할하는 지방 법원. 의정부지방법원은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시, 남양주시, 구리시, 연천군, 포천시, 가평군, 동두천시, 강원도 철원군을 관할 구역으로 하여 민사와 형사 재판 업무를 주재하고 있는 사법 기관이다. 의정부지방법원은 관할 구역 내 민사상의 분쟁과 형사 문제에 대한 공정하고 깨끗한 사법적 해결을 위해 설립되었다. 1962년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현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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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이긍래(李兢來)[1883~?]는 양주군 이담면 광암리에서 태어났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제 측의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8세이었으므로 1883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긍래는 1908년 음력 10월부터 의병장 정용대(鄭用大)의 휘하에 들어가 양주군·포천군·적성군·영평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이긍래는 다른 의병들과 달리 포천군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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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이별을 소재로 전해 내려오는 유희요. 「이별요」는 양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일반 민요로 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임을 향한 사랑을 노래하며 이별에 대한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는 가창 유희요이다. 1978년 양주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다. 「이별요」는 당시 양주군 주민으로부터 채록하였지만, 자세한 제보자 정보는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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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1년 11월 11일 워싱턴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전후 문제 처리를 위한 태평양 회의가 개최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한국의 독립 문제와 한국 독립 결의안을 상정시키기 위해 모든 외교적 역량을 동원하였다. 미국 대표단과 접촉하기 위해 서재필(徐載弼)과 이승만(李承晩)을 대표로 파견하여 우리의 요구를 설명하는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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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 「이앙요」는 논에서 손으로 모를 심어가면서 흥을 돋우고 힘든 것을 잊기 위해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를 「모내기 소리」, 「모심는 소리」 등이라고도 한다. 1978년 양주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다. 「이앙요」 자료는 당시 양주군 주민에게서 채록한 것으로, 자세한 제보자 정보는 빠져 있어 알 수 없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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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이은찬(李殷贊)·이언찬(李諺瓚)·이헌찬(李憲瓚)이라고도 한다. 종실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석하이고 동생은 이은호이다. 이은찬(李殷瓚)[1878~1909]은 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현 원주시 판부면]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을 공부하던 유생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경상북도 문경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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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전주. 자는 성집(聖執), 호는 미석(渼石). 고종의 종척(宗戚)이다. 이재윤(李載允)[1849~1911]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877년(고종 14)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우승지(右承旨)에 이르렀으나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매국 역적들을 참하자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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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집단. 2011년 10월 현재 양주시의 인구는 20만 5945명이다. 이 가운데 외국인이 7,866명[3.8%]이고 세대수는 7만 6197세대이다. 행정 구역 면적이 310㎢이므로 인구 밀도는 664명/㎢에 달한다. 인구수가 가장 많은 곳은 양주2동이고, 회천2동과 회천3동이 뒤를 잇는다. 반면 인구수가 가장 적은 곳은 회천4동이다. 양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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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일영리(日迎里)라는 땅 이름은 일영봉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영리 동쪽에 있는 일영봉은 일영리 사람들이 일출 광경을 볼 수 있는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일영봉에서 해 뜨는 광경을 제일 먼저 보면 장가를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일영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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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일제 식민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양주는 서울의 동북 방면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현재의 동두천시·남양주시·의정부시·포천시·구리시 등과 서울의 동북쪽이 모두 양주 지역에 해당되었다. 즉, 1912년 당시 양주 지역은 32면 343동리의 대규모 고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1914년 면제 개편 때 양주는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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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적. 임꺽정[?~1562]은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 후 황해도에서 생활하였던 임꺽정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비슷한 처지의 농민 수십 명과 가족처럼 집단을 이루어 황해도 구월산 일대의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도적 활동을 하였다. 1559년경부터 양반과 토호들의 재물을 빼앗는 것은 물론 관군의 방비와 토벌대의 허점을 교묘히 찌르며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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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출신의 행정가이자 정치인. 본관은 풍천. 아버지는 임태순(任泰淳)이고 어머니는 윤순녀(尹順女)이다.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동생으로 임우빈, 임좌빈, 양주시장을 역임한 임충빈, 임운빈, 임능빈 등과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던 임희빈이 있다. 부인은 이종배이고 자녀로는 건축 공학 박사인 장남 임창일, 임창화, 미국에 체류 중인 임창범 등 3남이 있다. 임사빈(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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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입암(笠岩) 혹은 갓바위라는 땅 이름은 망당산 북쪽 기슭[산14번지 북쪽]에 인형 모양의 큰 바위가 있는데, 마치 관을 쓰고 있는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갓바위로 불리는 지역의 북쪽에 흔터라는 빈터가 있는데, 옛날 이곳에 어느 욕심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어느 늙은 승려가 시주를 하러 오자 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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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서 걸인들이 구걸할 때 부르던 유희요. 「장타령」은 조선 후기 유민인 걸인들이 장을 돌아다니며 동냥을 하다가 부르기 시작한 노래로서 전국에 퍼져 있고, 각자 지역에 따른 사설의 변화가 생기는 가창 유희요이다. 이를 「각설이 타령」이라고도 한다. 1989년 인천교육대학 기전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한 『기전문화연구』 18호에 실려 있는 정동화의 논문 「양주지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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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행정면이자 법정면. 장흥(長興)이라는 땅 이름은 조선 시대 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기록에 전하고 있다. 따라서 장흥면(長興面)은 백석읍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래 이름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지역이다. ‘장흥’이라는 이름을 우리말로 풀면 ‘오래도록 길이 흥한다’가 된다. 땅 이름이 같은 전라남도 장흥군의 경우 고려 인종(仁宗) 때에 인종의 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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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관할 지역 일부가 경기도 양주 지역으로 편입된 행정 구역. 적성군 남면은 조선 시대에는 적성현에 속했는데, 지리적으로 남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 적성현의 남면(南面)이란 이름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처음 등장한다. 1895년 5월 적성현이 군으로 승격되어 적성군 남면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연천군에 편입되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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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지방 자치제에 의해 경기도 양주 지역은 1956년부터 읍장과 면장을 직접 선출하는 등 자치적인 정치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1991년 개원한 양주군의회를 중심으로 지방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2003년 양주군에서 양주시로 승격하면서 양주군의회는 양주시의회로 명칭이 바뀌었다. 2010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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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시대 양주(楊州)는 원래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이었다. 1392년 새롭게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고려 후기까지 양주로 불리던 한강 북부의 한양부가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수도로 선정하였으며, 기존의 아전과 백성들을 견주(見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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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2000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주내(州內)’는 주(州)로 끝나는 행정 구역 단위의 중심을 뜻한다. 475년에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 양주에 속하였고, 다시 1308년 한양부에 속하였다. 1394년 양주에 속하였다. 1895년 한양부 양주군에 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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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는 자연 마을. 지명의 유래에 여러 설이 있다. 고을의 원(院)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역로(驛路)를 따라 지어진 주막(酒幕)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주원동(酒院洞)으로 불리다가 ‘주(酒)’자가 ‘주(朱)’자로 변하였다는 설도 있다. 일설에는 ‘좋은 터’가 시간이 흐르면서 주원터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주원터의 정확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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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고암동에 있는 자연 마을. 지명의 유래에 여러 설이 있다. 고을의 원(院)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역로(驛路)를 따라 지어진 주막(酒幕)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주원동(酒院洞)으로 불리다가 ‘주(酒)’자가 ‘주(朱)’자로 변하였다는 설도 있다. 일설에는 ‘좋은 터’가 시간이 흐르면서 주원터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주원터의 정확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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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경기도 양주를 관할하던 최고위 관직. 양주는 고구려의 북한산군으로 고려 시대에 남경유수관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1308년(충렬왕 34) 한양부(漢陽府)가 되었다. 한양부는 현재의 서울을 포함하여 교하군·견주·포주·행주·고봉현·봉성현·심악현·풍양현·사천현까지를 포함하는 넓은 영역이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한양부를 도읍으로 정하면서 현재의 서울 지역에 도성이 건설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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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진답면(陳畓面)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의 비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 민무질(閔無疾)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여흥 민씨 집안에서 이 지역을 사패지로 하사받은 후, 어느 누구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가운데 외부에 가려있고 항상 농사를 짓지 않고 물이 차 있어 질퍽한 논이라는 뜻에서 진답면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진답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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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천천면(泉川面)은 지금의 샘내고개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신천의 옛 이름인 ‘샘내’에서 유래하였다, 샘내는 샘에서 흘러나가 내를 이루는 곳이라는 뜻이며, 한자로는 천천(泉川)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천천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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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청춘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유희요. 「청춘가」는 사설의 대부분이 청춘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가창 유희요이다. 경기민요 「청춘가」는 해당 자료가 사설로만 채록되었기 때문에 실제 성격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청춘가」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보존되는 노래이다. 참고 자료에서도 전국적인 형태와 큰 차이가 없다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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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봉양동에 있던 자연 마을. ‘청풍(淸風)’은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풍동의 형성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대한 제국 시기에는 양주군 어등산면 4리·5리, 이담면 송라리, 회암면 송현리 일부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지방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양주군 회천면 봉양리 산18-15번지 일대가 되었다. 1985년 회천면이 회천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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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 담당 기관. 초등학교는 국가에 따라 초등학교·보통학교·기초학교·소학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교육 제도상 가장 먼저 취학하는 학교로서 국민 생활에 필요한 초보적인 일반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근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국민 교육이 국가의 기본 기능으로 인식되어 이에 대한 제도적 확립과 확충·강화책이 강구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48년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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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 있는 정보화마을. 2001년부터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농림부, 정보통신부 등과 함께 정보화마을 조성 사업을 추진하였다. 정보화마을 조성 사업은 농촌, 어촌, 산촌 등 정보화 시대에 소외된 지역에 인터넷 이용 환경을 조성하고 전자 상거래 등 정보 콘텐츠를 구축하여 정보 생활화를 유도하는 동시에 실질적인 수익 창출 구조를 만들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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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 있는 평양 조씨 집성촌. 평양 조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의 무신인 조춘(趙椿)이다. 조춘은 추밀원 부사로 남송(南宋)에 가서 금(金)을 정벌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워 상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5세손인 조인규(趙仁規)가 고려 충숙왕의 장인이 되었고 후일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평양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파는 제주공파(濟州公派), 병사공파(兵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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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양주목 관아(楊州牧官衙)의 형 집행 터. 포청 터는 조선 시대 범죄자들을 잡아 다스리는 포도청이 있던 곳으로, 양주목 관아가 존재하였던 조선 시대까지는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형수를 처형하는 장소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행형장이라고도 불렸다.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1871]에 토포청(討捕廳)이 17칸 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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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율정동에 있는 풍천 임씨 집성촌. 풍천 임씨의 시조는 임온(任溫)이다. 임온은 중국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 출신으로 고려로 건너와 6세손 임주(任澍)까지 풍천에서 살면서 풍천 임씨가 시작되었다고 하나, 후손들은 선대가 중국인이라는 점을 부정하기도 한다. 파는 임주의 두 아들 임자송(任子松)·임자순(任子順)을 파시조(派始祖)로 하는 백파(伯派)·중파(仲派)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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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있는 풍천 임씨 집성촌. 풍천(豊川)은 황해도 은율군[현 과일군]이다. 풍천 임씨의 시조는 임온(任溫)이다. 임온은 중국 소흥부(紹興府) 자계현(慈溪縣) 출신으로 고려로 건너와 6세손 임주(任澍)까지 풍천에서 살면서 풍천 임씨가 시작되었다고 하나, 후손들은 선대가 중국인이라는 점을 부정하기도 한다. 파는 임주의 두 아들 임자송(任子松)·임자순(任子順)을 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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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서 덕도리의 경계 지점에 있는 피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피고개 설화」는 부잣집에서 박대를 당한 스님이 그 보복으로 강서방 스스로가 용맥을 자르고 명당을 훼손하게 하여 부잣집을 망하게 하였다는 풍수담이자 명당 파손담이다. 또한 스님이 자르게 한 혈(穴)에서 피가 나왔다는 고개, 임진왜란 때 피를 흘린 고개라서 피고개로 불렸다는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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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패리(下牌里)라는 땅 이름은 고려 시대의 은현면 지역, 즉 사천현(沙川縣)에서 아래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하패리는 적어도 대한 제국 시기부터 이곳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1914년 이전까지는 현내면 하패리와 이담면 송라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두 지역에서 일부를 떼어 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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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군.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응달말마을 남서쪽 논에 화강암으로 된 하패리 고인돌군 2기가 50m 간격으로 놓여 있다. 하패리 고인돌군은 1998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양주군 일대에 대한 문화 유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면서 확인되었다. 남쪽 고인돌 상석은 남북 방향 장축으로 놓여 있고, 그 크기는 높이 110㎝, 길이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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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는 사립 특성화 고등학교. 창의적 인재, 미래 사회의 주인공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서로 돕고 사랑하며 예의 바르게’이다. 1955년 3월 29일 이사장 정병국을 중심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남문학원에 의하여 1961년 3월 31일 당시 양주군 최초의 고등학교인 남문농업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이후 1979년 11월 20일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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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한산리(閑山里)라는 땅 이름은 마을이 한가한 뱀의 꼬리 모양[한사미(閑蛇尾)]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혹은 앞산이 한새[황새]처럼 생겨 한새미·한사미·한산이라 불리었다고도 한다. 이 마을에 한산거사(閑山居士)가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산리라는 땅 이름은 18세기 후반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는 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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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 행정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국가 작용 중 입법 작용과 사법 작용을 제외한 것을 말하며, 형식적인 의미에서는 행정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작용 전체를 말한다. 입법권, 사법권과 대등한 통치권의 하나로서 행정을 행하는 권능을 행정권이라 한다. 양주시가 공익상 필요한 결과를 실현할 목적으로 행하는 기술적·정신적·법률적 사무 전체라고 볼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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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현내면(縣內面)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고구려·백제에서 내을매(內乙買) 혹은 내이미(內爾米)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내을매현 혹은 내이미라는 땅 이름은 이미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면서 경덕왕 때에 이르러 사천현(沙川縣)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마을 가운데를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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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한국사 속에서 전개된 경기도 양주 지역의 역사.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회 구조와 계층, 생산력 등을 바탕으로 시대 구분을 하며 그에 따라 고대나 중세, 근세, 근대, 현대 등의 구분을 하기 마련이다. 시대 구분을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시대의 전환점, 즉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를 제시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사에서 특히 남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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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속하는 법정리. 홍죽리(弘竹里)라는 땅 이름은 홍동리(弘洞里)와 천죽리(川竹里)에서 ‘홍’자와 ‘죽’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홍동리라는 땅 이름은 큰 마을이라는 뜻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겼고, 천죽리라는 땅 이름은 마을을 흐르는 시냇가에 있었던 대나무와 관련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홍죽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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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황방리(篁芳里)라는 땅 이름은 원래 감악산 아래 대나무가 무성하였고 그 모습이 흡사 꽃과 같아 황방·황뱅이·황방동이라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기록에 적혀 있는 황방리의 한자를 통해서 볼 때에는, 감악산 남쪽에 위치한 이곳에 무수히 많은 골짜기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1914년 이전에는 적성 무녀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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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에 속하는 법정동. 회암동(檜岩洞)의 옛 이름인 회암리의 땅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옛 회암면 지역에 회암사(檜巖寺)가 있어 회암골·회암동·회암으로 불렸다는 설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문헌에 따르면 ‘회암’이라는 땅 이름은 회암사라는 사찰의 이름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회암사의 창건 시기가 분명하지 않아 연대를 확정하기 힘들다. 다만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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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암면(檜巖面)이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 최대 거찰인 회암사(檜巖寺)가 있어 붙여졌다. 회암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암면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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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천2동에 속하는 법정동. 회정동(檜亭洞)의 옛 이름인 회정리라는 땅 이름은 과회리(寡悔里)에서 ‘회’자와 덕정리(德亭里)에서 ‘정’자를 따서 만들었다. 과회리는 과일나무가 많았던 과골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덕정리는 독을 굽던 사람들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 혹은 덕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정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회정리라는 땅 이름은 일제 초기의 문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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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85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암면(檜岩面)의 ‘회’자와 천천면(泉川面)의 ‘천’자를 따서 회천면(檜泉面)이라고 불렀다.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 양주에 속하였고 다시 1308년 한양부에 속하였다. 1394년 양주에 속하였으며, 1895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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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부터 200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회천읍(檜泉邑)은 회천면에서 왔으며, 회천면은 천천면·어등산면·회암면 등이 합쳐질 때 회암면의 ‘회(檜)’자와 천천면의 ‘천(泉)’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삼한 시대 마한에 속하던 지역으로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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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효촌리(孝村里)라는 땅 이름은 효가동(孝佳洞)에서 ‘효’자와 회촌리(檜村里)에서 ‘촌’자를 한자씩 따서 만들어졌다. 효가동은 옛날 효자가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회촌리는 전나무 숲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효촌리라는 땅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개편 이후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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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던 다리 또는 그 다리가 있던 자연 마을. 신산리를 관통하는 시내인 입암천(立巖川)을 건너기 위해 흙으로 다리를 만들었는데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마을과 장이 형성되어 마을 이름을 흙다리, 시장 이름을 토교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편 일설에는 구 남면사무소 부근의 길 양쪽에 집이 들어선 모습이 마치 장터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원래 흙다리...